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여름방학 배낭여행_다섯째 날 <전주>

하마보러 왔는데...

by 윤부파파

노고단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30분에 기상했다. 다른 때 같으면 더 자겠다고 투정을 부렸겠지만 아이들은 번개처럼 몸을 일으켰다. 바람막이 하나를 걸치고, 혹시 모를 강풍에 대비해 침낭 하나를 챙겼다. 저 멀리 수많은 랜턴들이 노고단을 향해 줄지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대열의 끝자락에 합류해 산을 올랐다.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일출을 보러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새벽 일찍 성삼재에 주차를 하고 노고단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대피소를 출발해 10분 정도 오르면 노고단 탐방로 입구가 나온다. 이곳은 예전에 산림훼손이 심각해 통제 후 복원을 거친 곳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지리산 내에서 야영을 했지만, 무분별한 자연 훼손으로 인해 지금은 국립공원 내에서 야영이 금지되었다. 현재도 자연 보존을 위해 탐방로 출입을 제한하거나 야영 등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런 행위들을 몰래 이어가는 이들이 많다.

구례 읍내는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안개속에 파묻혀 있겠지. 지리산이 동쪽을 막고 있어 구례는 다른 지역보다 해를 늦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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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어제 저녁 노을과는 다른 오늘의 태양이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지리산 천왕봉 쯤 되리라 싶은 곳에서 점점 붉은 기운이 솟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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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둘째는 춥다며 침낭 속으로 파고들었다. 태양을 나올듯 말듯 숨박꼭질을 하는듯 쉽사리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둘째는 참지 못하고 그냥 맨바닥에 침낭을 깔고는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둘째의 이런 대범함에 놀라기도 한다. '언제가 아빠랑 하늘을 이불 삼아 진짜 비박을 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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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해가 솟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역광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남겼다. 멋진 풍광을 더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지체할 시간 없어 바로 하산을 하였다.

하산 길에 마주친 어떤 아주머니께서 아이가 추워보였는지 덮고 있던 침낭을 첫째에게 건내주었다. 침낭을 양손으로 꽉 잡고 있지 않으면 날아가 버릴 것처럼 맹렬하게 바람이 불었다. 입을 벌리고 있으면 숨쉬기 힘들 정도였다.

노고단 일출도 이런 바람도 아이들에겐 모두가 새로운 경험이기에 노고단까지 아이들을 데려온 보람을 느꼈다. 언제 몸이 날아갈 듯한 바람을 맞으며 걸어보겠는가. 아이들을 데려온 보람이 컸다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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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탐방로 입구를 지나 숲 속 길로 들어서니 언제 그랬냐는듯 바람은 온데 간데 없고 고요해졌다. 불과 10m 차이로 세상이 달라졌다. 아이들도 하나의 과제를 해낸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꼬로록 소리와 함께 금세 배가 고파졌다.

아침으로 건조국을 준비했다. 햇반은 대피소에서 사 두었기에 물만 끓여 맛있는 미역국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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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노고단 대피소에는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리고 다음 여정을 준비는 사람들, 큰 배낭을 메고 노고단에서부터 주능선을 따라 천왕봉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이 노고단대피소는 여정의 시작점이었다. 반면 우리는 일출을 보고 내려와 여유롭게 아침을 먹는 이들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오늘은 우리 배낭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노고단의 일출로 기분 좋게 시작한 우리는 아침을 먹고 더워지기 전에 다시 성삼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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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를 때는 쟁취해야 할 일이 있는 전사들처럼 기대에 찬 모습들이었지만, 오늘 우리는 발걸음 가볍게 하산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이랑 하룻밤 자고 내려가시나봐요?"

반대로 오르는 사람들의 물음이 더해질수록 아이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모두 또 하나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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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그림책도서관에서의 좋은 기분을 이어 구례도서관에 들렀다. 특이하게 교육청도서관과 매천도서관이 붙어있었는데, 매천도서관은 아쉽게도 휴관중이었다. 어린이 자료실에서 서로 재미있고 웃긴 책을 골라 와 도저히 안에서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웃어댔다. 결국 현관으로 나와 책을 읽으며 실컷 웃고 떠들었다.

'그래. 아이들에게 하지마, 그만해라, 더러다 하기보다 마음껏 즐길 공간을 마련해주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한참 어릴때는 모래놀이터에 자주 갔었다. 옷에 흙물이 들고 코와 귀에 모래가 들어가도 나만 가만히 있고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그곳에서 우주를 만난듯 실컷 놀다 올 수 있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항상 나에게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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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구례에 없는 구례구역으로 갔다. 왜 이름을 순천에 있는 역을 구례구역이라고 했을까? 내가 사는 구미에는 KTX가 정차하지 않는다. 대신 김천 구도심과 구미 사이, 김천혁신도시에 김천구미역이 존재한다. 이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경주 시내에 있던 경주역이 사라지고 건천읍에 새로 생긴 신경주역이 그러하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내일로 기차여행을 하며 들렀던 경주, 경주역 바로 앞 성동시장에서 몇가지 반찬들이 놓인 뷔페식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었던 추억이 있던 곳이다.

때로는 빠르고 편리한 것보다 느리고 불편한 것도 좋을 텐데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기차역들을 보며 아쉬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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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도착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하마를 보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에게 이번 배낭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었을때,

"하마 보고 싶어!", "공룡 보고 싶어!"

첫째와 둘째의 대답이었다. 공룡을 보기 위해 고성으로의 여행도 계획했지만 미안하게도 다음으로 미루고 첫째가 그렇게도 원하던 하마를 보기 위해 전주동물원에 들렀다. 이 더위에 동물원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쉽게도 하마 역시 너무 더웠는지 좀처럼 물 밖으로 나오려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알았다. 하마가 그렇게나 오래 잠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물 밖으로 내민 눈과 귀를 실컷 구경하고 하마에게 인사를 하고 동물원을 한바퀴 쭉 둘러보았다.

대학 시절 배낭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들렸던 전주, 한옥마을은 지금 많이 변해 있었다. 아이들과 그림책 덕분에 전주의 여러 도서관을 방문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전주는 늘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도시다. 다음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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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역에 맡겨 두었던 배낭을 메고 세종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아빠 다녀올게!"

이제는 아빠의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이 짐 정리를 하곤 이내 사라지는 아이들이다. 이번엔 또 누굴 만나고 어떤 모습들을 보고 올까? 며칠 전만 해도 아이들이 다른 칸으로 넘어갈 때 불안했었는데, 이제는 그 뒷모습이 늠름해 보인다.

며칠 전만 해도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 바쁘던 아이들이, 이제는 저만치 앞서 씩식하게 걸어간다.

여행이 아이들을 키운 것 같다. 나 역시 많이 컸다. 아이들을 믿어주는 마음, 조금은 손을 놓아주는 용기말이다. 그리고 기다려주면 된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세종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번 여행이 남겨준 커다란 선물들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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