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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Oct 12. 2024

그녀에 대하여

나의 열일곱 번째 이야기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9년 전이었다. 

내 나이 26살, 그녀는 22살. 아마 그럴 것이다.


반년도 머물지 않았던 어느 레스토랑에서 

나는 그녀와 처음 만났다. 

그녀는 홀 아르바이트 생이었다. 

워낙 정신이 없는 곳이었고, 대화도 잘 나누지도 못했다.


내가 창고 같은 곳에서 흡연을 하면 

항상 뭔가 말을 붙이려고 나를 쳐다보곤 했다.

 

처음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목소리가 참 좋다’

지금도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꽤 좋아한다. 


그녀는 나를 꽤 좋아해 줬다. 

잘생겨서 좋아했다고 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다고 말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잘생긴 것으로 꽤 유명했었다.

다른 여학교에서 찾아오기도 하고, 그랬다. 뭐 다 지난 민망한 이야기지만.)


몇 년을 그녀는 나를 좋아해 줬다. 

그동안 그녀는 나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고,

몇 번의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나는 애매모호하게 그녀를 대했다. 

그때의 나는 그녀를 제법 밀어냈었다.

내가 필요할 때 그녀는 내 옆에 있어줬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린 그녀에게 상처를 많이 줬었다.


“우리 무슨 관계야? 왜 우리는 안 사귀어? 사귀면 안 돼?”

라는 그녀의 물음에 


“우리는 그냥 이런 관계야. 나는 지금 누굴 사귀고 하고 싶지가 않아.

이런 관계가 싫으면 하지 마.” 

라고 답했다. 


나는 그녀와 단둘이 술을 마시기도 했고,

만나고 싶을 때 불러 만나기도 했다. 

일방적인 관계였다. 


그녀는 그때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나의 곁에서 

찔리고 상처만 입다가 점차 멀어졌다.


한동안 나는 그녀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그녀가 올해 연락을 해 왔다.

나는 이미 혼자 마신 술에 제법 취해 있었다. 

늦은 저녁 지금 볼 수 있냐 물었다. 


가겠다고 했고, 그녀를 오랜만에 재회했다.


제법 변해 있었다. 어려 보이기만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서인지, 제법 성숙해져 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좋았다. 


우리는 그날 밤새도록 이야기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동안 어땠는지,

앞 전 연애에 입은 상처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냥 의식의 흐름에 따라 대화하고 또 대화했다. 


피아노 전공자였던 그녀는 

어느덧 학원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학위를 따기 위해 2년을 더 대학원을 다녀야 한다 말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이 보였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금세 빠져들었다. 


자리를 옮겨 그녀의 학원에서 해가 뜰 때까지 대화를 했다. 

출근을 해야 했고, 다시 보자고 말했다. 

나는 퇴근을 하고 다시 보러 오겠다고 말했다. 


오늘 자신을 보러 온 것도 믿기지 않았는데

다시 약속을 잡고 자신을 보러 오겠다는 나의 말을 

그녀는 믿지 않았다.


퇴근을 하고 다시 그녀를 보러 가는 길에도,

그녀는 오고 있는지 진짜 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날도 우리는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많이 웃기도 했고, 즐거웠다.  


자주 찾아가 그녀를 봤고, 연락을 했다. 


보조개가 들어가는 미소를 보는 것도 좋았다.

그녀와 있으면 웃을 일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녀의 자신감과, 밝은 모습이 좋았다. 


지난날 줬던 상처를 보상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만큼은 절대 마음을 재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모든 마음을 다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 나는 그녀에게 만나자고 고백했다.

긴 편지와 꽃다발을 사 그녀에게 전했다. 


그렇게 우리는 돌고 돌아, 연애를 시작했다. 




(부록: 나의 금주 일기)

24-10-12, 금주를 시작한 지 35일째.


요즘 뭔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내 주제에 지금 뭘 케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도달해 그만두고 만다. 


식물은 괜찮을까? 적당하게 관심을 주면 

잘 살아남는 식물정도면 어떨까. 

한번 찾아봐야겠다. 


아침에 눈을 뜨고 아침약을 먹고 컵라면을 하나 먹었다. 

라면을 끓이기도 귀찮아 박스로 시켰다. 

아직 한참 남아있어 언제 다 먹지 생각해 본다. 


라면을 다 먹고 그냥 소파에 누워 TV를 켰다.

드라마라도 하나 볼까 하다 그냥 의미 없이 채널을 돌린다.

그러다 그냥 잠이 와 잠에 다시 들었다. 


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더 누워 있다가는 저녁에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몸을 일으킨다.

샤워를 하고 글을 써본다. 


그녀에게 쓴 편지를 편지지에 옮겨야 하는데, 영 말설여진다.

내년이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내 소식이.. 궁금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망설이기를 일주일이다.


'어디야?'라는 질문이 간단해 보여도 의외로 아무에게나 

쓰지 못하는 질문이다.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 정도가 되어야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물어진다. 


이 간단한 물음조차 못하는 사이가 돼 버린 것 같아 

제법 마음이 아파오긴 한다. 


계속 말을 하지만, 술을 참기는 차라리 쉽다. 

다른 마음을 참기가 어렵다.


카페에 앉아 루틴처럼 글을 쓴다. 

디카페인 커피 대신 오늘은 허브티 한잔.

글을 쓰고, 잠시 바다를 바라보거나, 사람을 구경한다.


무슨 대화를 하는 걸까, 무슨 관계일까,

노트북으로 뭘 하는 걸까 따위를 생각해 본다. 


나는 여기서 뭘 하는 걸까. 

이 글이 생산적이긴 할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자, 너무 모든 것에 의미를 찾지 말자. 

때로는 그냥 하는 것도 있고, 의미 없는 것도 있다. 


그냥 해, 그냥 써, 그냥 먹어, 그냥 마셔, 그냥 걸어, 그냥 자.


오늘따라 '그냥'이라는 단어에 위로를 받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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