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이 텅장으로 변신
드럼을 배우면서 쉬운 곡 한 두곡씩을 연주하게 되었다. 신나는 감정들이 올라와 둠칫둠칫 몸치인 내가 리듬을 타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음악적 소질이 있다는 과분한 칭찬으로 나의 수업 참여도를 끌어주셨고 나의 기쁨수치도 올라갔다. 백혈구 수치도 상승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드럼수업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부잣집 친구가 피아노 학원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곡을 치는 걸 보고 엄마께 피아노 학원을 보내달라고 떼를 쓰던 기억이 났다. 그 시절 부잣집이 아니어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지 못했던 나의 소망이 그때 엄마의 나이보다 더 많아진 지금에 드럼수업으로 한을 풀게 된 듯 느껴졌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 라고 했던가! 드럼수업이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지던 시간에 팔꿈치 통증이 생겼다. 예전에 고생했던 경험이 있었지만 엘보라는 녀석이 다시 찾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누구에겐 지 모를 분노 같은 것이 가슴 끝에서 올라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어릴 적 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나의 동의 없이 주산학원에 등록시켰을 때처럼 화가 났다.
이제야 23년만에 재미있는 나만의 취미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멈추라니..... 결국 드럼 수업 6개월 만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다시 쉼을 선택하게 되었다.
더구나 20년 넘게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 통장이 잠정적 백수가 된 몇 개월 만에 점점 숫자가 줄어들어가는 텅장이 되어감을 확인했을 때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회사를 이직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택근무여서 시간적 여유도 있고 무엇보다 한 달에 한 번만 서울로 출근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조건이 사실이라면 내겐 아주 좋은 기회였고, 도전해보고 싶은 자리였다. 길치인 내가 지하철 3번을 갈아타고 서울로 면접을 보러 갔고, 경력이 인정되어 온라인 학습지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