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올게 우도
어제저녁 제주에 도착해 정신없이 밤을 보내서 일까. 마치 오늘이 여행의 첫날인 듯한 기분이다. 새벽에 텐트를 흔드는 바람 때문에 잠을 설쳤지만 아침이 되어 잔잔한 파도 소리에 텐트 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설렜다. 기대와 같이 밖은 푸르름을 뽐내며 "여기, 제주 맞아."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오늘은 우도 속 비양도라는 섬에 가서 야영을 할 계획이었지만 바닷가 바람이 심해 성산을 거쳐 표선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백패킹 3대 성지 중 하나라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아이들도 배를 타본다고 설레었지만 바람 때문에 어제도 고생 아닌 고생을 했는데 비양도에 들어가면 고생길이 훤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숙소 예약 없이 달랑 오가는 비행기만 예약했기에 이런 장점도 있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을 옮길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 자유로움은 때론 나를 불안하게도 만들지만 오늘은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여름철이면 김녕해변의 드넓은 잔디밭엔 텐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있을 테지만 겨울이라 우리 집 텐트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했지만, 온전히 김녕의 풍광을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하늘은 깨끗하게 씻겨 내렸는지 새하얀 구름과 맑은 하늘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고 있었다. 아이들도 그 풍광에 참을 수 없었는지 부리나케 옷을 걸쳐 입고 바닷가 산책을 나섰다. 잔잔한 파도와 푸르름이 나의 걱정을 덜게 했고 아이들은 원 없이 바닷가를 누볐고 나는 오늘 여행을 위해 부지런히 텐트를 걷었다.
산과 들에서 아이들과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다 보면 자연을 깨끗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텐트를 걷는데 데크 위와 주변에 온갖 상처들이 눈에 띄었다. 잔디밭 위에서 불을 피워 타버린 자국들, 데크에 그을린 자국, 나무에 데크 팩을 박아놓은 모습들. 모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들이다. 이러한 행태들 때문에 백패킹을 할 수 있는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에 매우 안타깝다. 야영 금지만이 능사가 아니라, 사용한 만큼 책임지는 제도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멀리 바다에 나가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었다. 멋진 풍경화에 우리 아이들이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바다는 화사했다.
"아빠! 물개 발자국이 있어!"
아이들에게 이끌려 가보니 진짜 이상한 발자국이 군데군데 찍혀 있었다. 저 멀리서 둘이 소곤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가가고 싶었지만, 괜히 또 잔소리를 늘어놓을까 봐 참았다. 나는 언제쯤 관대한 아빠가 될 수 있을까.
한참을 바닷가 탐험을 한 후에 아침을 먹기 위해 김녕읍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으로 내륙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보말이 들어간 칼국수를 먹었다. 작은 우렁이 같은 비주얼이라 아이들이 싫어할 줄 알았지만 진하고 고소한 국물에 금세 그릇을 비웠다. 보말칼국수도 맛있었지만 겨울철 제주 어느 식당을 가도 계산대 옆에 놓인 귤 박스에 아이들이 신기해했다.
"아빠 이거 왜 공짜로 주는 거야?"
"우리가 가지고 가서 팔까?"
가끔 아이들의 순수함 물음에 미소를 짓게 된다.
"이 귤들은 판매할 수 없는 상품인데 맛은 좋은 거라서 농사짓는 분들이 주변 분들에게 나눠주는 거래. 그걸 또 식당 분들은 손님들을 위해 나눠주는 거고."
나눔이 이어지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그런 나눔을 베푸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시원한 칼국수로 배를 든든히 채운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해녀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아이들과 함께 해녀의 생활에 대해 깊이 탐구할 수 있으리라는 나의 믿음이 어리석었다는 것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욕심을 버리고 지금 지나가는 순간도 아이들 가슴 저 깊은 곳에는 남아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마 어리석은 부모는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아이들은 오히려 꼭대기 층 전망대의 가우디가 만들어 놓은 듯한 돌 밴치에서 노는 것을 더 즐거워했다. 다소 민망할 정도로 울퉁불퉁한 돌에서 서로 상황극을 하는데 나는 그저 체념하고 바깥 풍경 구경을 했다.
그런데 바깥 풍경 중 넓은 당근 밭에서 김을 매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파랑 지붕의 세 건물과 돌담이 쳐진 넓은 당근 밭을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저 집에서 살면 어떨까?'
'내가 저 할머니처럼 밭에서 풀을 뽑고, 바다를 보며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행복한 상상에 빠졌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것은 여행자의 시선일 뿐이라는 걸. 지금의 나의 이상도 누군가에게는 꿈일 수 있다. 그저 지금 나의 삶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해녀 박물관을 나와 세화해변으로 가는 길 예쁜 가게도 지나고 동네 작은 언덕에도 올라가 놀았다. 별것 같지는 않지만 새로운 풍경에 아빠도 아이들도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예쁜 세화문구점에서 엄마에게 선물할 달력도 사고 방명록에 각자 멘트를 적고 나왔다. 사장님이 본인도 어릴 때 아빠와 배낭여행 가고, 캠핑 다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런 어릴 적 추억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여행을 열렬히 응원해 주셨다.
이런 만남들이 우리 여정을 따뜻하게 만든다.
버스를 타고 표선으로 향하는데 따듯한 햇살엘 아이들은 깊이 잠이 들었다. 나 또한 겨울철 푸르른 바깥 풍경을 구경하다 잠에 들었다.
"서귀포입니다."라는 버스 안내 멘트에 번쩍 잠에서 깼다. 우리는 급행 버스를 탔는데 빨리 갈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정거장이 많지 않다는 단점도 있었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지만 더 멀리 서귀포까지 오고 말았다. 나도 아이들도 당혹스러웠다. 계획이 틀어졌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돌아가야지. 시간이 지체되어 오늘은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 목욕탕에 들르기로 했다. 코로나 시대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대중목욕탕에 가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목욕탕에 가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배낭을 멘 우리들을 보고 환대해 주신 사장님 덕분에 오래되었지만 푸근한 시골 목욕탕에서 어제오늘의 여독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목욕으로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우리들은 표선 해변에 도착했다. 서해 바다를 연상케 하는 넓은 백사장이 눈길을 끌었다. 노란 모래가 눈부시게 빛나니 가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아이들도 넓은 백사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 보다. 나에게 묻지도 않고 배낭도 벗지 않은 채 그저 멀리 뛰어가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꼭 '가야 할 곳'을 정해두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그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나는 오늘 야영장에 텐트를 설치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 가족뿐이다.
1일 1도서관 방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근처 표선도서관에 들렀다. 가는 도중 4.3사건 관련한 장소가 있어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고 같이 묵념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가야 했던 참극을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본인들 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는 것에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군인들이 아이들은 총으로 쏜 거야?"
"아이들이 나쁜 짓을 한 거야?"
당연히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들, 왜 일어났는지, 무엇 때문인지 설명하기는 참 쉽지가 않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표선 읍내로 나갔다. 따듯한 저녁을 먹고 이틀 동안 쌓인 빨래를 해결하기 위해 빨래방에 갔다. 빨래를 하는 동안 엄마와 할머니들에게 영상통화도 했다. 다들 추운 겨울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는 점에 한결 같이 걱정을 늘어놓으셨다.
'여름에도 그 더위에 아이들 고생을 시키더니, 이 추위에 또 나가서 잠을 잔다고!? 심서방 너무 한 거 아닌가?'라고 하시는 것 같은 걱정들에 민망하기도 했지만 조심 또 조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제주도의 겨울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생각했던 것보다 추위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았다. 단지 겨울이기에 짐이 늘어 나의 등이 고생을 좀 하고 있었다.
특별할 것 같았지만 특별하지 않았던 하루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주었다. 해녀박물관에 가서 신나게 역할놀이를 하고, 우도에 갈 수 없어 성산일출봉에 오르자는 아빠의 말에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던 두 아들놈들. "그래 그냥 목욕탕이나 가자"해서 들린 시골 목욕탕에서 신나게 물놀이하고, 해수욕장에서 뛰어놀고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밤에는 비소식이 있어 아빠는 걱정이 태산이지만 아이들은 곤히 잠에 들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들과 아이들의 곤히 자는 숨소리가 "오늘도 고생했어"라고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