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그 여자의 아들

by 지구인



띠동갑 하고도 한 살 위의 배다른 누이는 아비를 닮았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우뚝 솟은 잘생긴 콧대와 귀밑 각진 턱이 그러했다. 누이의 어미를 본 적 없는 요한으로서는 흐릿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희영의 얼굴에서 아비의 흔적만을 알아차리고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구 아가. 요한아, 야야…


아비라는 이의 유일한 손위형제인 팔순이 가까운 큰고모가 십수 년만에 만난 친정 조카를 울먹이며 끌어안는 바람에 요한은 눈을 떴다.


억지로 끌려간 친조부모의 제사상 앞에서 몇 번 마주친 기억이 전부였으나 만날 때마다 아가, 갠잔으냐? 눈물 지으며 얼굴을 쓰다듬던 고모의 손길은, 갈라진 나무껍질처럼 거칠기만 한 손바닥에도 불구하고 늘 따스했다. 역시 드물게 보았던 정여사의 돌아간 계모가 외손주들을 향한 눈빛과 고모가 자신에게 주는 눈길이 닮았다 느껴져서, 어린 요한은 그나마 그이에게 의지하여 바늘방석 같은 그 시간들을 가까스로 버텨내곤 했었다.


아이구 고 어린것이 이리 훌쩍 커서… 인저 헌헌장부가 되었구나. 아이구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할머니가 되어버린 요한의 큰고모는 굵고 가는 주름들이 빼곡하고 검버섯마저 듬성한 두 손을 모으고 굽어가는 허리를 연신 굽혔다.


고모님…


마지막으로 보았을 땐 마주보았던 혈족을 이제는 한참 내려다보게 된 요한이 그네의 앙상한 양팔을 붙잡았다. 그 옛날처럼 노인이 거친 오른손을 들어올려 청년의 매끈한 볼을 어루만지며 콧물을 들이마셨다. 늘어진 눈꺼풀에 가려 온전히 보이지 않는 눈동자의 색이 바래어 옅은 푸른빛을 띠었다.


시방도 영락없는 뉘메여. 대번 알것다.


고모의 중얼거림에 요한은 당장에 생모의 이야기를 묻고 싶었으나 어느새 누이가 옆에 다가와 있었다.


고모, 올라가 계세요. 모셔다드려요?


보통이 넘는 키에 배다른 남동생 못지않게 넓은 등판을 지녀 당당한 체구의 희영은 몸을 숙여 고모와 얼굴을 마주했으나 표정과 말투에는 별다른 애정이 서려 있진 않았다. 요한이 움찔하며 움츠러들었다.


아녀. 기여 오누이 간 헐 말이 많겄지.


노인이 굵게 주름진 눈가를 훔치며 요한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본 뒤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그래 네가, 그 여자의 아들이구나.


고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요한이 몸을 돌리자 희영이 중립적인 억양과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그녀의 말이 공격적으로 느껴진 데다 제법 두꺼운 안경알 너머 그녀의 두 눈이 얼굴을 꿰뚫듯 집요했으므로 요한의 얼굴은 붉어졌다. 희영이 피식 웃었다. 요한은 귀까지 빨개졌다.


우리 엄마도 꽤 미인이었는데, 네 엄마한테는 상대도 안됐겠다. 아들이 이 정돈데, 그 엄마는…


희영이 다시금 허탈히 웃고는 터덜터덜 걸어가 병원 안 카페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요한이 멍청히 서 있자 희영은 도망갈 거 아님 와 앉어, 고모 말씀대로 오누이 간에 회포나 풀자. 늠름하게 말했다.


******


콩팥은 떼어줘도 얼굴은 보여주지 않겠다는 맏아들 때문이었을까. 장원장은 또 다른 버린 자식인 딸이 문득 생각났다. 그는 유학 간 아들들에게 나가 있는 때가 훨씬 많은 아내를 대신해 아예 함께 살며 자신을 돌봐준 지 오래인 누님을 앞세워 마침내 딸의 면회를 성사시켰다.


그의 고명딸은 멀리 타국의 이방인으로서 악착같이 버틴 끝에 명문대의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조국에서 죽고 싶어한 외조모를 위해 함께 귀국하여 명문여대의 교수로 재직한 지 십 년이 넘었다. 모친의 비극에 잠식당한 희영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 계획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혼자 두고서는 죽어도 눈을 못 감는다는 할머니의 애원에 때마침 이혼하고 한국에 나와 있던 옛 남자와 다시 만나 결혼했다. 손녀가 조촐한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할 일을 다 마친 조모는 후련히 세상을 떠났다.


남편에게는 아들 하나가 전처에게서 자라고 있었고 희영 자신은 자식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자궁에 물혹이 많아 임신이 어렵고 그것이 유전병 탓임을, 그것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음을 큰고모를 통해 뒤늦게 알고서는 하염없이 아득했다. 연을 끊었는데도 몸속 장기에마저 아버지의 자취가 그토록 또렷이 남아 있다는 것이 희영은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조모가 눈을 감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러나 희영은 기적적으로 아들을 출산하였고, 그 아이가 이제 세 돌이 지났다. 신을 원망하고 운명을 저주할 때 예상치 못하게 찾아와준 아이로써 희영은 시련의 이유를 알았다. 젊지 않은 나이에 치료와 육아를 병행하기란 힘겨운 일이었지만, 기댈 수 있는 남편과 지켜야 하는 아들이 곁에 있었기에 희영은 삶에의 의지를 다졌다.


그래서였을까. 병세의 악화를 핑계로 뒤늦게 자식을 찾는 뻔뻔스러운 아비의 청을 희영은 거절하지 않았다. 물론 순순히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다녀와, 라는 남편의 말에 눈을 흘겼으니까. 그러나 하고 싶었던 말들 시원하게 다 해버려, 라는 말에 희영은 결심이 섰다.


희영은 배우자의 조언대로 그동안의 응어리들을 한껏 퍼붓고 한풀이를 할 셈이었다. 그러나 그 상대는 수술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에게서 희영은 사고사 한 딸을 뒤따르듯 별세한 외조부의 노쇠했던 모습을 보고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한평생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고생만 하고 살아온 세 살 위 누이에 버금가게 늙어버린 장원장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의 자신의 나이만큼이나 중년이 된, 자신을 닮은 외모에 골치 아픈 병마저 물려받은 외딸에게 떠듬떠듬 사과의 탈을 쓴 변명을 늘어놓았다.


결국 희영은 원망의 말들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부친을 용서하거나 동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자기자신밖에 모르는 아비에게 질려 돌아설 때, 결혼 전 낙태한 것도 숨긴 여자였다고! 쉰소리로 외친 그에게 희영은 …그래도 가서 엄마한테 사과하세요, 담담히 말하고 병실을 나섰다. 병실 문 앞에서 희영은 안경을 살짝 들고 눈가를 훔쳤으나 곧 크게 숨을 내쉬고 미소 지으며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그 작은 눈물 한 방울이 친부를 위해 흘려줄 수 있는 최대치여서 희영은 뿌듯했다.


그렇게 아비와 완전히 결별한 희영의 관심은 그의 불륜의 결과물인 요한에게 옮겨갔다.


살림 야무지고 으른헌티 깍듯허고… 아무리 생각혀도 그럴 사람이 아닌디… 똑같이 시골 없는 집에서 태어나 자란 동질감 때문에라도 고모는 딸뻘인 두 번째 큰올케를 꽤 아꼈던 것 같았다. 머리 좋은 희영은 어느 곳에서나 있는 집 티를 내며 늘 어느 정도 오만했던 엄마를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기에 고모에게 토를 달지 않았다. 똑똑한 조카딸이 고추를 달고 나오지 못한 것을 더러 아쉬워할 때를 빼고는 장씨 집안 첫 자손이라며 고모가 나름 자신을 예뻐해준 것도 기억하고 있었던 탓도 있었다. 엄연히 희영보다 먼저 태어난 아들조카가 있었는데도 차남의 소생이라는 이유로 고모는 그렇게 엉뚱한 고집을 피웠었다.


고모, 나 그애 보고 싶어요. 궁금해요.


왜 그랬을까. 이제 노안이 올 정도로 나이를 먹고 졸지에 환자까지 되어 마음이 약해진 걸까. 그러나 자신이 가졌던 것을 모두 빼앗아버린 줄로만 알았던 그 불행한 모자의 삶을 전해듣자, 특히 배다른 아우들에게 밀려나 피 한 방울 안 섞인 진원네에서 자랐다는 이복남동생이 희영은 애처로웠다.


미안해 엄마. 희영은 돌아간 모친에게 죄책감을 느꼈으나 살아있는 반쪽짜리 피붙이에 대한 호기심을 누르지는 못했다. 어쩌면 희영의 독했던 마음은 뒤늦게 연을 맺은 남편과 어렵게 얻은 아이가 준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 덕분에 많이 풀어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아버지의 아들은, 처연히도 아름다웠다.


암 쏘 쏘리, 맘. 희영, 아니 리사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자신과 달리 부계로만 이어지는 성염색체만 물려받았을 뿐 부친의 얼굴은 물론이고 50%의 발병 확률마저 비껴간 요한의 행운이 부럽고 샘이 났다. 그러나 자신과 눈도 못 마주치며 좌불안석인 모양은 퍽 안쓰러웠다.


잘난 아버지 덕에 너나 나나 참… 그렇지?


희영이 눈을 내리깔며 쓸쓸히 웃자 요한은 그제야 누이를 제대로 보았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이복누나라는 중년여자는 생각도 하기 싫은 아버지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생김새인데, 싫거나 밉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도 자신에게 그런 것 같아 더욱 이상했다. 물보다 피가 진하다는 말을 요한은 믿기는커녕 증오했었지만, 그 말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이유가 없어서 그는 당혹스러웠다.


서울이모… 는 잘 계시니? 너 돌봐주신 분 말야, 진원이 엄마.


아버지의 아들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희영은 정여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귀국해서도 연락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한을 보자 절로 그녀가 생각났다.


아… 네.


요한은 당황하여 얼버무렸다. 누이가 정여사를 언급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자연스레 요한은 정여사의 아들이 칵테일바에 걸음했었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 진원은 고민 끝에 바에 찾아갔다.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니니 직접 만나기는 해야겠는데, 요한네 집으로 가기에는 그곳에서 그와 심하게 말다툼하고 주먹다짐까지 한 일이 아직은 마음에 걸렸다. 혹시 자신의 연락을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서, 진원은 전화조차 않고 바에 쳐들어가다시피 했다.


가게의 출입문을 열면서 진원은 친구를 보고 싶어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며, 요한이 자신을 몹시도 사랑한다는 시은의 말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남자끼리 무슨… 진원은 스스로를 핀잔하며 가게에 들어섰다.


어서 오… 태수와 요한이 놀라서 말을 멈추었다. 진원은 태수에게 고개를 숙였으나 요한을 보고서는 헛기침을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태수가 요한의 눈치를 살짝 보았으나 금세 얼굴 가득 반가움을 띄우고 진원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요한에게 연락하지도 찾아오지도 말라고 했지만 막상 진원을 보니 고맙기만 했다.


진원이 어렵게 꺼낸 이야기를 듣고 난 요한은 그러나 웃음이 났다. 피식거리며 새어나오던 웃음은 이내 박장대소가 되어, 칵테일바에 울려 퍼졌다. 태수를 비롯해 지수와 연주, 그리고 담소하던 손님들 모두가 구석자리 벽에 붙은 부스석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요한에게 눈길을 주었다. 진원은 어쩔 줄을 몰랐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요한이 계속 피식거리며 말했다.


그 노인네가 신장에 문제 있다고 알게 된 후에 알아봤거든. 정확히야 모르지만 결국은 이식해야 된다는 거 같다길래. 넷이나 되는 자식 중에 가장 만만한 게 나잖아.


너 설마… 그분 뜻대로 하겠단 건 아니지?


진원의 얼굴을 그제야 요한은 똑바로 바라보았다.


연락도 없이 가게에 불쑥 찾아온 진원과 처음 눈을 마주치고 나서, 요한은 내내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계면쩍어하는 진원의 얼굴을 흘낏거리며 요한 역시 거북했었다. 그에 대한 미안함과 부러움과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와서였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합친 것보다 반가움이 더 컸다. 그제야 요한은 자신이 진원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명백한 이성애자이면서도 결혼을 앞둔 두 남녀를 모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 누가 믿어주겠는가.


왜. 말리러 온 거냐.


요한은 오히려 평정심을 되찾고 덤덤히 말했다. 반면 진원은 흥분했다.


당연하지! 말이 되는 소리야?


그깟게 뭐. 떼주고 말지. 꼬박꼬박 양육비 부친 값 받아내려나 본데. 나도 줘버리고 완전히 연 끊고 싶다.


야, 그건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지! 네가 부채감 가질 필요 없다고. 법적으로도 너한텐 전혀 의무 없어. 어이가 없네.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네가 거절 못할까 봐 일부러 왔더니만 뭐가 어째? 너 제정신이야?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건 너도 알잖아.


요한이 다시금 눈을 빛내며 웃자 진원은 말문이 막혔다.


그래, 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아… 네 맘대로 해라…


진원은 또다시 충격으로 비틀거리며 자리를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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