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제주, 바람
여행하기 여름이 좋은지, 겨울이 좋은지 모르겠다.
배낭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은 이제 할머니 집에 갈 때도 자기 짐을 자기 배낭에 싸곤 한다. 아빠로선 너무 흐뭇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겨울이라고 옷도 두꺼워졌도 배낭에 짐도 늘었다. 여름 배낭여행에서 하루 만에 질려버렸던 텐트에 대한 기억은 금세 잊혀지고 어느샌가 겨울방학 배낭여행 짐을 꾸리는 나의 배낭 속에 들어 있었다. 과연 이번 겨울방학 배낭여행에서는 중간에 텐트를 집으로 보내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야 될 텐데 텐트의 운명은 어찌 될까?
이번 여행지는 제주도이다. 제주를 한 바퀴 돌아보고자 한다. 늦은 오후 비행기를 예약하여 집에서 온전히 쉬다가 근처 버스터미널에 왔다. 다행히 구미에서 대구공항까지 공항버스가 자주 있었다. 평소라면 찾아보지도 않았을 버스 편이다. 앞으로도 공항 갈 일이 있으면 공항버스를 자주 이용해야겠다.
이번 여행에서도 엄마를 떠나 심부자끼리 여행을 떠난다. 첫째는 쿨하게 엄마와 인사했지만 엄마 껌딱지인 둘째는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잘 다녀올게. 걱정 마."
늘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정작 나를 달래기 위한 주문 같기도 하다.
이번 여행에도 이동 중에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줄 수첩을 챙겨 왔다. 이번에는 하루하루 그림일기를 써보기로 했는데 약속이 잘 지켜질까. 아빠의 시각에서는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싸우는 아이들이다. 오늘은 창가자리를 가지고 싸운다. 아이들에게는 크나큰 문제일 것이 분명하긴 하다. 가위바위보로 둘째가 창가에 앉아 가기로 했다. 첫째는 집으로 돌아올 때 창가에 앉기로 했다.
"너는 저녁이라 밖에 잘 안보일걸. 나는 낮이라서 잘 보인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첫째는 둘째를 또 놀리고 있다. 눈에 띄게 서로 놀리고 싸우는 횟수가 늘었다. 이럴 땐 엄하게 혼을 내야 할지, 그저 지켜봐야 할지 잘 모르겠는 때도 있다.
제주에 무사히 도착했다. 캄캄해진 비행기 창밖으로 빛나는 희미한 불빛들이 여행을 시작하는 우리를 설레게 하는 동시에 어둠으로 나아가야 하는 두려움도 같이 느껴졌다.
아직 저녁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아이들은 지쳐 보였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제주도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 예정이다. 오늘의 첫 야영지는 김녕해수욕장이다. 서둘러 공항을 나와 시내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김녕해수욕장 근처 치킨집에서 치킨을 포장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다음날 일기예보도 좋지 않아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스러웠지만 아이들 앞에서 내색할 수 없었다.
김녕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당연하겠지만 아무도 없었다. 유난히 밝은 가로등들과 거센 바람만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텐트를 잘 설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아무도 없는 드넓은 잔디밭에 앞에는 바다가 있고 날아갈 듯한 바람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데크 위에 텐트를 설치하는데 이상하게 폴대가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10분을 헤맨 끝에 가로와 세로를 착각하여 폴대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감기에 걸릴까 싶어 건물 뒤로 가 숨어있으라고 했지만 나는 겨울 찬 바람을 외투 없이 10분 넘게 맞고 있으니 갑자기 한기가 온몸에 몰아쳤다. 부랴부랴 텐트설치를 끝내고 아이들을 불러와 치킨을 먹었다. 그런데 둘째가 입을 대자 마자 맵다고 난리다. 그래도 배가 고픈지 눈에서는 눈물이 나지만 치킨은 계속 먹고 있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제주에 저녁에 도착해 어수선하고 정신없이 자리를 펴고 잠에 들었다. 내일 우도에 들어가려 하는데 바람이 거세서 걱정이다. 내일 아침은 바람 없이 화창한 하루가 우릴 반겨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잠에 들었다. 새벽에 거센 바람에 텐트는 휘청거렸지만 아이들은 곤히 잘 잤다. 나는 몇 번을 나가 가이드라인 줄을 정비해야 했다. 그래도 곤히 자는 아이들 때문에 마음은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