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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며 어린 나를 다독인다

나에게 주고 싶은 것들을 내 아이에게 건네는 일

by 정벼리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오늘이 어떤 하루였든지 간에 눈가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게 된다. 그 평화로움이란, 그 평온함이란, 그 사랑스러움이란. 못 견디게 어여뻐서 가끔은 갑작스러운 뽀뽀 세례를 퍼붓다가 아이의 잠을 깨워버릴 때도 있었다. 생김도 참 오묘하다. 이리 보면 나를 똑 닮았고, 저리 보면 남편을 빼다 박았고, 다시 보면 그 누구도 닮지 않은 별이라는 아이 자체이다. 내가 낳아서 키우고 있지만, 새삼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꼭 닮아서만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은 아이에게서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보게 된다. 저 맘 때의 어린 나를 반추하는 것이다. 아장아장 걷던 나, 아빠가 목말을 태워줘서 가슴이 터질 것 같던 나, 시골 이모할머니 댁에서 밤에 괜히 엄마가 보고 싶어 훌쩍이던 나, 동생이 얄미워서 심통이 났던 나...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면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지고, 조금 아쉬웠던 기억이 떠오르면 그때의 어린 나에게 내어주고 싶은 것을 내 아이에게 주곤 한다. 신기하게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옛날의 어린 내가 다시 행복해지기도 하고, 아팠던 어린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느낌도 든다.




굳이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허용적인 부모이기보다는 조금은 규율적이고 엄격한 부모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이에게 덮어놓고 허용적이었던 몇 가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장난감은 잘 안 사줘도 작은 놀이기구를 태워주는 데에는 오백 원짜리를 아끼지 않았었다. 마트에 설치된 비행기나 자동차 모양의 유아용 놀이기구라든지, 아파트 장터에 찾아오는 미니 바이킹이라든지, 쇼핑몰에서 운영하는 조그만 회전목마라든지, 놀이동산 초입 즈음에 있는 커다란 공룡 모양의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탈 것 따위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일 년에 한두 번 드림랜드 정도에는 가야 저런 탈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보통 동전 넣고 타는 놀이기구들은 자유이용권을 구매하고 들어갔다 해도 추가로 돈을 내야 탈 수 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쉽게 태워주려 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태워줄 때에도 꼭 내 앞에 동생을 앉히고는, 동생 안 떨어지게 잘 잡고 타라, 하고 덧붙였다. 그러면 나는 언니로서의 책임감에 동생 녀석을 붙들고 있느라 마음껏 흥을 분출하지도 못했다.


그때의 내 막중한 책임감 발현은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인상을 빡 쓰고 카메라를 노려보는, 빛바랜 사진으로 아직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생이 정말로 떨어질지 모를 정도로 어렸다면, 엄마 아빠가 고작 세 살 차이 나는 큰 아이를 믿고 위험천만하게 둘째를 태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아이 둘을 탈 것 하나에 태우려니 괜히 눈치가 보여서, 돈 받는 아저씨 들으라고 부러 덧붙인 별 의미 없는 말이었을 텐데. 그때엔 엄마아빠의 그 말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다가오고, 그래서 때로는 놀이기구를 타면서도 심술이 나고 그랬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내가 어린이용 놀이기구에 퐁당퐁당 넣은 오백 원짜리 동전은 몇 개나 되려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아마 각 잡고 헤아려보면 꽤나 상당한 금액일 것 같다. 스스로 머리를 콩 쥐어박으며, 정신이 나갔군, 하며 중얼대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굳이 대략이라도 헤아려보진 않으려고 한다.


별 상관없기도 하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기계에 어린 내 딸이 앉아서 때론 활짝 웃으며, 때론 진지한 표정으로 재미를 음미하는 동안, 바깥에서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으니까. 아이가 나를 향해 손 인사를 보낼 때 내가 마주 흔들어주는 손은 내 아이를 향하면서, 동시에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함께 보내지는 인사인 듯했다. 한 순간씩 아이와 나와 어린 내가 모두 장자의 나비처럼 구별할 수 없이 하나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냥 꽤나 행복했다. 그러니 이만하면 괜찮은 소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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