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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Oct 13. 2024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대가.

 나의 열여덟 번째 이야기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고, 웃을 일이 많아졌다.

만나서 대화를 하고, 맛있는 걸 먹었고, 함께 술을 마셨다.

걷기도 많이 걸었다. 자전거를 함께 타기도 했다.

함께 자주 시간을 만들어 여행도 다녔다. 


나도 그녀도 어차피 서로 알고 있었던 관계이기에

어떤 사람인지, 새롭게 파악할 필요가 없었다.


이따 금식 애교를 부려주거나, 

환한 미소를 뗘주면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 역시 돌고 돌아 이렇게 인연이 맺어진 것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를 아껴줬다.


내가 하는 행동 소소한 행동에 감사함을 표했다.


늘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려는 사람이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맞는 걸 선호했다.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말하고 표현했다.


다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다름이 불편했기보다는

또 다른 매력으로 느껴졌다.


퇴근을 하고 잠시라도 그녀를 보기 위해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다. 


최대한 함께 있고 싶었다..

함께 있는 순간에는 우울감이 덜했다. 

불안감도 덜했고, 공허함도 덜했다. 


그녀를 통해 나의 마음을 약간이나마 달랬다. 


하지만 함께 있지 않는 순간 우울감과 불안감

공허함이 순식간에 나를 뒤덮는다. 

결코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 그녀를 더 했을 뿐.

본질적인 문제는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지 않는 날은 똑같이 흘러갔다.

혼자 술을 마셨고, 취했다. 


하루는 그녀가 나에게 물어봤다. 

“왜 잠을 못 자?. 그래서 술을 마시는 거야?”

“술을 마시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매일 마셔?”

“가끔 멍해있는 거 알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랬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녀는 나의 본질적인 문제를 걱정했다. 

가끔 내가 멍해 있는 상태를 걱정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늘 물어봤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가끔 멍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술은 그냥 마신다고 말했다. 잠은 그냥 원래 

못 잔다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루는 늘 취해 있는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이렇게 취해 있는데 어떻게 미래를 꿈꾸겠냐고.

감정적으로 문제가 좀 있어 보이는데도 고치려고 

하지 않고 술에만 의존하는데 어떻게 미래를 생각하겠냐고.


그런 그녀에게, 올해 5월 병원치료를 받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갔다.


만성우울증, 입원이 필요할 정도의 알코올의존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불면증

을 진단했다. 금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 절대 거르지 말고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약을 먹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약이 주는 멍함과, 금주의 고통이 따랐다. 

그럼에도 그녀가 함께 해줬기에 감내하고 견뎠다.


3주 정도가 지나고,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제주도에서 3주간 금주의 보상으로 술을 마셨다. 

약은 먹지 않았다. 


3일을 붙어 있을 수 있으니까.. 불안감도, 우울감도 덜했다.

다녀와서 다시 금주를 하고 약을 먹어야지 생각했다..

나는 나를 너무 믿었던 것 같다. 


다녀오고부터 얼마간은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약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멍 해 있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다시 잠을 자지 못했고, 술을 찾기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변하려 했던 인내가 끊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었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결국 술을 끊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평일을 보냈고, 주말을 함께 붙어있었다.

내가 보낸 가장 뜨거운 여름을 그녀와 함께 했다.

매주 바다에 들어갔고, 맛있는 걸 직접 해서 먹었다.


매주주말 그녀와 뭘 할지 계획을 짜는 순간이 좋았다.


뜨거운 여름이 끝나고.. 

그녀가 말했다. 


더 이상 보고 있기 힘들다고 말했다.

나의 우울이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말했다. 

통화에서 나의 목소리 속에 취기가 있을까 하고

찾고 있는 스스로가 지친다고 말했다.

나는 스스로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분명 정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약을 먹고, 술을 끊겠다 말했다.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법을 찾아보겠다 말했다.

우울감도, 어떻게든 고치겠다고 말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함께 뭘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했다.

술에 잡아 먹혀 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지 말고, 낯선 경험도 해보라 말했다.

사람에게 의존하지도 말고, 바쁘게 그렇게 살아보라 말했다.


그런 사람이 되고 나서 내년에 연락하라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6개월을 만났고, 38일째… 

서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틀린 말이 없었다. 

그녀를 만나고 함께 있을 때 덜 했을 뿐이지 내 본질적인

문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영향을 줬을 것이다. 

내 우울감이 그녀의 숨어있는 우울감을 건드렸을 것이다. 

왔다 갔다 하는 내 감정에 눈치를 봤을 것이다.

늘 술에 의존하고 본인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라고 해도 못 만날 거라 생각이 든다.

그런 나를 그녀에게 강요할 수가 없었다.


분명 나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 

오래전 그녀에게 준 상처를 보상해 주기 위해서

또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다만 내가 인지하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주는 마음은 한계가 있다.

즐거움 뒤에 홀로 느끼는 나의 공허함은 서서히 탄로 나기 시작한다.


나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 대가가... 입안 가득 씁쓸함을 남기고

후회와 고통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


처음에는 상실감이 엄청나게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했다.

그리고 자책을 했다. 

내가 다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몸을 쓰고 또 썼다.

잠에 들기 힘들었고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매일 찾아오는 밤은 길었고 고통은 깊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한 달이 넘도록 나는 무엇이 변했을까.


취해 있는 시간이 없다. 맨 정신을 유지한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저녁에 잠을 잔다.

생각이 많아지면 몇 시간이고 걷는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피아노레슨을 등록했다. 

잡생각을 지우려 내년까지 투 잡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지나면 그녀가 말한 대로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고, 

스스로 만든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을까? 


사실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법이 있으니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그녀가 내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대로 살아갈 수 없다. 

이번에 바뀌지 않으면 더 이상은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바뀌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 고통이 따를 거라 생각한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연재하는 이유는

과거를 돌아보고 나의 현재를 끊임없이 기록하는 이유는 

결국 이 지긋지긋한 공허함에서 벗어나고,

알코올이란 놈에서 해방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볼 때에.. 

그녀에게 불안감이 아니라 안정감을 주고 싶다. 




(부록 : 나의 금주 일기)

24-10-13, 금주를 시작한 지 36일째.


요즘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난다. 

지금까지 잠들지 못한 시간을 보상받는 건지.. 

쉬는 날이면 끊임없이 졸리고, 침대나 소파에 누워 

잠에 들고 깨고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술의 유혹은 사실 이제는 덜하다. 

간혹 생각은 나지만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단계는 지나간 것 같다. 


다만 사람을 만나, 가볍게 취기를 느끼고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홀로 술을 마시고 취하고 싶다는 유혹이 없다는 것만

해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감사하다. 


다음 주부터 바쁘게 지낼 일상을 생각해 본다. 

글을 쓸 시간도 좀 부족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 16~17시간 자는 시간 말고 다 일을 하면

불필요함 감정들도 사그라들지 않을까...


쉼 없이 화, 수, 목, 금, 토를 보내면, 쉬는 날의 

소중함을 비로소 느끼고 조금 더 쉬거나,

나를 위해 시간을 쓰지 않을까...


그녀에게 오늘은 편지를 한통 쓰려고 한다. 

답장은 기대하지 않지만 최근 

나의 소식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 쓰고 나서도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기 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 같다. 


도움이 되는 행동일까, 아닐까. 

잘 모르겠다.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다. 


오늘따라 그 사람이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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