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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Sep 28. 2024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나의 네 번째 이야기


난 아직도 가끔 나의 중학교 졸업식 날을 회상하곤 한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뭔가 잘못을 하더라도 꼭 우리 집에만 전화를 해 모든 일을 나의 잘못으로 부모님께 말하곤 했다.

담임 선생님에게 별 감정은 없었다. 단지 나를 좀 안 좋게 생각하시는가 보다 정도 생각 하곤 했다.


그냥 중학교 시절이 얼른 끝나길 바라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또 읽었다.


졸업식 날을 기억해 본다.

가게를 비울 수가 없어 어머니는 장사를 하셔야 했고, 아버지만 참석한 나의 졸업식.


강당에서 전체 졸업식 날 행사가 끝나고 반에 모여 졸업식 수여식을 했다.

단상에 선 담임 선생님이 앞 번호부터 호명하면 호명된 학생이 앞으로 나가

선생님과 악수를 하고 졸업장을 받고, 뒤에 모인 부모님은

그 장면을 사진에 담는, 그냥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졸업식이었다.


문제는 내 차례가 되어 일어났다.

졸업장을 주지 않고 악수도 청하지 않은 채로 학교에 미납한 책이 한 권 있으니

그 책을 반납하고 졸업장을 찾아가라고 했다. 얼굴이 붉혀졌다.

뒤에 홀로 선 아버지 또한 순간 당황해하는 낯빛을 드러냈다. 그런 채로 나에게 악수는 청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뭐지? 일부러 이러는 건가? 졸업식 날까지 이런다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책을 빌리면 당연히 반납을 해야 한다. 규칙이니까.

하지만 그 규칙을 어긴 대가로 모든 학생들, 그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있는

이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부끄러움을 주는 게 옳은 걸까? 아직도 나는 생각한다.

잘못의 크기와 벌의 크기가 과연 공정했을까?


나는 악수를 하지 않고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선생님은 제법 머쓱해했고 심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호명을 이어갔다.

뒤에서 다른 학부모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는 안 계셨다.  

부끄러웠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었다. 친구들에게도 부끄러웠다.


모든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졸업의 기쁨을 나누는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가족들을 뒤로한 채 나는 복도로 나왔다. 아버지께서 계셨다.

얼른 아버지 차로 가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졸업장 받아와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필요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교무실이 어디냐 물으신 뒤 먼저 주차해 놓은 차로 가있으라고 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아버지는 내 졸업장을 가지고 내가 기다리고 있는 차로 오셨다.

우리 둘은 식사를 하기 위해 출발했다.

이후 식사하는 시간 내도록 아버지와 나는 아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그날 교무실에 있었던 친구의 입에서 입으로 나에게까지

그날 교무실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전해졌다. 아버지는 교무실을 뒤집어 놨다고 했다.

도대체 책이 얼마길래 아이 추억의 마무리를 이렇게 망치냐고 했다고 한다.

지갑에 있는 돈을 던졌다느니, 담임선생의 멱살을 잡았다느니..

뭐, 다 믿지는 않지만..  궁금했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날의 일을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그날 사진조차 한 장 찍지 않았다. 아쉽게도.

그렇게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교칙이 매우 엄했다.

실업계 고등학교 치고도 우리 학교는 손에 꼽을 정도로 모든 것에서 교칙이 철저했다.


고등학교 시절 많은 기억은 없다.


학교에서는 사실 얻은 것이 없다. 기억도 별로 없으니 추억 역시 그렇게 많지 않다.

생각나는 추억이라고는 두발 규정이 싫어 머리를 6mm로 단체로 밀고, 단체로 기합 받고, 축구를 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게임을 하러 PC방을 다니고, 당구를 치고, 뭐 그런 것들이 떠오른다.


그런 시시콜콜한 기억 속에 현재의 우정은 살아남았다.

학창 시절 남은 것이라고는 그냥 지금까지도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런 추억들을 아직도 곱씹으며 지금의 친구들과 웃고 떠들 수 있으니 그것으로도 만족이긴 하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목적은 아이들을 최대한 취업시키는 것에 있다.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와는 수업 교과목 자체가 다르다. 수능이 목적이 아니니까. 우린 수학보다는 납 댐 질을 국어보다는 전선들을 더 많이 다뤘다. 모르고 간 것은 아니다.


그냥 순응했다. 내가 선택한 것에 후회하긴 싫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무렵, 초조함이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나는 이제 무얼 하고 살아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민했다. 가위 또는 칼을 쥐는 걸 배우자고.

그중 나는 칼을 먼저 쥐었다. 요리 학원을 등록하였다.

부모님께서도 처음 내가 뭔가 배우고자 함에 기뻐하며 지원해 주셨다.


고등학교 3학년, 나는 처음으로 음식을 시작했다.




(부록 : 나의 금주 일기)


24-09-28, 금주를 시작한 지 21일, 3주가 흘렀다.


어젯밤 글을 마무리하고. 6킬로 러닝을 뛰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보상으로 논알코올 맥주 한 캔을 마셔본다. 제법 그럴싸한 맛에 감탄하며, 목울 축인다. 갈증이 제법 해소된다.


그러다 보니 뱃속에서는 허기짐을 알린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허기짐에 냉장고를 향해 간다.


냉장고 앞에 붙어 있는 수많은 사진들을 본다.

보고 싶음을 참아야 하는 대상의 사진이기에 이렇게라도 한참을 바라본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 사진을 보니 괜스레 먹먹함이 올라온다.

수십 장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그때의 기분과, 분위기를 떠올려 본다.


하등 도움이 될까... 생각을 해본다. 지척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대상의 사진을 매일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건 사실 제법 괴롭다. 참음을 힘들게 하니까.


냉장고 문을 열어 재료들을 체크한다.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을 사람이 없으니, 한동안 방치했었다.

파와 양파는 물러있고, 마늘 몇 개는 곰팡이가 피었다. 표고버섯은 다행히 키친타월로 잘 감싸둬 멀쩡했다.

냉동실을 열어 대패삼겹살을 꺼낸다.


파와 양파의 쓸 수 있는 부분만 채 썰고, 버섯과 마늘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마늘부터 오일에 볶아 기름을 내고 그 기름에 대패삼겹살을 적당히 볶는다. 그러다 양파와 파, 표고버섯을 넣고 좀 더 볶다, 소금과 후추, 굴소스로 살짝 간을 한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두르고, 깨를 뿌려 낸다.


접시에 담아 본다. 읽고 있던 책을 펴 읽으며 집어 먹으니 순식간이다.


넷플릭스를 켜 이것저것 시도하다, 취침약을 먹는다. 그렇게 2시쯤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





오늘은 알람을 일부러 껐었다. 잘 수 있는 만큼 자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인지 9시 반에 눈을 뜬다.  몸은 가볍다. 7시간을 넘게 푹 자니 컨디션도 좋다. 그렇게 나쁜 시작은 아니다.

아침 약을 챙겨 먹고 머릿속으로 오늘 할 것들을 생각해 본다. 저녁에는 본가에서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10시 반쯤 몸을 일으켜 6킬로 러닝을 다녀온다. 흠뻑 젓은 땀이 그리 나쁘지 않다. 왠지 오전부터 부지런 떠는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껴본다. 술을 끊지 않았다면 할 수 조차 없는 생활 패턴이겠지.


샤워를 하기 전 집 청소를 시작한다. 거실 바닥과, 부엌, 침실, 현관, 그리고 창틀, 선반의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그리고 그 순서대로 다시 걸레질을 한다. 침대 이불과 소파는 전용 청소기로 다시 한번 청소기를 돌린다. 물건들의 위치도 생각하여 옮기거나, 수납장에 넣어본다.


어제 바라본 냉장고에 붙은 사진을 바라본다. 지금은 넣을 때라고 생각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연락도 할 수 없으니, 사진을 보며 얼굴을 떠올리는 게 괴롭다.

스스로 괴롭히는 것 같아, 사진을 잘 포개어 서랍 한 곳에 넣어 보관한다.

조카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만 덩그렇게 남아있는 모양이 제법 허전했지만.. 적응될 거라 생각한다.


개운하게 샤워를 끝낸다. 그리고 빨래거리를 세탁기에 넣어 빨래를 돌린다.

세탁소에 가져다 줄 옷들도 챙겨 본다.  

러닝을 뛰고 오던 길에 사 온 햄에그 샌드위치를 먹으며, 유튜브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캐모마일 한잔을 타 창밖을 바라보며 마셔 본다.

시간이 한참을 지나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동네의 고요함을 느껴 본다.

그 고요함에 내 마음을 둥둥 띄워본다.


빨래가 다되어 널어본다. 온 집 가득 퍼지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제법 좋다.

따스한 햇살아래에서 잘 마를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것이 소소한 행복일까?.


그 사람이 떠나고, 술도 떠나보낸, 첫 번째 주말, 두 번째 주말, 그리고 오늘 세 번째 주말..


사실 첫 번째 주말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었다. 술을 참기도, 그 사람을 참기도 힘들었다.

숨이 막혀오고 답답증이 올라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했고, 그 절망감에 술 생각이 가득했다.

주말이 오히려 싫었다.


두 번째 주말부터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냥 시간을 서로 가질 뿐이다.

그 시간 동안 변화하면 된다. 서로 이 시간을 가치 있게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이번주 주말, 점점 적응을 하는 건지, 혼자인 시간을 그냥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용해 본다.

글을 쓰고, 읽고, 외장하드에 가득 찍혀있는 사진들을 정리한다.

카메라를 청소하고, 렌즈를 닦는다. 청소를 하고 산책을 한다.


나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쓰고 있다.


카페에 앉아 오늘의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나는 얼마든지 좋다.

혼자 있음에 가능한 이런 시간. 누구와의 대화가 아닌 나와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해 본다.


바다를 바라본다. 갑자기 비가 올 듯 흐려진다. 비가 오려나?..

오늘따라 파도도 높게 일렁인다. 높은 파도가 부서지듯 해안가로 끊임없이 밀려온다.


나의 감정이라고 다를까...


파도는 거스를 수는 없다. 파도를 넘어서야 다음 파도도 다시 넘어설 수 있다.

우리 인생도 저 파도처럼 끊임없이 뭔가를 넘어서야 하는 건 아닐까?


거스르기보다는 순응해 본다.


언젠가는 잠잠해질 내 마음의 파도를 기대해 본다.

오늘은 불안하지도, 초조하지도 않은 하루다.

우울함도 없다. 아마 금주를 시작하고, 약을 다시 먹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가장 나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도 차곡차곡 내공이 쌓이는 걸까. 무엇이 어떻든 상관없다.

오늘 나는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다. 소소한 행복도 느낀다.


오늘도 나는 금주를 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나의 마음속 평화와 소소한 행복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바닷소리를 들으며 뛸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좋다. 파도소리 맑은 하늘, 풍성한 구름. 슬을 끊고 나서는 뜀에 힘듦이 줄어들었다. 건강해지고 있음의 증거.



케모마일 한잔을 마시면서 바라본 집 밖 풍경, 오늘도 고요하기만 하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있다. 고즈넉함과 화려함, 산이주는 청아함과, 바다가 주는 시원함. 좋다.
조카와 나. 이쁘다 내 조카. 언제나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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