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여름방학 배낭여행_넷째 날 <구례 노고단>

1500m 호텔에서의 하룻밤

by 윤부파파

넷째 날 아침이 밝았다. 어제저녁 마트에서 사놓은 우유와 시리얼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순천에 온 두 번째 목적지인 순천 그림책도서관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다음은 구례로 넘어갈 예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오늘 일정은 무겁기만 한 텐트를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6.6kg의 짐들이 나의 어깨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짓눌러왔다. 드디어 해방이다. 아이들과 함께 우체국에서 택배를 보내는 색다른 경험에 뿌듯함도 잠시, 집에 혼자 있을 아내가 이 택배를 받고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내 없이 아이들과 셋이서 캠핑을 자주 갔었다. 육아로 힘들 아내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나서는 일이 많아지곤 했다. 아내의 육아 짐을 덜어줄 수 있어 좋았고, 아내에게 생색을 낼 수도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엄마는 김씨고, 우리는 심씨잖아.", "맞아. 'ㅅ'을 옆으로 세우면 'ㄱ' 되는거야." 와 같은 말들로 소외감을 느끼던 아내가 어느새 우리 '심부자'의 아웃도어 생활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집에 홀로 있을 아내는 이 택배를 받고 어떤 기분이 들까?

우체국을 나와 도서관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이제 밀짚모자는 우리 부자를 하나로 묶어주는 작은 상징이 되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크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가족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광고판 같았다.

"우리 가족이에요."

"우리 여행 다니고 있어요."

처음 집에서 나올 때 쓰고 왔던 모자는 가방 속 깊이 고이 모셔두고 아침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밀짚모자를 집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도서관까지는 제법 걸어가야 했지만, 이제 둘째는 "아빠, 왜 도서관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없는 거야?"와 같은 질문도 투정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여기는 구미랑 똑같네.", "아빠, 제조가 뭐야? 방법은 뭐야?"와 같이 주변을 탐색하고 간판 읽기에 여념이 없다.

얼마나 궁금할까? 이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할 시기이다. 다른 엉뚱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본인의 주변을 탐색하고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드디어 순천그림책도서관에 도착했다. 뜻밖에도 김중석 작가님의 아주 반가운 그림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던 김중석 작가님의 그림이 도서관 곳곳에 숨어 있어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즐거워했다.

김중석 작가님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유치원 그림책잔치 행사에서 여러 번 만났었다. 우리 집 장기판과 거실의 시계에는 김중석 작가님의 그림이 담겨 있다 보니, 우리 가족 모두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작가님의 그림을 먼 순천에서 만나다니 정말 기쁘고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하나가 김중석 작가님의 '나오니까 좋다'이다. 고릴라인 릴라는 낙천적이고 느긋하며 캠핑을 즐긴다. 하지만 고슴도치인 도치는 성격이 급하고 조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릴라와 도치가 캠핑을 가며 겪는 일들을 그림책으로 다루고 있다.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은 둘 다 "나오니까 좋다!"로 끝나는 나에겐 아주 희망적인 그림책인 것이다. 릴라는 나 같고, 도치는 아내와 닮아 있어 더욱 애정이 간다.

아이들과 함께 알고 있던 그림책을 찾기도 하고 새로운 그림책을 같이 읽기도 했다. 우리의 배낭여행의 시작을 도와줬던 '우리땅 기차 여행'이라는 빅북도 있었다. 대부분의 도서관이 성인 열람실이 중심인데 이곳은 온통 그림책뿐이었다. 어른도, 노인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그림책이다. 이런 사실을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도슨트 시간에 맞춰 그림책을 다 읽고 올라왔다. 그냥 봤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내용을 쉬운 설명과 함께 들으니 이해가 잘 되었다. 아이들도 유치원에서 보고 들었던 경험을 살려 자신감 있게 손을 들고 발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시회장으로 향하는 벽화를 이수지 작가님께서 직접 그리셨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생동감이 넘치고 그림책의 한 장면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경험으로 앞으로 우리 가족 여행 중 방문하는 지역의 도서관을 꼭 들리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에게 쉼의 공간이자 새로운 배움의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주말마다 도서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캠핑도 가야 하고 등산도 가야 하는데 매주마다 도서관에 가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면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꺼내와 읽는 모습에 습관의 힘을 새삼 느낀다.

구례에 도착해 터미널 인근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구례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저녁에 노고단 대피소에서 먹을 점심과 아침을 마트에서 구입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고 싶었지만 조리용품을 챙기지 않았기에 비화식으로 준비했다.

성삼재로 향하는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오래 달렸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곤히 잠이 들었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구례 읍내는 구름 속에 갇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가 높은 곳에 왔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동생이 힘들어하니 가방을 살짝 들어주는 첫째의 모습이 뭉클했다. 늘 싸우기만 하는 형제지만 가끔 서로 위하는 순간이 있다.

연년생의 두 형제가 언젠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길 바란다.

리모델링된 노고단 대피소는 캡슐 호텔처럼 1인실 구조였다. 우리는 세 칸의 침실을 배정받았지만, 아직 독립 수면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좁은 내 방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셋이 누워보니 비좁지만 오히려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했다. 이 정도면 첩첩산중에 호화스러운 호텔이 아닐 수 없다.

대피소에서는 햇반이나 물, 초코바 같이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물품만을 판매한다. 말 그대로 등산 중 잠시 쉬어가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언젠가 아이들과 지리산 종주를 하는 날을 꿈꾸며 이번 배낭여행의 일정 중 노고단 일출 보기를 넣게 되었다.

저녁으로는 간단히 물만 끓이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과 편육을 준비했다. 대피소에서 햇반을 구입할 수 있기에 짐을 줄일 수 있었다. 아이들은 게 눈 감춘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수육과 라면을 먹어치웠다. 그런데 옆 테이블 나는 삼겹살 냄새는 참기 힘들었다.

"다음에 엄마랑 올 때는 삼겹살 꼭 구워줄게!"

아이들과 약속했다.

대피소에서는 아이들이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없다. 새벽 일찍 산행을 하는 분들이 많아 침실 내에서는 정숙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놀이터도 없으니 구례에서 아이들 간신을 잔뜩 사 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졌다. 외달도에서 본 바다 위에 붉은 노을과 닮았지만 산에서 맞는 노을은 또 달랐다.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과 산봉우리 사이로 스며드는 태양은 같은 듯 달랐다. 내일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새벽 5시에 기상해야 한다.

오늘의 노을만큼이나 내일의 아름다운 일출을 기대하며, 우리는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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