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로움은 어느 순간이든 때때로 찾아온다.
늘 비슷한 일상 속,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반복에서 오는 무료함을 느낀다.
매달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사무실에 앉아 권태로움을 견디며 일을 한다.
몸이 편해서일까? 스스로 도태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편안함에 몸이 적응하는 것이 나는 불안했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 머릿속이 더욱 어지러웠고,
간혹 잠에 들어도 1~2시간 뒤에 깨어 날을 새는 날이 많아졌다.
뭔가 자극제가 필요했다.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서 배워본다거나,
동호회를 나가 사람을 만나 본다거나,
그런 쪽으로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여유가 생기면 잡생각이 들고,
그 이유를 스스로의 나태함으로 치부했고, 자책했다.
권태롭고, 무료함 자체를 느낄 새도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싶었다.
그래야 이런 쓸모없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쯤 본업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금요일 토요일.
일본식 선술집에서 퇴근하고부터 새벽 3시까지 일을 했다.
아는 친구 몇에게 이러한 생각을 말했다.
나의 성격을 잘 아는 친구들이니, 어차피 결정을 하고 말함을 알고 있다.
몸 상하지 않을 정도만 하라는 조언을 할 뿐이었다
돈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앞서 이야기했듯 몸을 좀 혹사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몸이 고되면 고될수록 머리는 단순하게 돌아간다고 결론 내렸으니까.
금요일 아침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본업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금요일 하루는 제법 고되었다.
주방에는 오너셰프 1명, 요리사 1명, 총 2명이었고, 내가 보조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나머지는 홀 아르바이트 몇몇이 다였다.
(오너 셰프가 아닌 요리사 한 명은 나이 어린 막 배우는 단계의 요리사였다.)
오랜만에 하는 칼질도 영 어설퍼졌고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양식주방도 아니었거니와, 술집이라 주방이 매우
협소하고 좁았다. 모든 게 어수선했고,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갔다.
단순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뿐인데,
출근한 그 주에 볶음이나, 탕 같은 메뉴를 하기 시작한다.
(경력이 있다 보니까, 어차피 하실 줄 알지 않냐는 식이었다.)
맛도 안 본 음식을 손님한테 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려운 음식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해달라는 요청대로 했다.
제법 바쁜 가게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첫날부터 내가 파악한 그 주방의 동선은 엉망이었다.
누가 이 주방 동선을 짰는지 모르겠지만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로 잘못 짰다.
동선이 엉망이니 불필요한 움직임이 많아진다.
물 흐르듯 서비스가 될 리가 없는 주방이었다.
내가 출근하는 오후 6시 30분 이면 이미 오픈이 끝나고도
남아야 할 시간인데, 오늘 사용할 재료가 전혀 프렙이 되어있지 않다.
가자마자 냉장고를 열어 프렙부터 한다.
동선도 엉망인데 오더를 소화하면서
프렙을 해야 하니 주방이 엉망이다.
게다가 오픈주방이라니, 이 꼴을 보고 식사를 하는 손님에게
퍽 미안함이 드는 순간이 많아졌다.
일의 힘듦은 시간이 가면서 적응이 되었지만,
엉망으로 일을 하는 게 오히려 견디기 힘들었다.
3달가량을 그렇게 일을 했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붙여 봤다.
권태로움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아직은 몸이 쓸만하고, 버틸만하며
배우고 익혀온 주방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도전은 왜 스스로를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것만 생각이 날까..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힘들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도시니까, 야구장을 한번 가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오면 물놀이를 하러 워터파크를 방문해도 될 것이고,
겨울이 오면 스키나, 보드를 타러 가도 괜찮을 것이다.
또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장을 가거나 공연을 보러 가도 될 것이다.
그 무엇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의 무엇이 문제일까..
늘 해오던 것만 하고, 변화를 주는 것이 싫어서?..
그냥 새로운 것에 거부감이 들어서?
왜 자신을 가꾸고 아끼고 돌보는 것이 왜 힘들까..
자기애가 부족해서일까..
왜 스스로 자꾸 몰아붙이고
안달이 난 채로 공허함을 느끼고 초조해할까.
정답을 찾지 못한 채 권태로움과 공허함을 음주로 지우고 덮었다..
무료한 일상을 버틴 보상으로 술을 나에게 보상처럼 들이부었다.
술을 마시면 얼마간의 시간 동안은 괜찮았다.
우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취기가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원점보다 더 밑으로 감정은
기어들어 간다..
알코올에 의존한다는 인지는 오래전부터 했다.
그럼에도.. 그 의존을 끊어내지 못했다.
알코올이 순간 주는 위안과 망각에 사로잡혔다.
퇴근을 하고, 혼자서 자주 가는 식당으로 가 늘 먹던 것을 시킨다.
음식은 거의 먹지 않은 채로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또 술을 사서 들고 들어갔다.
잠들 때까지 마시고 또 마셨다.
위로해 줄 수많은 이를 뒤로하고 경시했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어느새 술이주는 순간의 위로에만 의지했다.
술이 나를 잡아먹고, 망치고 있는 줄 알면서도 외면하고 또 외면했다.
사람과의 관계도 대화에도 술이 필요했다.
술이 없으면 점차 감정표현이 되지 않을 때도 있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마치 취했을 때가 정상 같고 취하지 않을 때가 비 정상 같았다.
후에는 술을 마셔도 잠을 자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얼마간 잠에 들어도 깨기 일쑤였고, 취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더 우울했고, 더 공허했다. 불안감과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 무엇으로도 공허함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때라도 병원을 갔다면 지금 이 지경까지 왔을까…
이제와 후회해도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또 해본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대가는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택한 쉬운 길은, 되돌아가기가 힘들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떠한 인연을 정리했고,
또 다른 인연을 시작했다.
수 없이 걸었던 지난밤.
노트북과 여러 책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짊어지고
마치 고행길을 떠나는 순례자처럼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가 아파왔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7km를 꼬박 걸었다.
돌아가려면 또 7km를 걸어가야 했다.
7시에 글을 마무리하러 집을 나와 11시가 넘은 시간
집으로 들어온다. 고단했다. 오늘은 제법 걸었기에..
이렇게라도 술을 참고, 공허함을 참고, 우울감을 참고,
그녀의 빈자리를 참고,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다.
하루를 참아야 하는 현실이 퍽 서글프긴 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지금 참아내는 데에 하루를 대부분 할애하고 있다.
짐을 정리하고 씻고 나와 거실 소파에 앉는다.
하루종일 육개장 사발면 하나 두유 한팩을 먹었다.
배가 고픔에도 뭔가를 하기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육포를 하나 뜯는다.
'단백질 하고, 두유도 영양분 있으니까, 죽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소파에 앉은 채로 그냥 씹어본다.
tv에 잠시 집중을 하다. 졸리다는 생각이 든다.
취침약을 먹고 침실로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어제와는 달리 불안감 초조함이 덜하다.
일을 하고, 회의를 들어가고, 적당한 일상이 지난다.
약이 오늘따라 잘 듣는다.
불 필요한 감정이 희미하게 밑에서 잠자코 있어준다.
매일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한다.
다음 주부터는
월요일은 피아노 레슨을 가야 하고,
일이 끝나고 투잡을 해야 하니 바쁠 것이다.
중간중간 글을 써야 한다.
일요일도 사진기를 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사진을 찍을 생각이다.
바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면..
도움이 될까?.. 투잡을 하는 화, 수, 목, 금, 토 중
4일은 최소 15시간을 일을 해야 하는데, 무리일까?
2인 1조로 같이 하기로 한 사람이 있어 무르지도 못한다.
12월까지 약 3달간 하기로 했다.
뭘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라디오를 듣고, 찬바람도 쐬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렇게.. 뭐라도 하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분명 조금씩 나은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내년이 오면 좋은 모습으로 그 사람 앞에 서고 싶다.
경기도에 사는 친구가, 서해라며 사진을 보내줬다. 그러고 보면 서해는 제대로 본 적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저 잔잔한 노을 진 바다처럼.. 나의 마음도 서둘러 평화가 찾아오길 너무나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