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Sep 27. 2024

나의 학창 시절

나의 세 번째 이야기


학창 시절 친구란, 아마 그 시절의 전부가 아닐까?. 

어울리고 싶고, 나의 위주로 흘러갔으면 좋겠으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무모한 짓까지 할 수 있는 학창 시절 친구.


그 당시 우리 형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좋은 친구가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미성년자이기에 휘둘리기 쉽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무렵 형은 그 당시 그 지역의 문제아들이 진학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선택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안정한 미성년자들끼리 모여 뭘 했겠는가..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나쁜 짓을 하고. 그랬을 것이다. 

형의 무리는 굉장히 안 좋은 선택을 하게 된다. 동네를 돌아다니고 배회하며 오토바이를 훔쳤다. 

훔치기만 했다면 그냥 일반 절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팔기까지 했다. 

특수 절도로 넘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검찰로 형의 사건이 넘어갔으며 아버지는 처음으로 검사에게 머리를 숙여 잘못을 고하고 사죄했다. 

부모로서 무엇이든 했을 것이다. 다행히 초범인 점, 

직접적으로 판매나 절도에 가담하지는 않은 점으로 어떻게 넘어간 것으로 안다. 

학교에서는 형에게 선택권을 줬다. 전학을 권했다. 하지만 그 지역에 이미 문제아들만 있는 학교에서도 

받아 줄 수 없는 형을 받아 줄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부처님 하나님이 아닌 이상 늘 지나고 난 일에 일말의 후회를 가지고 살아간다.

일어난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나이가 어리다고, 또는 많다고 해서 남이 떠안아 주지 않는다. 

오로지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도 본인이 받아야 한다. 

결코 남아게 해코지를 하거나,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스스로에게 교훈이 되었길 바란다.


다행히 형을 받아 줄 학교가 있었다. 다만 그 학교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의 학교였다.

또 도시를 옮겨야 했다. 또다시, 전학을 가야 했다.  

약 3년간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가야 했다. 


나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이제 겨우 적응하고 또 친구들 또한 생겼는데.. 

학업 또한 잘 해내고 있었는데 다시 전학이라니.. 처음으로 싫음을 말했다. 

왜 또 전학을 가야 하냐고. 왜 또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냐고.. 

대체 몇 번을 나는 적응하고 적응해야 하냐고.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정리는 빨랐다. 도시를 옮기기 전 부모님이 장사를 하고 있는 마지막 살았던 동네에 집을 구했고, 

남은 집은 이후에 정리하기로 했다. 

겨울 방학 사이 나는 그래도 정들었던 친구들과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로 

인생에서 마지막 전학을 마무리했다. 


또다시 이별을 했다. 내가 겨우 적응한 환경과,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나의 유년기부터 학창 시절 이러한 환경들은, 나를 단련시켰다. 

누군가 사귀게 되어도 마음 전체를 나누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받아들이기로 하니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냥 또 떠나고 또 적응해야 하구나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에 나는 다시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을 해야 했다. 


하지만 삶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나에게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내가 2년간 다녔던 초등학교의 친구들이 내가 전학 온 중학교에 많이 진학해 있었고 

그중 몇 명은 나를 기억해 줬다. 처음엔 반가움이, 그리고 안도감이 들었다

'아.. 그래도 처음부터는 아니구나, 날 챙겨주는구나, 등 하교를 혼자 하지 않아도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친구들 또한 그리 좋지 않은 친구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들이었다. 학원에 가서 공부하기보다는 모여서 pc방을 다니거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담배를 태웠고, 옆 학교 친구들과 모여 시시콜콜 농담들을 

주고받고 모여 다니며 이성 친구들과 노래방이나 다니곤 했다. 


처음엔 거리를 제법 뒀다. 하지만 그 친구들과 동화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2~3개월 만에 나는 그 친구들과 완전히 동화되었고, 

학원은 내키면 갔고, 아니면 가지 않았다. 학업을 완전히 놔버렸다.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그 무렵 부모님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싫어했던 형의 반항적이고 대책 없는 행동을 그대로 답습했다.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탓하고, 나의 환경에 대한 변화의 책임을 남에게 타인에게 돌렸다. 

그렇게 해야만 그나마 나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야만 '그래 그럴 수 있어, 이렇게 환경이 변화하는데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 

라고 위안 삼을 수 있었다.


전학을 가고 중학교 3학년 나는 처음으로 가출을 했다. 

그 당시 나는 반항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부모님이 하는 말은 모두 잔소리로 들렸고, 걱정은 위선으로 느꼈다. 

내가 이렇게 된 모든 책임을 나보다는 타인이나, 환경에게 돌렸다. 

여름방학이라 너무 더웠고 씻고 싶었다. 편한 잠자리가 필요했다. 

그 당시 어울리던 친구들 집에 하루하루 돌아가며 잤다. 무슨 자존심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렇게 나는 결국 3주를 버티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중학교 3학년은 반항으로 물들어 갔다..


인문계 진학을 포기했다.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고 부모님께 고했다. 

별다른 조언은 부모님께서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냥 가까운 곳으로..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독서는 꾸준히 했었다. 주로 소설을 많이 읽었다. 

제법 독특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매번 지각에 수업에는 관심도 없고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아이가, 

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책을 많이 빌려 읽은 학생이었으니까.


나의 중학교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부록 : 나의 금주 일기)


24-09-27, 금주를 시작한 지 20일, 어젯밤은 한참을 걸었다. 

하루종일 초조함과, 불안감이 물밀 듯이 나의 가슴속을 가득 채웠다. 

글을 올리고, 약 3시간을 걸었다. 바다도 바라보고, 숨도 크게 내쉬어 본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나의 감성에게 조금만 참아달라, 부탁을 하고 또 했다.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지난밤, 걱정대로 밤은 길고 고통은 깊었다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 수도 없이 술이 생각이 났다. 

당장이라도 편의점으로 달려가 소주병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고, 병나발이라도 불고 싶었다. 

그러면 한결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참아본다. 어떻게든 참아본다.


다른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던 것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겨우 알코올이 빠져나가고 있는 몸에 술이 들어가면 

다음날은 더욱 고통스러울 것을 알기에 이를 악물고 버텨본다.


글을 쓰고, 쓰고, 또 써본다. 또 글을 읽어본다. 자정이 넘어 1시 무렵 취침 전 약을 먹는다. 그렇게 잠에 든다.




오늘은 그래도 어제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하다. 머리가 다시 맑다. 

태풍처럼 몰아치던 걱정과 불안, 초조함과 부정적인 생각이 

태풍이 그치고 난 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처럼 평화롭다. 


일도 순조롭다. 내 직업은 영업 이익을 내야 하는 일이다. 운인지 뭔지 실적은 늘 순조롭다.


선선한 공기가 퍽 마음에 든다. 걷기 좋은 날씨가 왔음에 기분도 괜찮아진다. 


어제의 부정적인 생각을 오늘 긍정적으로 다시 사고한다. 

곧 9월이 끝나고, 10월이 온다. 11월 12월, 그때의 바뀌어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는 얼마나 바뀌어있을까. 술을 끊은 그 자리에 나의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 넣었을까? 


과연 그 사람은 다시 나를 받아 줄까. 아니면 그 사이 나를 지웠을까. 

희망을 가져 본다. 지금 나의 가장 큰 동기부여를 부정적으로 바꿀 수는 없으니까. 


만성우울증이나, 알코올의존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힘들다. 

나의 메마른 감정 속에 주변의 사람도 함께 시들어간다. 

늘 내 감정을 신경 쓰게 하고, 늘 불안함을 준다. 

위태위태함은 관계를 견고히 하기 힘들다. 미래 또한 견고한 관계에서 나온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를 아끼지 않고, 학대를 하는 사람에게서 무슨 기대를 할까..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서둘러 가는 것에 조바심을 느낄 필요도 없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올바르게 정하고, 얼마만큼 지구력 있게 꾸준함을 발휘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10월에는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닐 생각이다.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찾아 걷는다, 그리고 찍는다. 

크롭을 하고, 보정을 한다. 해당 사진에 대한 글을 쓴다. 

어쩌면 나의 유일한 취미를 다시 생각이다. 

기타도 배워보려 한다. 회사의 아래직원이 기타를 알려주기로 했다. 

회사에 남아 1시간 정도는 알려준다고 한다. 


취해만 있던 일상의 즐거움, 나 스스로가 행복해하는 행위를 찾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해볼 생각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행복을 찾아내는 행위.. 사실 어렵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해보려 한다. 


오늘도 나는 금주를 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의 글에 떳떳하게 금주한 날짜에 하루를 더하기 할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머리가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좋은 날씨를 고른다. 빛이 가장 많은 시간, 피사체가 빛을 가장 많이 머금고 있는 시간 셔터를 누른다. 결과물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크롭 한다. 색을 덧 입히거나, 뺀다. 사진에는 정답이 없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다르기에. 비슷한 구도속에도 천차만별의 사진들이 나온다. 그 점이 재미가 있다. 10월이 되면, 혼자서 멀리 다녀볼 생각이다.전라도, 강원도 등으로 다닐 예정이다. ) 

이전 02화 나의 어린 시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