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나는 왜 시원하고 편안한 집을 놔두고 아이들과 이 먼 곳까지 와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폭염의 날씨에 목포 어딘가 낯선 바닷가, 해수욕장 한 편의 데크 위, 텐트를 지붕 삼아 온몸에 땀을 흘리며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과 시원한 물로 샤워를 했지만, 개운함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금 온몸에 땀이 차올랐다. 더위에 지쳐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시원함보다는 부채질을 함으로써 더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손선풍기를 하나는 발 밑, 또 하나는 머리맡에 두었지만 작은 선풍기로는 한여름밤의 더위를 쫓아내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갈수록 더위는 가시지 않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자정을 넘어서도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양 옆에 윤우와 윤제 두 아들이, 더위도 여행의 피곤함도 잊은 채 곤히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 잠깐이나마 나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게 만들었다. 나는 이 무더위 속에 아이들과 왜 밖에서 잠을 자고 있는가?
언젠가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는 시원하고 즐겁고 행복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갖고 싶으면 가질 수 있고,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배고픔과 공허함, 기다림과 인내 같은 결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덥고 힘들며 참아야 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 넘쳐나고 피할 수 없지만, 견디고 이겨낸다면 결국 자신을 단단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욱 행복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질문과 걱정이 썩인 주변의 말을 들었다.
"이 더위에 배낭여행을 간다고요?"
"애들이랑 잠을 텐트에서 잔다고요?"
"아니! 차도 안 끌고 버스 타고 배낭여행을 간다고요?"
"그럼 짐은요?! 네? 배낭을요? 애들도요?"
그럼에도 나는 작은 희망과 희열을 느끼며, 아이들과의 배낭여행에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지구본을 보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작은가 궁금했었다. 하지만 그리도 작은 나라에서도, 내가 살던 시골 마을에서 옆 도시로 가는 데 몇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지구는 얼마나 큰 것일까? 두려움과 설렘이라는 감정이 뒤섞여 어린 나의 마음을 채워왔다. 그래서 어릴 때 지구본이 닳도록 봤던 기억이 있다. "이 나라에는 누가 살까? 여기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대학, 군대, 직장 생활을 거치며 어렸을 때 내 가슴을 부풀게 했던 설렘은 마음 깊은 곳으로 사그라들었다.
결혼 후, 어느새 두 아들의 아빠가 된 나는 더 바쁘게 살아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뒤집고, 걷고, 뛰며 세상을 알아가는 모습을 보며, 내 안의 설렘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잠시 주춤할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세상을 누비고자 하는 열망은 더 강하게 다가왔다. 집에 큼지막한 우리나라 지도를 붙이고, 지구본을 아이들과 함께 보며, 나의 어린 시절 설렘이 되살아났다.
무더운 여름 바닷가 데크에 누워, 처음엔 아이들에게 세상을 알려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나왔지만,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하며 내가 더욱 성숙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일 당장 우체국으로 가서 텐트를 집으로 보내야겠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지만 이러한 힘든 과정이 초라한 아빠를 조금이나마 성장시키고 있음을 느낀다.
땡볕 속에 힘들게 걸어온 우리 아가들은 지금 무슨 꿈을 꿀까? 온 세상을 누비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아빠는 소망한다. 사랑하는 아가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