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제2외국어로 처음 일본어를 접했다.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단어와 문장이 전부였다.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만 간신히 익혔을 뿐, 깊이 있는 흥미를 느낄 기회는 없었다. 영어는 일찍 포기한 상태였고, 외국어란 나와는 멀리 있는 영역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문득 외국어 하나쯤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본어 문법책을 하나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나는 흥미가 생기면 그 주제에 빠져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성향이 있다. 일본어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넘기며 한자와 문법을 외우고,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찾아 모았다.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하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잠을 줄여가며 온 마음을 기울였던 열정은 어느새 시들해졌다. ‘흥미와 권태의 반복된 일상’은 어쩌면 나의 삶을 정의하는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뜨겁게 타오르다 곧 식어버리는, 그러면서도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이 패턴 속에서 일본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20대의 나는 내면의 혼란과 함께 나만의 페르소나 속에 갇혀 있었다. 아무리 일기에 내 마음을 적어보아도, 그 안에는 진짜 내가 없었다. 어느날 꼭꼭 싸매지 못해 흘러나오는 마음이 있었다. 서툰 일본어로 그 마음을 눌러보려, 비뚤어진 글씨로 속마음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낯선 언어를 통해서만 비로소 꺼낼 수 있는 감정들이었다.
이후에도 사전을 검색해가며 페이스북에 비공개로 작은 글을 남겼다. 서투른 일본어로 사전을 찾아가며 하나씩 단어를 이어갔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었고, 어색한 표현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내가 감정을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내 안에만 머물렀던 마음이 낯선 문장 속에서 새어나오는 순간, 나는 작은 해방을 느꼈다.
그 이후로 조금 더 자유롭게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일본어로 말도 해보고, 내 생각을 더 자연스레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흥미는 언제나 짧았고, 그 뒤를 따르는 권태는 나보다 더 성실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30대가 되었다. 흥미는 여전히 나를 찾고, 권태는 그 뒤를 어김없이 따라왔다. 나는 그 패턴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일본어는 공부중이며, 그 수준은 간신히 일상 회화만 가능한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과정으로 나를 마주하는 일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