남편과 함께 학부모 공개수업에 다녀왔다.
지난주에 학부모 공개수업에 다녀왔다. 그날 나는 직장에서 중요한 회의가 잡혀있어서 원래는 남편만 반차를 내고 가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개수업 전날 갑자기 회의가 연기되었다. 잘됐다! 그럼 엄마도 갈게!
"별아, 엄마도 공개수업 갈 수 있게 되었어!"
"아싸! 엄마랑 아빠랑 둘 다 온다니, 너무 신난다!"
다음 날, 우리 부부는 사이좋게 손을 잡고 교정에 들어섰다. 평일 낮시간, 햇살이 따사로운 날,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아카시아 향기를 즐기며 남편 손을 잡고 걷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불현듯 결혼 전 데이트하던, 이제는 전생처럼 까마득한 과거의 날들이 생각나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당신이랑 옛날에 데이트하던 생각이 나서."
"낮시간에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좋다 , 그치?"
"응. 그리고 당신 손 잡고 향하는 곳이 학부모 공개수업이라니, 그냥 갑자기 웃겨."
"학부모 된 지 몇 년째인데 이제 와서 새삼?"
"그러게나 말이야."
정말 새삼스럽게도 묘한 기분이다. 하지만 내 묘함의 포인트는 '학부모'가 아니라 '당신과 손잡고 향하는 곳'이 우리 아이의 학교라는 것인걸.
남편과는 이십 대 초반에 만났다. 풋풋한 연애를 시작하고 지금껏 스무 번가량의 봄꽃을 함께 했다. 여름의 찌는 대기도, 가을의 청명한 햇빛도, 겨울의 빛나는 눈꽃도 딱 그만큼씩 함께 했다. 그 시간들에 새겨진 수많은 이야기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여태껏 함께 해왔는데 아직도 우리가 함께하는 새로운 일들은 끊임없이 생기고 있으니 어떻게 신기하지 않겠어. 더군다나 그 새로운 일들이 대개는 우리 아이에 관한 것이라는 점도 말이지.
우리가 함께 쌓아가는 시간들은 우리에겐 한 장 한 장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억들일 것이고, 남들에게는 누구나 겪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남편과 함께 손 잡고 아이가 다니는 교정을 걸으며 벅차오르는 감동에 젖어있던 마음은 교실 앞에 이르러 순식간에 현실로 끌어당겨졌다. 그곳에 뻔하디 뻔한 순간을 각자 너무도 특별하게 지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모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었다. 엄마나 아빠 혼자서, 또는 부부가 같이 옹기종기 교실 창문 앞에 모여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수많은 부모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설렘과 모종의 뿌듯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어쩜... 여보, 학부모들 표정이 초등학생들보다 더 초롱초롱한데?"
나는 속삭이며 남편을 바라봤다. 어머나, 세상에. 그중 가장 초롱초롱 빛나는 눈이 내 남편 얼굴에 달려있네. 헤벌쭉 웃는 그의 얼굴에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평범한 날들이라는 앨범에 특별한 사진 한 장이 이렇게 또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