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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백수가 된 봄날

멈춤이 내게 준 선물

by 부자꿈쟁이

퇴원을 앞두고 병실 회진을 돌던 담당의사께서 아주 나지막하게 물으셨다.

"혹시 집안 경제를 책임지셔야 하나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뜬금없는 질문이라 이해가 되지 않은 내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다시 질문하였다.

" 환자분께서 경제 활동을 꼭 하셔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잠시 휴식을 취하시는 게 환자분께 가장 좋은 처방이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남편은 일찍 출근하기 전 병실에 잠시 들러 얼굴만 보고 가던 터라 환자인 나에 대한 상담을 거의 할 수 없었기에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내가 남편 없이 혼자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짐작하신 듯하였다.

내게 가장 필요한 건 휴식이니 회사를 그만두고 푹 쉬어야 함을 에둘러 표현해 주신 것이다.


대상포진이 몇 년 만에 두 번째로 찾아왔다. 두 번째 방문도 달갑지 않은데 코로나라는 묵직한 녀석까지 함께 대동하며 나타나 나의 백혈구 수치를 아주 낮게 만들어 주었고, 입원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퇴원과 동시에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국장님은 두어 달 쉬고 다시 나오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나를 잡아두고 싶은 의사 표현을 해주셨다. 솔직히 갈등이 되었다. 아직 이렇게 퇴사를 하고 싶지는 않다.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퇴사라니......


고민이 된다는 내게 남편은 "당장 때려치워 사람이 아픈데 무슨 고민이야 고민이" 라며 소리를 질렀다.

따뜻한 봄날에 나는 계획되지 않았던 어정쩡한 백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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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