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은 충분히 즐겼다.
여행을 다녀온지 한 달이 지났다. 방학은 끝이 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달 전 배낭을 메고 낯선 여행지를 떠돌던 우리는 이제는 누군가의 여행 속 일상으로 스며든 듯하다.
까맣게 탔던 피부는 어느새 원래 상태도 돌아왔고, 종아리와 어깨 근육통들도 사라졌다. 아이들은 여유롭던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으며, 첫날은 힘들어 지쳐 잠들었지만, 다음 날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다.
신안 증도에 가기 위해 수많은 버스를 탔던 때가 기억이 난다.
"아빠 왜 소금박물관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는거야?"
라는 둘째의 질문은 막연하게 무작정 떠났던 배낭여행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시작은 갈피 없이 발걸음을 옮겼지만, 둘째는 나에게 여행의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늦은 오후 소나기 때문에 계획을 수정해야 했던 순간 나 스스로의 순발력에 놀라기도 했고, 비가 오고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상황에서도 아이들 생각이 먼저 나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기도 했다. 힘들지만 믿고 따라와준 아들들과 남자와 남자의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까지 지켜주고 보살펴야 할까 고민하면서도, 동시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함께 어깨동무하며 걸아갈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우리 여행은 생사를 같이한 전우 같기도 했고, 위험한 도로 위를 걷는 아빠 오리 뒤를 졸졸 쫓아가는 아기 오리들처럼 무모하기도 했다.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어 다시금 감사하다.
아빠로써 이번 여행의 배스트 여행지는 신안과 목포였다. 아이들은 순천에서 뻘배를 탔던 경험과 외달도의 해수풀장을 가장 즐거웠던 여행지로 꼽았다. 아이들은 원없이 즐기고 놀았던 순천과 목포를 가장 좋았던 곳으로 여긴 듯하다.
나는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따듯한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신안과 목포가 기억에 남았다.
- 소금박물관을 가기 위해 만났던 기사님들
- 나가는 버스를 놓칠까 걱정스러워 하던 카페 사장님
- 아이들 손에 만원짜리 용돈을 쥐어주셨던 노부부
- 환한 미소로 여행 첫날 피곤을 싹 날려주셨던 목포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 외달도 해수풀장에서 이것저것 챙겨주셨고 오토바이로 섬 투어도 시켜주셨던 라이프가드분들
그 밖에도 수없이 길을 가며 마주치고 응원해주셨던 많은 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늘 마지막으로는 "엄마는 어디있니?" 라는 질문을 했던 웃긴 기억도 있었다.
아이들은 이번 여행에 대해 어찌 생각할까? 십 년 후, 아이들은 이번 여행을 기억할까? 나중에 본인들의 아이가 생기면, 배낭을 메고 자식들과 함께 떠나고 싶어 할까?
그리고 이제, 더운 날 배낭여행은 충분히 즐겼으니, 차디찬 겨울에 아이들과 함께 갈 곳은 어디일까, 지도를 살피며 다음 여행을 고민하는 천상 놀고재비 놀박사 아빠는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