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여름방학 배낭여행_셋째 날 <순천>

너른 뻘 밭에 우뚝 선 세 남자

by 윤부파파

새벽 내내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였다 깬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도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그런데 뒤척이는 소리에 깬 둘째가 팔과 다리를 사정없이 긁는다. 아이들의 팔과 다리를 들여다보니 온통 모기 물린 자국이었다. 텐트 양쪽 가장자리에 누운 아이들을 텐트 메쉬 너머로 모기들이 물어버린 것이다. 아빠인 나만 가운데서 모기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동이 터서 첫째와 둘째 모두 눈을 떴다. 모두 비몽사몽의 멍한 표정이지만, 그 뒤에는 '우리가 해냈어! 이 더위에 텐트에서 무사히 하루를 버텼어!'라는 뿌듯함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는 '텐트는 택배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우리 오늘 텐트를 집으로 보내자!"라는 내 말에 아이들은 "그럼 우리는 어디서 자?",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는 거야?"라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숙소에서 자자."

"야호~ 오예!"


아이들은 모기밥이 되었고, 아빠는 더위에 잠을 설쳤지만, 그래도 그곳은 5성급 호텔 못지않은 야영지였다. 저녁엔 간조라 바닷소리가 잦았지만, 새벽이 되자 만조가 다가오는지 멀리서 파도소리가 철썩이며 자장가처럼 들렸다.

하늘을 지붕 삼아 야영을 하는 것의 묘미가 이것이다. 산속에서는 벌레 울음소리와 새소리와 함께 새벽을 맞고, 여름 계곡에서는 출렁이는 물줄기의 리듬이 음악처럼 들린다. 때론 꽝꽝 얼어붙은 강물 위에서 얼음이 갈라지는 "콰광" 하는 소리에 새벽잠이 깨기도 한다. 겨울 산속 데크 위에서는 눈이 소리를 삼켜버려 고요 속 아침을 맞이하기도 한다.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며 텐트 문을 열고 나올 때, 나를 반겨주는 풍경들이 나로 하여금 자꾸 밖으로 밖으로 나가게끔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나의 역마살에 아이들까지 덩달아 끌려다니는 것은 아닌가 싶어 가끔 미안해지기도 한다.

어제 목포에서 사 온 친절함에 묻은 빵들과 초코바, 소시지로 아침을 해결했다. 오늘은 목포에서 순천으로 이동해야 한다. 어제 물놀이는 원 없이 했기 때문에 첫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가기로 했다.


문득 붉게 물들었던 어제저녁의 바다가 떠올랐다. 어제 초저녁의 새빨갛게 물들었던 바다는 어디 갔을까? 오늘 아침의 바다는 약간의 푸른빛의 진회색이다. 어제와는 다르게 차분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했다.


노지에서 야영을 할 때 꼭 지키는 규칙이 하나 있다.

"그 누구에게도 내가 왔던 흔적을 보여서는 안 된다."

소중한 자연은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다. 데크를 훼손하거나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 더불어 자릿세를 낼 겸 주변에 널린 쓰레기도 함께 정리를 한다.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주변에 쓰레기를 줍도록 미션을 주면 이제는 "왜 내가 버리지도 않은 거 주워야 해?"라는 물음은 이제는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삶의 규칙을 배워가는 모습에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아이들이 주변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텐트를 정리했다.

바닷가를 끼고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어제도 두 번을 왕복했던 길이지만 아침에 걸으니 또 새롭다. 아이들이 작은 섬을 보더니 고래와 닮았다고 '고래섬'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섬 중간에 키가 큰 나무사 우뚝 솟아 있어 고래가 내뿜는 물줄기 같아 보였다.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본인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저장하는 듯하다.

가끔 잠자리에서 지난 여행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생각지도 않던 여행의 기억들을 아이들은 떠올리곤 한다. 어른들의 때 묻은 안경이 아닌 아이들의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나도 되찾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것을 동심이라고 하나보다.


어제 목포에서 들어오는 배에는 그래도 여행객들이 제법 있었지만, 오늘 목포로 나가는 배에는 대부분이 섬 주민분들이 타고 계셨다. 배낭을 멘 우리 부자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하루를 섬에서 보낸 덕분에 이질감은 크지 않았다.

어제 한 번 배를 타봤다고 나름 늠름해진 우리 아이들은 배 안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바빴다. 만화에나 나올 법한 동그란 창문을 발견하고는 어찌 기뻐하던 지, 볼트와 너트로 된 시건장치는 아빠인 내가 봐도 정말 독특했다.

어제 외달도로 들어갈 때는 설렘으로 가득했지만, 외달도에서 떠날 때는 진한 여운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며 목포에 도착하니, 텐트를 집에 보낸 다는 생각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다시 돌아온 목포.

누군가는 설렘을 갖고 배에서 내리는 듯하다. 우리는 여운을 남긴 채 배에서 내렸다.

'어제오늘 고생했다. 우리 아가들, 다음에 또 들리자 외달도.'

이제는 친숙해진 목포항을 떠나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목포버스터미널로 왔다. 신안 증도를 가기 위해 들렀던 곳인데, 며칠 지난 일이 오래전 기억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외달도에서의 여정이 힘겹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순천으로 가는 버스에도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우리밖에 없다고 좋아했고, 나도 아이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떠들 수 있어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버스를 한 번 둘러보니 왠지 모를 쓸쓸함을 풍기고 있었다.

'이러다가 시골에 있는 버스가 다 사라지겠는걸?'

요즘은 버스터미널에 가면 운행하지 않는 노선이 많아졌다. 다양한 시간들로 채워져 있어야 할 시간표에는 빈칸이 늘어나고, '운행중단'이라는 문구가 채워지고 있다. 당장에 내가 살고 있는 구미버스터미널 시간표만 그렇다. 점점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 힘들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만큼 우리들의 이번 여행이 더 값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드디어 순천에 도착했다. 우리가 순천에 온 목적은 두 가지 때문이다. 바로 뻘배체험과 순천그림책도서관에 방문. 오늘은 먼저 뻘배체험을 하기로 했다. 그전에 점심을 먹고 빨래를 해야 했다. 지인이 운영하는 팥죽집을 찾아갔다. 어딜 가든 밀짚 모자를 쓰고 배낭을 둘러멘 우리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주시는 분들이 많아 마음이 따뜻했다.

그리고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

"엄마는 어디 있니?"

평소 팥죽과 팥 칼국수를 즐겨 먹는 형제들이다. 더운 날씨에 뜨겁다고 투정 부릴까 걱정했지만, 싹싹 한 그릇씩 뚝딱 해치웠다. 그런데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빈손으로 찾아뵙게 되어 너무 죄송스러웠다. 음식값을 받지 않으시려고 해서 계좌로 입금을 했다. 지인분은 아이들에게 고생한다며 용돈까지 쥐어주셨다. 괜히 부담만 드리는 건 아닐까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먼 길 찾아와 인사도 드리고 다음에 또 찾아뵐 수 있는 첫 발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꼭 감사 선물을 사가자고 다짐했다.

나는 시골에서 크고 자라며 수없이 많은 어른들 속에서 살았다. 집 밖을 나와 몰래 버스정류장에 가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어디에서나 보는 눈이 있을 정도로 이웃이 많았다. 그 눈은 감시의 눈이 아니고 정에서 비롯된 따듯한 눈길이었다. 그런데 요즘 아파트에 살며 앞 집에 사는 사람들과도 단순한 인사를 나눌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물리적으로 아이들에게 이웃을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다양한 환경에서 만나게 해주는 것이 내가 어릴 때 경험했던 사회적 감정을 아이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 아니겠는가.

뻘배체험장은 순천 시내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다.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택시를 타게 되었다.

'이 더운데 뻘배 체험하려고?'라는 표정으로 반겨주신 사장님.

모자부터 티셔츠, 바지, 양말까지 모두 갈아입고 뻘배 타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뻘배보다는 뻘에서 뛰노는 게 더 신이 난 듯했다.

아이들과 서해 갯벌에 여러 번 갔지만, 그곳은 발이 푹푹 빠지는 뻘이 아니었다. 갯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발이 풍덩 빠지고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그런 뻘이었기에 이곳 뻘배체험장에 오게 되었다.

밟을 때마다 발이 빠져 들어가고, 부드럽고 시원한 촉감이 아이들을 사로잡았다. 평소 같으면 "안돼, 하지 마, 그만해, 더러워" 같은 말이 나왔을 텐데, 그럴 필요가 없으니 나도 아이들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숨을 돌리니 주변에는 망둥어도 있고 게도 있었다. 걸어 다니는 물고기라니. 생긴 것도 귀여운 망둥어를 잡으려고 아빠와 아이들이 노력을 했지만 도저히 뻘에서는 민첩한 망둥어를 이길 수가 없었다. 어찌나 눈치가 빠르고 몸이 재빠르던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망둥어보다 둔한 게를 잡아 뻘 위에 올려두고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오후 뻘배 체험장에는 더위도 막을 수 없는 아빠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순천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 시간에 맞춰 체험을 끝냈다. 샤워장이 있어 개운하게 씻고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뻘배 체험장은 이젠 고요하고 조용했다.

"안녕"

버스를 타기 위해 마을을 지나가는데 거차 마을지도가 눈에 띄었다. 자신들이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열심히 살펴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오늘 일정이 마무리 되어감에 나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고, '오늘도 해냈구나' 하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시내버스를 타기 전 시원한 소나기가 내렸다.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소나기에 우리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평소 같았으면 투정부리며 비를 피하기 위해 바빴을 테지만 오늘은 세상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겨났다.

순천역에서 내려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쉼 게스트하우스' 참 오늘의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숙소의 이름이다. 4인 가족실이었는데 2층 침대가 두 개씩이나 있어 두 형제들은 무척 신나 했다.

결혼 전,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순천 온 적이 있었다. 다른 기억들보다 순천역 앞에서 아내와 햄버거를 먹은 기억이 유독 뚜렷하다. 이번에는 아내 없이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처음에는 아직도 그 햄버거 집에 남아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내와 함께 했던 추억의 장소에 아이들과 다시 마주 앉아 있으니 신기하고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한 번 갔던 곳에 다시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극도한 거부감이 있었다.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장소도 언제 가느냐,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고 느껴진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고 또 가야 할 곳이 넘처남에 그저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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