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등변삼각형> 1부 중에서
전체 퇴고를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안 하고 있어요. 하기 싫음 ㅎㅎ. 주말에는 또 몸이 안 좋아져서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노오력, 이 부족하지만 또다시 방향에의 고민이 솟구쳐. 그래도 결국 돌아오고 포기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또 틀렸나? 실팬가. 중간중간 전원이 꺼져버리더니 다시 또 맵이 날아가버린 구형 로봇청소기가 서글픈 밤에. 그래도 꾸역꾸역 다시 속독하며, 그래도 쓰고 읽으며 이건 좀 괜찮은데? 자아도취했던 문구들을 모아보았습니다.
p.s. 영어권에 철자대회가 있는데 우리는 띄어쓰기대회가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어떤 띄어쓰기는 국립국어원의 설명을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ㅠ-ㅠ 경험해본 결과 브런치 맞춤법 검사만 믿으면 큰코다침둥!!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내 눈동자가 불안정했다.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눈빛이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흔들리는 것은 내 마음일 것이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미 흔들린 마음. 걷잡을 수 없이 뛰어대는 심장.
과연 나는 화장을 고치듯 마음도 고쳐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웃어야 할 때 웃을 수 있을까. 그렇게 나의 정혼자와 그의 절친과 보내기로 약속한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을까.
진원의 새까만 머리칼만큼이나 까맣고 또렷한,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아이같이 순수한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3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수줍어하고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때보다 더 깊어진 애정을 듬뿍 담은 눈길로.
나는 마음이 풀어졌다. 철딱서니 없는 (사촌)시동생 정도로 생각하면 별문제 없지 않겠는가.
진원에게는 열 살이나 터울이 나는 어린 여동생이 있다. 서울의 명문여대생인 진원의 누이는 유복하고 교양 넘치는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 나이대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티 없이 맑아 보였다. 늘 갖고 팠던 언니가 생겨서 너무 좋다며 활짝 웃는 얼굴이 아이와도 같았다. 그 웃음이 오빠와 빼닮았어서, 나는 처음 만나는 예비 손아래 시누이에게 느낄 법한 묘한 긴장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었다.
으응, 아니야. 일은 무슨.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마로 살짝 내려온 진원의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리고 웃어 보였다.
진원도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진원은 늘 나의 작은 손길 하나에도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한다. 나는 그럴 때의 진원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역시 제대로 말한 적은 없지만.
진원이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사랑해.
진원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어쩌면 그 말을 듣기 위해 나는 밤늦게 달려온 것인지 몰랐다. 전화기와 전화기, 그 사이 디지털 변환을 거쳐서 주파수를 타고 전달된 것이 아니라 진원의 입술과 나의 귀가 바로 닿아서 함께 있는 공간 속 같이 숨 쉬는 공기의 떨림을 느끼고 싶었다. 술에 취하면 으레 듣는 고백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직접 듣고 싶었다.
진원은 평소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과 손길을 비롯한 행동거지에서 얼마든지 알 수 있었으므로 나는 별로 불만스럽지 않았다. 천 냥 빚보다 말 한 마디가, 말 한 마디보다 순간의 눈빛이 더 가치 있음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나 역시 그 달콤하지만 흔하디 흔한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술 마신 진원과 통화를 할 때는 잘 대꾸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기만 했던 나였지만, 그래서 술 취한 진원이 귀엽게 투정부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말에 나도 진심을 담아 답해줄 요량이었다. 나도 사랑해. 걱정했어 많이. 그렇게 말하면 진원은 기뻐할 것이다.
진원은 늘 괜찮다고 한다. 싫다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진원에게는 모든 것이 괜찮거나 좋았다.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정말 더 그렇게 돼버리는 것 같다며, 시련은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지는 것이라며 장로님 아들 티를 냈다. 그러나 세상에는 시련을 이겨내기는커녕 그것에 압도되어 끝내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진원은 그런 것을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많은 것이 주어진 것을 감사해하며 주변에 많이 베풀고자 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진원은 늘 내 곁에 있어줄 것이다. 나 역시 최대한 그러고자 노력하겠다는 마음이지만, 그런 결심이 없었다면 감히 진원의 끈질긴 청혼을 마침내 수락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가 내게 해주는 것만큼 그를 지키고 돌볼 자신은 솔직히 없었다.
진원이 나의 법적이자 실질적인 보호자로서 더없이 잘해낼 것을 이미 믿고 있지만, 내가 그의 보호자의 역할을 해야 할 때 내가 잘해낼 수 있을지는 나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시험에 드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그리고 진원이 이런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눈치채지 못하기를 나는 간곡히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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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든 진원을 바라보며 전에는 경험한 적 없던 승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우습게도 요한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리 요한이 나보다 많은 시간을 진원과 보냈어도, 그래서 형제를 넘어 쌍둥이 수준의 깊은 우애를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결코 나처럼 진원을 가질 수 없다는. 진원의 몸과 마음은 모두 내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전에 없이 격렬한 방식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하하, 그럼요. 제가 얼마나 쫓아다녔는데요.
진원의 말은 과장이었다.
물론 진원이 먼저 데이트하자고 했고 정식으로 사귀자고 고백했고 청혼도 했다. 진원은 첫눈에 내게 반했고 결혼할 여자라고 느꼈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나 역시 그에게 강한 호감을 느꼈으므로 우리의 연애는 순조롭게 시작되었었다. 더구나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면서는 오히려 내가 바쁜 그의 일정과 동선에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진원의 말은 반 정도만 맞는다.
그러나 진원은 늘 자신이 나를 일방적으로 쫓아다닌 것처럼, 내가 매우 콧대 높게 굴었던 것처럼 사람들 앞에서 말하곤 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께는 물론이고 자신의 부모님께도 자신이 내게 목 매는 것처럼 강조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진취적이지 못한 나로서는 이런 진원의 태도가 내심 기분 좋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성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진원의 이런 태도를 부러워하고 때로는 질투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슬픔은 나누면 동정을 얻지만 기쁨을 나누면 질시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런 행복한 고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배부른 소리일 테니까. 그러니 아마도 요한과의 일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옥에티 같은 존재일 테니까.
다른 많은 보통의 사람들처럼 내 삶은 지루하고 심심했다.
평범한 부모에게서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다. 별다른 굴곡 없이 평온하게 살아온 것도 운이 좋다면 좋은 것이겠고 배부른 소리겠지만, 특출난 재능도 남다른 열정도 커다란 포부도 없이 산다는 것은 때로 공허하고 허무했다.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면 격렬한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게을렀고 몸치였다.
그래서 나는 누워서도 즐길 수 있는 만화와 영화와 드라마들을 좋아했다. 힐링이 아니라 현실의 내게는 부족한 자극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공포영화나 범죄물, 나아가 막장물을 선호했고 판타지 장르도 즐겨서 진원을 비롯한 남자친구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극적인 것들을 쉴새없이 보고 읽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간접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했다.
어쩌면 상대방 그 자체보다는 연애라는 경험이 주는 설렘 자체와 일대일의 관계라는 특이성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의 연애는 오래 가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면 다 괜찮은 남자들이었고 나를 많이 좋아해주었다. 내가 먼저 고백한 적도, 이별을 고한 적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먼저 다가왔고 먼저 떠났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떠나는 그들이 남은 나보다 힘들어 보였던 것은 내 알량한 자존심의 투영이었을까.
집에 돌아와 숨죽여 운 적은 나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많고많은 볼거리들로 돌아가면, 그것들로 내 머릿속을 채우고 나면, 더는 슬픔이나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너무도 차가운 사람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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