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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놀이에 불꽃이 튀는 이유

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by 정벼리

우리 아이는 외동이다. 그것도 열 살 먹도록 양가를 통틀어 유일한 아이였다. 자라는 동안 집안의 모든 어른들이 그저 넘치는 사랑만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는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애정을 건네는 것에 스스럼이 없다. 세상이 대개 호의와 선의에 기반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아이의 이러한 면은 단단한 자아존중감 형성에 도움이 되고 있어, 제가 가진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다. 아이는 자신이 질 수도 있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하는 안 좋은 상황도 생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울 기회를 많이 갖지는 못했다.


형제가 있는 아이들은 네가 언니니까 동생에게 양보해, 라든지 너는 동생이니까 언니 말을 잘 들어야지,라는 말을 으레 듣게 되기 마련이다. 형제끼리는 맛있는 것, 좋은 것은 서로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다. 투닥거리고 싸우다 엉엉 울면, 엄마나 아빠가 개입해서 이것은 언니 잘못이고 저것은 동생 잘못이니 둘 다 서로 사과하라고 화해를 시키는 과정도 종종 겪게 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굽히고 양보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외동아이는 집에서 내 것을 나눌 상대도, 다툼이 일어날 상대도 없다. 도통 져볼 일이 없다.


우리 아이가 우아하게 지는 법을 모르는 어른으로 자랄까 봐, 나는 가끔 걱정이 된다. 그래서 가끔 일부러, 악착 같이 아이를 이겨버린다. 요즘 내가 아이와 가장 매정한 대결을 벌이는 분야는 바로 공기놀이.




아이가 한 번도 집에서 공깃돌을 가지고 놀지 않길래, 요즘 애들은 공기놀이를 안 하는 줄 알았다. 접할 기회가 없어서였을 뿐, 역시 진정한 재미는 세대를 막론한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혹시 공기놀이 할 줄 알아?"
"그럼! 엄마 완전 공기의 신이지. 별이도 공기놀이 알아?"
"응. 올해 교실 놀잇감 중에 공깃돌이 있어. 근데 나도 애들도 다 공기를 잘 못해서, 꺾기만 하고 놀아."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배울 텐데! 엄마가 공기 가르쳐줄까?"


우리는 바로 동네 문구점으로 나가 공깃돌 한 세트를 사 왔다. 너무 오랜만에 던져보는 공깃돌이라 나도 처음엔 버벅거렸지만, 몇 번 던지고 받으니 금방 삼십 년 세월을 거스르더라. 아이 눈이 왕방울만큼 커져서 나를 쳐다보는데, 거 참, 얘가 나를 이토록 무한한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여태껏 겪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는 바보공기부터 시작해서 주머니, 기찻길, 콩콩을 거쳐 차츰 공기놀이에 익숙해졌다. 내가 공깃돌로 오십 살 먹는 동안 아이가 열 살 정도 먹게 되었을 무렵, 나는 근엄하게 제안했다. 네가 먹은 나이에 다섯 배를 쳐줄 테니, 시합하자! 아이는 신나서 도전, 하고 외쳤다.


그 뒤로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 단 한 번도 아이를 봐주지 않았다. 아이는 아홉 번 정도 지고 나면, 한 번쯤 나를 이겼다. 별다른 내기를 건 것도 아니고, 그저 이긴 사람이 만세를 부르고 기뻐하며 끝날 뿐이지만, 질 때마다 아이는 분통 터지는 표정으로 별소리를 다 늘어놓는다. 무효야, 치사해, 다섯 배 말고 여섯 배 해줘, 무슨 엄마가 이래, 너무해… 그리고 끝에 가서는 늘 같은 말을 외친다.


“한 판 더 해!”


그래, 얼마든지! 가끔 승리의 기쁨도 누리고, 때론 져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걸 함께 배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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