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투표
매일 흐리고 눈이 내리더니, 오랜만에 오늘 아침에 눈이 내리지 않는다.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도 거의 없고 밖이 환해 쌓인 눈덩이 위로 햇볕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다. 오늘은 기필코 밖을 나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언제 또 눈 오고 바람 부는 추운 날씨로 변할지 모른다.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밖을 나가야 한다. 내친김에 즉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눈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얼굴에 매섭게 부딪치는 바람이 아직 차갑지만, 견딜만하다. 길바닥이 얼어있어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천천히 걸어가 집 앞에 세워놓은 차 운전석 문을 열고, 앉은 채로 시동을 건다. 그동안의 매서운 추위에 혹시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한 번에 시원하게 시동이 걸린다. 차 문을 다시 닫고, 트렁크에서 자동차 솔을 꺼내, 차에 쌓여있는 눈을 털어낸다. 유리창에 쌓인 눈은 다 털어냈지만, 자동차 위에 쌓인 눈은 팔이 닿지 않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운전하다 보면 바람에 날려 떨어지겠지.
골목길에 쌓인 눈은 아직 다 녹지 않아 미끄럽지만, 큰길은 이미 다 치워져 있다. 속도를 내도 무방하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은 손이 너무 시리다. 한겨울에도 갑갑해서 장갑을 끼지 않고 운전하지만, 오늘은 차 안이 추워 손이 시리다. 몇 분만 참으면 되는데 굳이 번거롭게 장갑을 꺼내 낄 생각은 없다. 원래 투표일은 다음 주이지만, 이번 주에 사전투표를 할 수 있기에, 미리 투표를 해버릴 생각이다. 지금 시간도 많고, 무엇보다 기다리는 것이 싫다. 미리 투표하면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사전 투표장에 도착하니, 건물과 가까운 주차장은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어 자리가 없다.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한다. 차에서 내려 투표장까지 걷는데 손이 시리다. 재킷주머니에 손을 넣고 빠르게 걷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 벽에 주의원 선거를 나타내는 포스터와 그 밑에 노란 화살표가 크게 그려진 종이가 붙어있다. 화살표를 계속 따라가니 투표장소가 보인다. 투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럴 줄 알았다. 들어가자마자 입구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게 투표하려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우선 선거인 명부확인을 하라고 한다. 그곳에 세 명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가운데 사람에게 가서, 내가 우편으로 받은 선거용지를 보여준다. 그가 내가 투표인 명부에 있는지 확인하고, 내게 운전면허증을 요구해,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준다. 그리고 나자, A4 크기의 투표용지와 그 투표용지를 넣을 봉투를 내게 주며, 옆 칸막이 테이블로 가, 투표용지에 원하는 후보에 X표 하고, 그 용지를 투표봉투에 넣고, 입구 쪽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주라고 한다. 텅 비어있는 수많은 칸막이 중에 한 곳을 골라, 받아온 투표용지를 꺼내, 내가 찍을 후보이름을 찾는다. 지금 온타리오주의 여당은 보수당이고, 나는 보수당을 지지하기에 보수당 후보를 찾는다. 5명의 후보가 1번부터 5번까지 순서대로 위에서 아래로 나란히 적혀있다. 1번이 제1야당인 자유당이고, 2번부터 4번까지 군소정당 후보이고, 5번이 보수당이다. 5번 옆에 X표를 하고, 투표봉투에 넣어, 입구 쪽 사람에게 건네준다. 그가 그 봉투를 옆에 놓인 커다란 기계에 넣자, 봉투는 그대로 있고, 안에 있는 투표용지만 쏙 빨려 들어간다. 그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천천히 걸어 건물을 나온다.
다시 얼굴에 부딪치는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주차돼 있는 차까지 걸어간다. 집으로 오는데 여전히 운전대를 잡은 손이 시리다. 그동안 몇 번의 투표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국회의원 선거든 주의원 선거든, 시의원 선거든 빠짐없이 투표한다. 창밖이 점점 흐려지더니 눈발이 조금씩 날린다. 언제 눈발이 굵어질지 모른다. 차를 집 밖에 세우고, 꽁꽁 언 손으로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온기가 온몸에 확 퍼진다. 얼었던 몸이 천천히 녹기 시작한다. 마침내, 나의 스위트홈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