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Sep 29. 2024

학창 시절의 마지막..

 학창 시절의 마지막.. 

나의 다섯 번째 이야기 


나의 첫 번째 직업은 레스토랑 요리사였다.

음식, 나는 왜 하필 음식을 시작했을까.?

너는 왜 이 일을 시작했냐. 목표가 무엇이냐? 는 내가 한창 음식을 할 때 (현재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늘 후배들에게 물어보는 말이었다. 왜 이 힘든 일에 뛰어들게 되었냐고. 뭐 대답은 제각기 달랐다. 

스타 셰프가 되려고, 본인 스타일의 레스토랑을 차리고 싶어서, 그냥 할 게 없어서, 등이었다. 


나는 사실 가위를 먼저 잡았다면 미용사를 목표로 했을지 모른다. 

칼과 가위 중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대학가 어느 파스타 집을 지날 때였다. 

양파를 볶는 향이 내 후각을 사로잡았다. 양파를 캐러멜라이징을 하면 당도가 올라온다. 

아마 토마토소스를 끓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양파 익히는 향을 가장 좋아한다. 

그 달달 한 냄새에 나는 푹 빠지고 말았다.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쓰는 식 재료는 양파이다.


난 그렇게 가위보다는 칼 먼저 선택했다. 


처음 학원에 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현직에 있을 때 조리 기능사는 지금 내가 평가 하긴 그렇지만, 실무에서는 사실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노력은 했구나, 칼질은 기본적으로 하겠구나, 용어는 알겠구나 하는 정도로 판단하는 용도.) 재미가 있었다. 


규격에 맞게 재료를 다듬고, 알맞은 조리법으로 조리하고 접시에 담아내는 행위. 즐거웠다. 

재미가 붙으니 잘했었던 것 같다. 또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요리에 대해 찾아보고, 꿈을 키웠다. 

유명한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는 꿈도 꿨다. 또 나만의 레스토랑을 차리는 그런 목표도 생겼다. 


고3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를 그렇게 응원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이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양식 조리기능사 시험이 있던 날, 나는 시험을 위해 점심 먹고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에서 그때 내 진심을 어느 정도는 보셨을 거라 생각한다. 


실기 시험은 긴장된다. 

40개 가까이 되는 메뉴 중 2가지 정도 메뉴가 무작위로 나와 실기 시험을 치른다. 

심사 위원 몇 이 돌아다니며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하고, 들쳐보기도 하며 종이에 체크를 한다. 

규격에 맞게 재료를 손질했는지, 조리 과정은 매끄러운지, 결과물이 제대로 나왔는지 따위를 체크한다. 

지금이야 그냥 베이식 한 메뉴들이라 긴장조차 하지 않겠지만, 그때 나는 첫 시험이었고, 무조건 붙고 싶었고, 또 떨어지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긴장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몇 년 만에 성취감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 느낌.


그렇게 나는 고3 때, 양식, 일식, 중식 세 가지를 꾸준하게 취득했다. 

노력하고 재미가 붙으니 성과도 나왔다. 이상하게 한식은 붙지 못했지만 나름 만족을 했다. 

부모님도 아들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성과를 얻으니 기뻐해 주셨다.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그 당시 부모님 사업이 잘 되셨기 때문에 용돈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실무가 궁금해서 주방 보조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간단한 파스타, 볶음밥, 오므라이스 등을 주로 파는 캐주얼 레스토랑이었다. 

일은 제법 고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밑 재료를 손질하고, 필요한 재료를 건네줘야 했고, 주방 기물과 홀에서 나오는 설거지를 했다.


보통 일 머리가 없으면 막내 단계에서 좌절감을 맛보고 그만둔다. 

왜냐하면 일 머리는 가르쳐 줄 수가 없다. 

정리 정돈을 가르쳐 줄 순 없다. 설거지를 가르쳐 줄 수는 없다. 


나는 퍽 잘 적응하고 잘 해냈던 것 같다. 

주방 실장 겸 사장은 나의 시급을 올려주더라도 오래 일하기를 바랐다. 

홀 아르바이트 시급으로 주방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내 기억에 홀 서빙보다는 주방이 힘들어서 조금 더 시급이 높았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3학년은 지나가고 있었다. 

학교를 가고,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가고, 가끔 맥주를 마셨다. 

당연히 잘못된 일이지만, 집 앞에 있는 슈퍼 사장님께서는 내가 모자를 눌러쓰고 

가면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았다. (죄송했습니다...) 


그때부터가 나의 음주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덥고 힘든 주방 일의 피곤을 맥주 한두 캔에 덜어냈다. 


수능 날 나는 수능을 치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수시로 전문 대학교 조리 학과에 접수를 했기 때문에 수능 날 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날은 매우 바빠, 정신이 없었다. 부모들과 수험생들이 와서 많이 들 식사를 했다. 

주방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보모님 생각을 했었다. 

"아.. 아들 둘을 그렇게 키워냈는데, 수험생 부모님의 감정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하셨겠구나"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끝이 났다. 


그 시절 첫사랑도 했었고, 연애도 해봤다. 아픔도 느껴봤다.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의 학창 시절. 

난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 돈도 벌고, 부모님에게 독립해서 나의 공간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고, 성공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는 그런 삶을 얼른 누리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나의 10대의 마지막 언저리. 


술자리에서 자주 나오는 멘트가 있다. 만약 1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냐고. 

20대에는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은 없다"라고 대답을 했었다. 

20대 때의 나는 지금이 훨씬 재밌고, 노력하고 있고, 뭔가 더 할 수 있는데 왜 돌아가겠나라는 생각이었다. 뭐..... 30대 중반에 이르니 지금은 다르겠다.. 

"돌아간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돌아간다면 모든 걸 바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니까.


끝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 적응해야 했던 한 인간의 10대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저물고,

나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부록 : 나의 금주 일기)

24-09-29, 금주를 시작한 지, 22일. 


어제는 본가에 들러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드시고 늙으셨나, 얼굴을 바라다본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뭘까.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 찰나의 순간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간다. 퍽 서글퍼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을 하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집으로 가기에도 이른 저녁이었기에 친구와 그의 연인과 셋이 자리를 가져본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술자리가 되어 버렸다.

논알코올 맥주는 없다. 목이 말라온다. 맥주를 한잔 마셔본다.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다는 친구의 허용을 나도 수긍해 버린다..

탄산감이 목을 타고 넘어온다. 맛이 더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시원함을 느낀다.


어제는 맥주를 두 잔정도 마셨다. 

맥주 두 잔일뿐인데 취기가 제법 올라온다.


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올라와, 나를 옥죈다. 


술을 마시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슬픔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떠났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억눌렀던 감정을 누르고 눌렀다. 

하지만 지난밤 그 감정의 이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의 가슴을 사정없이 깨문다. 

마음의 아픔을 느낀다. 


나도 바보는 아니다. 

인연이란 붙잡는다고 잡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멀어지기도 한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원하고 원해도, 인연이란 건 늘 마음대로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차단되어 있는 내 전화번호, 그리고 sns. 

그것들이 말하고 있는 시그널을 나는 안다.

 

사랑을 말하고, 행복함을 드러내던 수단과 공간이 사라졌다. 정리되어 있다.. 

서글픔이 올라온다. 


나를 잊기 위해, 떠나기 위해, 지우기 위하여 하는 그 사람의 행위에 나는 속수무책일 뿐이다.


내년에 연락하라는 그 말은 그냥 서로를 지우기 위한 그런 기간일 뿐일까.

스스로 행복하는 법을 찾고, 술에 의지하지 않고, 

소소한 것에 행복하는 법,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연락하라는 말에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걸까.. 의미가 있을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게 되는 시간 동안.. 

그 시간을 보내게 되면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런 무의미한 질문을 되풀이하며 지난밤 견뎌 본다..


맥주 두 잔 정도의 취기에 감정의 바다에 몸을 내던져 본다.. 




오늘은 약이 잘 듣지 않는다. 맥주 두 잔의 벌일까. 

아침 일찍 눈을 떠보지만, 다시 감는다. 잠을 청해 본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어젯밤의 부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본다. 

보지도 않을 티브이를 켜 집에 소음을 낸다. 


집안 가득 채운 햇살이 오늘따라 그리 좋지 않다. 블라인드를 쳐 햇살을 가린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잠에 들고 깨고를 반복한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써야 할 글을 생각한다. 

'아.. 글 써야 하는데... 하..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누워있어 보지만, 이윽고 몸을 일으켜 본다.


분리수거를 하며, 몸을 써 본다. 감각을 좀 깨워 본다. 


담배를 한대 태우며, 어젯밤의 감각을 잊어본다. 그리고 반성해 본다.

결국 허용을 해버린 스스로를 자책해 본다. 


저녁약을 먹어본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래 본다. 긍정적인 생각을 채워도 본다.

오늘따라 영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차단되어 있지 않은 수단으로 연락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올라온다..

지금 뭘 하고 있을지, 밥은 잘 먹는지, 잠을 잘 자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진다..

마음을 억누르고 참는 건 쉽지가 않다..


맨인블랙이라는 영화 속 기억을 지우는 장치를 누군가가 

나에게 사용해 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바다 위에 떠있는 구름, 그리고 하늘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쁘기만 하다. 

가만히 바라본다. 걷고 있는 사람을 관찰도 해 본다.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는 하루. 

그런 하루를 보내 본다..


이렇게 나의 '보통의 하루'가 지나간다. 




(쉴 새 없이 파도가 일렁인다. 나의 근심과 걱정 불안과 부정적인 마음도 저 파도에 같이 쓸려 바다로 떠나갔으면 좋겠다. 마음이 그래서인지,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유독 슬프게 들린다.)

(하루가 끝나간다. 해가 저물어 간다. 오늘따라 대교 위에 걸쳐 앉은 구름이 어둠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빛을 발산해 본다. 파도는 끊임없이 친다. 내 온갖 부정적인 생각도 저 파도에 휩쓸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어나서 아침약을 복용한다. 오후 5시가 되면 저녁약을 먹는다. 자기 전 취침약을 먹는다. 하루에 세 번..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 나의 마음의 평화는 언제쯤이면 나에게 찾아올까..)








                     

이전 04화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