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상 속 변치 않는 공허함.
내가 어릴 적 생각하고,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대부업체는 그랬다.
법을 무시하고, 구둣발로 집에 들어가 폭력을 쓰고 고리의 이자를 받고
채무자를 괴롭히는 그런 이미지…
막상 회사에 들어가니 그런 일과는 거리가 먼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채무를 상환받기 위해 그 어떤 법적으로 문제 되는 일은 할 수가 없다.
고객에게 반말이나, 모욕을 해서도 안되며, 지켜야 할 수칙도 많았다.
그러므로 반대로 고객이 욕을 하고 소리를 질러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금융감독원에 소속되어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업무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연체 고객들을 전산으로 파악한다.
전화를 하거나 방문을 간다. 그리고 우편물 등을 보낸다. 상환을 설득한다.
고객의 재산 등을 조사하여 상환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민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압류 등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한다.
처음에는 그냥 앉아 있기만 했다. 복사기 사용법을 처음으로 배웠고
회사에 여러 가지 서류나, 양식들을 익혔다.
컴퓨터 사용이 영 어색했다. 종이로 업무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서툴렀다.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다.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는 것도 힘들었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곤욕이었다.
매일 서서 일을 했고 쉼 없이 움직이는 일만 하다가 처음으로 정적인 일을 했다.
좀이 쑤셔왔다. 본격적으로 업무를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앉아 있는 것부터 힘들다니..
그렇게 적응을 해 나갔다. 시간이 가며 점점 사무 업무를 적응해 나갔다.
앉아 있는 것도 차츰 덜 어색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12시에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제공되는 점심값으로 식당에 가서 남이 해주는 밥을 사 먹었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고객이 배정되고 나는 매일 야근을 했다.
주방에서 12시간은 기본으로 서서 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냥 남들보다 더 많이 일을 했다.
매달 실적을 내야 했다. 해당 목표치가 주어졌다.
목표치를 채우면 기본급에 인센티브가 지급되는 형식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처음부터 잘했던 것 같다.
목표가 주어지자마자 실적을 해냈다.
입사하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연봉협상을 다시 했다.
많이 오르진 않았지만,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일에 매달렸다.
고객이 욕을 하든지 말든지, 그냥 감정을 뺐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그냥 했다.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당연히 따라왔다.
잘하고 싶다는 압박감에 나를 계속 몰아붙였다.
실적은 압박을 주었고, 경쟁심에서 지고 싶지가 않았다.
무조건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할 때처럼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앞서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업무를 하고 또 했다.
실적표는 매달 순위표처럼 나온다.
목표를 달성한 직원, 달성하지 못한 직원. 대우가 틀려진다.
그 경쟁심이 나를 끊임없이 몰아붙였고 결과는 좋게 따라왔다.
다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결과가 나오는 만큼의 기쁨을 점차 얻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공허함이 찾아와 나를 눌러 댔다.
거의 항상 퇴근을 하고 술을 찾아 마셨다.
정신없는 하루를 항상 술로 달래고 잠에 들었다.
불면증은 계속 됐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들지 않았다.
심하면 이틀에 하루정도 잠에 들었다. 꼬박 밤을 새우고 출근을 했다.
새로운 달이 찾아온다. 전달했던 실적은 전달 실적일 뿐이다.
또 새로운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 매달 반복의 연속이다.
그렇게 나는 조기 승진을 하고 또 했다.
실적이 나오는 만큼 연봉과 성과급을 받았다.
점점 맡는 업무가 많아지고 책임은 늘어간다.
어느새 회사의 과장이 되고, 위보다는 밑에 직원이 훨씬 많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또다시 마음의 불꽃이 점차 꺼짐을 느낀다.
이기고 싶다는 경쟁심을 장작으로 마음의 불꽃에 불을 지펴왔다.
하지만 점점 이길 대상이 없어지니 장작으로 쓸 경쟁심이 줄어든다.
하는 일과 업종이 바뀌었을 뿐 우울감 역시 밑바탕에 깔려있다.
일을 갔다가 퇴근을 한다. 사람과 취하거나 혼자 취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한다.
1년…3년….
그렇게 올해까지 6년을 일했다. 나는 어느덧 35살이 되어있다.
변함없는 일상 속, 늘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출근을 했고, 퇴근을 했다.
점심에는 병원에 가 상담을 받고 약을 지어왔다.
오늘은 아침약을 먹어도, 저녁약을 먹어도...
하루종일 불안감과 우울감에 젖어 있는 하루다.
우울감이란 축축함이 하루종일 조금씩 몸을 적셔온다.
불안감이란 두려움이 하루종일 나를 벼랑 끝에 몰아붙인다.
이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심호흡을 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해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취침약을 먹고 기절하기 전까지 이럴 테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매달려 위로받고 싶지만...
털어놓을 곳도, 마땅히 위로받을 곳도 없다.
털어놓는다고 또 위로를 받는다고 나아질까?
오늘은 어디까지 추락할까..
몸도 천근만근 무겁다..
타이핑을 치는 손에도 힘을 주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걸을 것이다..
얼마나 걸어야 이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진정될까..
10km? 15km?..
얼마나 힘들어야 뒤돌아서 집으로 향하는 생각이 들까.
다리가 욱신거리고, 몸이 지쳐야 마음이 가라앉는다..
온 신경이 차라리 욱신거리는 다리로 가야 가라앉는다..
혹사를 해야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이럴까..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그래도 다행이다.. 술 생각조차 나지 않아서..
오늘은 술의 유혹조차 들어설 공간이 없나 보다.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 간다..
오늘도.. 밤은 길고.. 고통은 깊다..
부디.. 평안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