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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Sep 30. 2024

정신과 진료를 시작하다.

정신과 진료를 시작하다.정신과 진료를 시작하다.

나의 여섯 번째 이야기 


올해 4월 처음으로 병원을 갔다. 

늘 병원 치료를 권유받았다. 가족에게, 옆에 있는 연인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틀에 하루 자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보일 리가 있을까?.


수면이 부족하면, 감정 기복은 더불어 따라온다. 우울 감 역시 따라오기 마련이다. 

새벽이란 녀석은 늘 감정을 증폭시킨다. 

미친 듯 자고 싶은데 더욱 예민해지고, 감정은 증폭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아침 해가 밝아오며 버스의 첫 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병원을 가게 된 그날이 그랬다. 잠에 못 들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을 했다. 

모니터에 앉아 사무를 보는데, 갑자기 가슴이 뛰며 식은땀이 났다. 

과 호흡이 올라오며 머릿속에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가려웠다. 귀, 코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가끔 느꼈던 그 감정이 그날따라 무척 심하게 다가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 공포감이 올라왔다.

평소보다 모든 증상이 증폭되어 나를 덮쳤다. 


병원에 다녀온다고 직장상사에게 보고하고 가까운 정신 의학과 병원을 찾았다. 

예약도 없이 그냥 찾아갔다.


현재 내가 느끼는 증상과 상태 등을 간단하게 상담했고,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이후 담당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다. 


내가 받은 진단 명은 '중증 우울증, 불안 장애, 공황 장애, 불면증, 입원을 요할 정도의 알코올 의존증'이었다. 충격은 없었다. 그냥 내가 느끼는 내 현재의 상태가 그러했으니까.

이미 오래전부터 정상이 아니라고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말해주셨다. 

특히 알코올 의존증에 대해서는 입원을 요할 정도라고 말했다. 

어쩌면 입원이 맞을 것이다. 

상담받는 그 자리에 술이 있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알코올에 의존했다. 심각하다고 말했다. 


치료의 방법은 간단 명확했다. 약을 꾸준히 먹는 것,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 술을 끊을 것.

알코올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보라고 했다. 

취미, 또는 배우고 싶은 것들, 운동. 등을 말씀해 주셨다. 

단 누군가를 위해 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지를 고민해 보고 실천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병원을 너무 늦게 찾아왔다고 했다. 

늦은 만큼 힘들 거라 말했다. 생각보다 나의 정신 건강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약을 먹고. 한동안은 술을 끊어 냈다...... (비록 약 3주 만에... 실패했지만..)


그렇다면 나의 불면증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생각해 본다. 그게 나의 알코올에 대한 의존의 시작이었을 테니까.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나는, 처음으로 살아온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있다.)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이후 나는 군대를 갔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니까. 

그리 거부감은 없었다. 누구나 가는 것이고 반드시 가야만 하는 것이니까. 

단지 2년 가까운 시간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에 대한 부분은 크게 다가왔지만... 


군 생활 역시 무난했다. 나는 조리 병으로 복무했고 국방부 용산에서 근무를 했다. 

적응은 빨랐고, 다행히 그렇게 심한 가 혹 행위는 없었다. 조리 병은 점호를 받지 않는다. 

타 병사들보다 조금 더 일찍 잠들었으며, 많이 일찍 일어났다. 

대신 자유 시간은 많았다. 나는 부조리를 싫어했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일을 더 많이 했다. 


나는 지금으로 치면 회사처럼 그 집단을 돌렸다. 

흔히 말하는 짬이 찰수록 쉬고 싶어 지기 마련이지만 그럼 전체적인 작업이 늘어진다. 

차라리 빨리하고 빨리 끝내고 빨리 쉬는 방식을 선택했다. 효율은 좋았다. 

밑에 후임들도 불만은 없었다. 지금도 후임 몇 과는 연락하며 서로 도시를 방문할 때 얼굴을 본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간부들을 욕하기도 하고, 사고 친 것들을 이야기한다. 

( 남자들 군 생활 이야기의 특징은 자랑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전역을 하면 대부분 보상을 받고 싶어 한다. 

이성을 만나고 자유를 만끽하고, 2년 동안 바뀐 세상을 눈에 담고 싶기 마련이니까. 


나는 전역하고 몇 주 뒤 모아둔 돈으로 (용돈이 대부분이겠지만) 혼자 전국을 돌아다녔다. 

강원도 춘천, 서울, 인천, 광주, 땅끝 마을 해남, 순천, 경주.. 목적지도 일정도 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때는 생소했지만 지금은 보편적인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다녔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술잔도 기울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전국 일주를 하고 있는 사람, 그 지역에 여행을 온 사람, 연인들끼리, 또는 단체로. 

혼자인 사람은 나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기심 때문인지 먼저 말을 붙여줘 어딜 가든 저녁 자리를 함께 했다.

(나는 여행을 좋아했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과는 오히려 대화가 쉬웠다.)


약 한 달간 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부모님과 같은 일상을 살게 되었다. 

부모님은 더 이상 야간에 일을 하시지 않았다. 아마 고단했을 것이다. 점점 나이가 드셨으니까.


밤 낮이 바뀐 생활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체력은 배로 들고, 광합성을 하지 못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리하여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 부모님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셨다.  


부모님과 나는 약 10년이란 시간이 흘러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 집을 사용하게 되었다.


불편했다. 중고등학생일 때도 없던 통금 같은 것이 생기니 여간 서로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대로 부모님은 부모님 대로 불편했을 것이다.


갈등이 시작되었다. 집에는 집의 규칙이 있으니, 정도를 지키라는 요구였다. 

사실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전역하고 놀뿐인데 이게 뭐가 문제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매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또는 외박을 해 대는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렇게 2학년 복학 전, 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100만 원을 줄 테니 나가서 너 알아서 살아라, 더 이상 우리는 너를 참고 보고 있을 수가 없다. 학교 졸업은 해야 하니 학비까지만 감당해 주겠다. 금전적인 모든 지원은 없다. 그게 아니라면 집의 규칙을 지켜라"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하겠다. 그러지 않겠다. 적당히 하겠다.' 정도 말을 듣기를 원했을 것이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무언가 오기가 들었다.


'이제 전역도 했고, 그래 나가자, 나가도 나는 할 수 있다. 

두 팔다리 멀쩡하고 하니까 뭐라도 해서 난 할 수 있다. 제약받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생각이겠지만 갓 전역한 나는 무모한 자신감에, 근거 없는 자신감에 취해 있었다. 


나는 100만 원 바로 송금해 달라고 했고, 그 자리를 떠나 바로 집을 구했다. 발품을 팔았다.

집에서 걸어 1시간 정도 거리의 원룸에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보증금 300만 원에 23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전화를 걸었고 나는 주인에게 반드시 보증금 300만 원을 채워 드릴 테니까 

지금은 100만 원으로 계약을 좀 부탁드린다고 사정했다. 


그렇게 나는 반나절 만에 방을 구해서 나갔다. 

짐은 옷가지 몇 개만 챙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책 없는 행동이었다. 


당장 주머니에 돈 몇 만 원이 다였다. 

23살에 시작한 호기로웠던 나의 첫 독립은 시작부터 불안으로 시작했다.


잠들지 못하는 밤 불안을 지우려 주머니에 있는 돈 몇 만 원으로 라면과 소주를 두 병 샀다..


그렇게 나는 자기 위해서,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서 혼자 술을 시작했다.

생 라면에 혼자서 마시는 술은, 쓰기도 하고, 어느 정도 달기도 했다. 제법 불안감을 지워줬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나의 버릇이 될지. 나의 술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낮춰주는 행동이 될지. 


어떤 결괏값에 도달하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아닌 나에게 있다. 




(부록 : 나의 금주 일기)

24-09-30, 금주를 시작한 지 23일. 


지난밤, 글을 마무리하고도 마음이 어지러웠다.

마음을 다스려 보려 바닷가를 걸었다. 


약 10킬로를 걷고 집에 돌아왔다.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느 정도 파도와 함께 쓸려 나갔는지 그래도 제법 마음이 안정된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로 유튜브를 의미 없이 돌려본다.

창밖에서는 제법 서늘한 바람이 집으로 들어와 선선함을 느끼게 해 준다. 


구상하던 글의 인물과 설정 배경 등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메모장에 써 본다.

장면들을 떠올리며, 세부적인 것들을 조율한다.  


술 생각이 이따 금식 올라오지만, 억눌러 본다. 애써 다른 생각에 집중한다.


유튜브에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상이 하나 뜬다. 

한 편의 영화를 40분짜리로 요약해 주는 채널이다. 


주인공 지미는 실력 있는 심리치료상담사이다.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과 행복한 나날들..

하지만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하필이면 아내와의 마지막 기억은 다툼이었다.

그날 이후 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술과 약물로 아내를 잃은 슬픔과 우울, 공허함을 달랜다. 

딸을 케어해야 했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낸다.


여러 환자들을 만나고 상담하며, 타인을 치료하고 돕는다.

그러는 사이, 스스로 일어나려고 노력을 시작한다. 


스스로를 방치한 사이, 딸과의 사이는 서먹해져 있다. 


그러나 지미는 결국 스스로 변화하고,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동료와 이웃들의 응원으로 슬픔을 딛고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제목은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이다.)


주제가 그래서인지, 주인공 지미에 나의 상황을 대입해 본다. 

나도 동료와 친구, 가족들이 응원해 준다. 좋은 사람들이 나에게 있다. 


하지만 결국 응원으로 모든 걸 바꿀 수는 없다.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결국 스스로가 의지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지금 내 의지는 어느 정도 일까.  저녁약을 먹고 잠에 들며 생각에 잠겨본다.




오늘 아침은 푹 잤음에 몸이 제법 가볍다. 

침구를 정리하고, 양치를 한다. 

양치를 하며 노트북으로 새로운 뉴스거리를 눈으로 잠시 읽는다.

세면을 하고,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오늘의 날씨를 가늠해 본다. 


매일 술에 찌들어, 2~3시간 겨우겨우 잠을 자고 알람에 겨우 눈을 떠 

몸을 일으켜 마치 영혼이 없는 좀비처럼

일어나던 일상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긴 하다.  


버릇처럼 오늘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내일 해야 할 것들도 생각한다.


떠나간 그 사람은 나에게 말했다. 

꼭 뭔가를 하려고 생각하지 말아 보라고. 

꼭 뭔가를 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움직이고, 생각한다고.

그냥 소파에 누워 티브이도 보고, 영화도 보고, 쉬는 것처럼 쉬어보라고.

몸을 그냥 가만히 두고, 뇌에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잠시 어딘가 넣어둬 보라고.

오로지 편하게 휴식만 취하기를 권했었다.


나는 쉴 때도, 청소를 했으며, 뭔가를 정리했고, 뭔가를 읽거나, 글을 썼다. 

음식을 하고, 필요한 물건들이 있는지 체크를 한다. 

생필품을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비교하여 주문을 한다.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그냥 다름이니까. 


나는 그 다름이 좋았다. 

그냥 푹 쉬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옆에서 보기만 봐도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티브이를 보고 소리 내서 웃고, 미소 지으며 편하게 쉬는 그 모습을 나는 좋아했다.


출근을 해 틈틈이 담배를 태우러 흡연장을 간다. 

하늘이 오늘따라 유독 맑다.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따뜻했다.

 

뭐에 심술이 났는지..

'속으로 비라도 오지..'라고 생각이 든다.


그냥 이런 날씨에, 그 사람과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유독 떠나간 사람의 생각이 많이 나는 건 왜일까..


날이 좋으면 좋아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모든 상황에서 생각이 난다.


그 사람이 말대로 스스로 행복을 찾고, 일상을 오로지 잘 보낼 수 있을 때.. 

내년에 연락을 하면.. 그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에 부정적인 생각을 걱정을 날려 실어서 뿜어 본다.


퇴근을 한다.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는다.


카페를 가 글을 쓴다...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을 참는다. 참아본다. 


오늘 하루 나는 잘 보낸 걸까?. 잘 보내고 있는 걸까?.

소소한 행복을 한순간이라도 느꼈을까?. 


단 한 번이라도 미소를 띤 적이 있었나... 

미소를 언제 뗬었지..


오늘따라 글이 참 안 써진다. 오늘은 그냥 그런 하루인가 보다.


모든 일에 특별함은 없다. 의미 없는 일들도 우리는 겪고 산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또 큰 가치를 찾아낼 필요도 없다.


세상사람들 대부분 그냥 보통의 하루를 살아감에 만족하고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도 나는 잘 참았다. 보통의 하루를 잘 지냈다. 그리고 곧 금주를 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어젯밤 본 드라마의 주인공 지미처럼 나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나도 오늘 보통의 하루를 살아감에 감사를 느끼며 하루를 정리해 본다. 





 (요즘 부쩍 조카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스티커사진을 매우 좋아하는 나의 조카. 나를 걱정하며 외로워하지 말라며 힘을 준다. 늘 궁금한 게 많은 내 조카.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이다. 조금 늦게 어른이 되면 좋겠다. 조금 더 어리광 부리고, 아이처럼 해맑음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어젯밤 바라본 밤바다. 대교가 내는 불빛을 머금고 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어 본다. 밤바다. 좋다. 걷다가 한참을 머물며 바다를 쳐다보며 파도소리를 들었다. 선선한 바람까지 더해져 좋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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