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멈춤 속에서 내가 찾은 것

느려도 괜찮아

by 부자꿈쟁이

둘째 아이가 22개월일 때 나는 학습지 회사에 교사로 입사했다. IMF가 와서 남편 회사가 힘들어졌고, 우리 집 경제도 덩달아 휘청거렸기에 나는 다시 직장을 알아봐야 했다. 그때 마침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우연히 전화통화를 하다가 본인이 다니는 학습지 회사를 이야기하며 추천을 해주겠다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아니 진짜 그만큼 월급 주는 거야? 다단계 이런 건 아닌 거지?" 그때까지만 해도 방문 학습지 이런 것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던 나는 왠지 친구가 미덥지 못했고, 의심이 생겼다.

" 진짜야.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해? 난 특별나게 일을 잘하지 못해도 이 정도 받으니 넌 학원강사 경력이 있으니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평소 진솔하고 착하다 생각했던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학원강사일을 알아보는 중이라는 내게 권해준 학습지 회사는 학원의 월급 보다 몇 배를 받을 수 있다는 유혹을 주었고, 1999년 덜컥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힘이 들었지만 아이들을 만나고, 학부모님들을 상담하는 일은 내게 큰 보람과 성과를 가져다주어 힘들지만 재미있고 신이 나는 시간들로 그렇게 조용히 23년을 채워주었다.

.

.

.

퇴사 후 바쁜 아침 시간에 나만 조용히 멈추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은 시계를 보며 ' 지금쯤 이 시간엔 회의를 하고 있겠지?' 라며 과거의 습관에 묶여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랜 시간 멈춤과 쉼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기에 퇴사 후 내가 한 일은 잘 쉬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성과와 목표를 가지고 관리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갑옷 속에 숨어 살아온 나의 딱딱해진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계획되지 않은 퇴사였기에 출근하지 않은 아침은 멍청해지는 마음을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아침 햇살이 창가에 내려앉는 따스함을 바라보며,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에 차 한잔을 천천히 마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얼마나 조급하고 빡빡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새벽독서 모임을 알게 되면서 나는 읽고 쓰는 마음 채우기를 찾게 되었다. 오랜만의 멈춤을 통해 나는 내가 변화하는데 필요한 건 채우기에 앞서 비워야 한다는 진리도 덩달아 깨닫게 되었다. 채우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비워야 다시 채워진다는 진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가진 욕심, 두려움, 체면들을 비워내니 새로운 배움들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멈춤 속에서 찾아낸 것은 새로운 배움에 대한 도전과 열정을 지닌 나 자신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진짜의 마음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선택한 멈춤은 아니었지만 멈추어 보니 알게 된 것이 생겼다.


인생은 빨리 가는 사람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늦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함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길을 준비해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멈춤 속에서 나는 그동안 일을 하는 나로만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잘 쉬는 방법도 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나를 회복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늘 빠르게 걷던 걸음을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바꾸니 조급하던 마음의 속도도 함께 느려지게 되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찾으며 가장 먼저 내 마음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었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08화걸림돌과 디딤돌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