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섰다.
20대의 어느 날,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문득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거울 속의 나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분명 매일 보고 살아온 내 얼굴인데, 마치 아주 오랜만에 만난 인물처럼 느껴졌다. 이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나'는 누구일까?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가면을 요구한다.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침묵을, 때로는 이해를 가장하라고 한다. 이 모든 가면을 써가며, 나는 과연 어디까지 진짜 나 자신을 지켜냈을까?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면, 그 아래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그것이다.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그리고 잃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내면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때로는 그 목소리가 너무 커져 나조차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날도 그랬다. 거울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마치 다짐하듯이, 잊지 않겠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아무리 삶이 나를 흔들고 무너뜨리려 해도, 내 내면의 그 작은 목소리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이 세계는 나를 계속해서 끌어당기고, 그 속에서 나는 나조차 모르게 서서히 바뀌어간다. 그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때쯤, 나는 더 이상 거울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나 스스로도 이미 포기한 건 아닌가. 세상의 요구에 맞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조금씩 내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진짜 나’란 무엇인가?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은 분명 쉽지 않다. 그것은 세상과 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외로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나는 언젠가 그 거울 앞에서 다시 한번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기를 바란다. 나 자신을 마주할 용기, 그리고 그 용기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를.
아마도, 그것이 진짜 나를 찾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