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섬세함과 예민함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그 경계는 언제나 흐릿했고,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섬세함은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바라보는 능력이라면, 예민함은 그 작은 것들에 너무 깊게 반응하는 특성일 것이다. 나는 그 둘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섬세하다는 칭찬을, 때로는 예민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내게 ‘섬세하다’고 말했다. 나는 작은 변화에 민감했고, 누군가의 말투나 표정에 담긴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 덕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고, 때로는 그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런 감수성은 점차 무거운 짐이 되어갔다. 상대방의 작은 움직임에도 마음이 요동쳤고, 그들의 기분 변화에 나의 감정도 휘둘렸다. 섬세함은 점차 예민함으로 변해갔고, 나는 그 예민함에 사로잡혀 종종 힘들었다.
삶은 예민함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민감하다고,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쓴다고, 생각이 너무 많다 말하며 나를 불편하게 여겼다. 나는 그들의 말에 스스로가 문제라고 느꼈고, 내 감정에 반응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감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쉽게 상처받았고,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다쳤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민함이 정말로 나쁜 것일까? 내가 예민한 것인지, 혹은 그저 세상을 조금 더 깊이 느끼는 것일 뿐인지. 그리고 그 차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내 감정을 받아들이고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섬세함과 예민함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둘 다 내가 삶을 경험하는 방식이고, 내가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그 예민함에 휩쓸리지 않고, 섬세함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이제는 예민함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깊게 느끼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둘을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섬세함과 예민함 그 어딘가에서,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 경계에서,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