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
축축한 기분을 느낍니다
축축한 장판 때문은 아닙니다
마음은 덜 마른 기분이고
덜 마른 냄새가 집에 남습니다
남의 집을 남보다 못하게 들어오는
작고 약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산새가 날아갑니다
비도 오는데 날아갑니다
갈 곳이 없어서
갈 곳을 찾아갑니다
갈 수 있어서
가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합니다
결핍을 사랑하는 모임에 갔습니다
결핍된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마구 웃다가 마구 울다가
이제는 결핍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결핍된 자가 있을 곳이 아니라
결핍된 이곳을 떠났습니다
먹이를 구합니다
먹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단지 살아 숨 쉬는 걸
숨을 멎게 하고 싶었습니다
죽은 것을 숨 쉬게 하고 싶었습니다
죽을 정도로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
머금는다.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지라
언제나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좋기도 합니다
머금은 자들은 모임이 없습니다
말조차 머금어서 모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 곳을 찾았습니다
간 곳을 떠나야 합니다
언젠간 갈 곳도 떠나야 합니다
하늘에서 언제나 살 수 없습니다
산새가 날갯짓합니다
산새가 갈 곳을 찾아갑니다
희미한 빛이 보입니다
희한한 기분이 듭니다
휘청거리던 나를 기억합니다
희끄무레한 산새가 옵니다
희번덕거리려 나를 봅니다
나의 봄날이 갑니다
이 시는 두 가지 전개가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1, 3, 5연은 방황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2, 4, 6연은 산새가 날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서사는 따로 움직이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시를 다시 읽으면, 개인과 산새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축축하다는 표현은 단순히 습기를 넘어선 무언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비에 홀딱 젖은 기분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젖은 장판을 밟는 듯한 불쾌하고 지속적인 감각이다. 축축한 기분은 보편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다. 시 속의 화자는 이 축축함을 "덜 마른 냄새"로 표현하며 그것을 혐오한다. 그러나 이 축축함은 단순한 냄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삶 속에서 결핍과 고립,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남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살던 화자의 어린 시절은 "작고 약했던 우리"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이 축축한 기분은 단순히 과거의 환경이 아니라, 결핍이 남긴 흔적이다. 아무리 탈취제를 뿌려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처럼, 화자의 삶에 스며든 결핍과 고독은 떨쳐낼 수 없는 무언가로 남아 있다.
"머금다"는 이 시의 중요한 키워드다. 화자는 결핍을 말하지도, 완전히 소화시키지도 못한 채 머금고 있다. 결핍을 머금은 자들은 결국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결핍을 말하지 않고도 그것을 공유하고 싶은 모순된 욕망 때문이다. 화자가 언급한 "결핍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이러한 결핍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핍으로 인해 글을 쓰고, 또 결핍으로 인해 서로 연결되지만, 결국에는 더 깊은 고립으로 돌아간다. "내가 더 상처받았고, 내가 더 극복했다"는 식의 대화는 화자를 더 외롭게 만든다. 결핍은 공감을 통해 치유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시 속 화자는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벽을 만들어내는 것을 경험한다.
2연에서 산새는 비를 맞으며 날아간다. 산새의 날개는 젖어 있지만, 그것이 그를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산새는 갈 곳을 찾기 위해 계속 날아가고, 방황 속에서도 어딘가로 향한다. 그러나 산새가 방황을 끝내고 도달할 안식처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산새의 비행은 방황하는 개인의 모습과 겹쳐진다. 방황은 단순히 길을 잃은 상태가 아니라, 무언가를 찾으려는 과정이다.
산새가 먹이를 구하는 장면은 생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식욕의 충족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찾으려는 행위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산새는 혼란스럽다. 먹이를 구하고, 자신을 채우는 듯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신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산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단순히 먹고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자신과 같은 존재들, 곧 방황하는 다른 이들에게 숨을 불어넣는 구원자로서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산새는 갈등하며 방황을 지속한다.
긴 방황 끝에 산새는 갈 곳을 찾는다. 그러나 그곳은 정착의 종착지가 아니다. 갈 곳을 찾았다는 것은, 지금 있는 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곳조차도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완전한 정착지 없이 살아가지만, 여전히 날개를 펴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
마지막 연에서 산새와 방황하던 개인은 만난다. 희미한 빛이 보이는 순간, 화자는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분리해서 바라본다. 과거의 나는 휘청거리고 있었고, 어쩌면 지금도 휘청거리고 있다. 하지만 산새와 개인의 만남은 화해의 순간이다. 두 존재가 마치 거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듯, 산새와 개인은 동일시된다. 방황 끝에 화자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그것은 하나의 죽음이자 새로운 탄생이다.
"나의 봄날이 간다"는 문장은 끝맺음이자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봄날이 진다는 것은 슬픔이나 후회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자연스러운 계절의 순환을 나타낸다. 방황과 결핍은 끝날 수 없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산새와 개인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은유다.
결국 이 시는 방황과 결핍, 그리고 그로 인해 발견되는 새로운 자아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나아가는 인간의 본질을 담고 있다.
산새의 날갯짓은 곧 우리 자신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