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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Oct 01. 2024

음주의 시작

음주의 시작.

나의 일곱 번째 이야기


내가 첫 독립한 원룸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된 옛날 원룸이었다.

심지어 에어컨도 없는 방이었으니까. 

그럼에도 100만 원의 보증금(200만 원을 매 꿔야 했지만)에 23만 원으로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오래된 옛날 원룸,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독립을 시작했다. 


설렘 반, 그리고 막막함과 불안함이 반이었다.


옛날 원룸이라 세탁기, 가스레인지가 옵션의 전부였다. 

대신 평 수는 좀 넓었다. 첫날부터 나는 구석구석 쓸고 닦았다. 

오래된 만큼 낡았지만, 그만큼 청소를 했다. 

매트리스조차 없었으니 맨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뭐.. 나의 어린 시절 이런 집에서 네 식구도 살았는데 하며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잠을 잘 곳은 해결했다.


그다음으로는 주머니 사정부터 고민했다. 


사람은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휴대전화를 쓰려면 통신비를 내야 하고, 최대한 걷겠지만, 어딘가 가려면 교통비를 내야 한다. 

먹어야 하니 식비 또한 나간다. 난 흡연을 했으니, 담뱃값도 생각해야 했다. 

수중에 있는 돈 몇 만 원이 내 전 재산이었다. 


전역을 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군대에서 모아 둔 돈을 쓴 결과였다. 


고민을 해봐야 어쩌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잠이 오지 않았다. 끊임없이 걱정이 되었고, 

이후의 일을 상상했으며(부정적으로, 또는 긍정적으로) 앞으로의 나의 미래를 고민했다.


잠이 오지 않아 소주 두어 병에 생 라면을 부숴 먹고 잠을 청했다. 

맨 정신으로는 생각과 고민이 멈추지 않았기에 술기운을 빌어 잠에 들었다.

다음날 집에 들러 옷가지와 이불 몇 가지만 챙겨 왔다. 


돈을 벌어야 했다. 몇 만 원 가지고는 굶어 죽을 판이었다. 

학교를 다녀야 했고 개강이 코앞이었다. 

시급 등을 계산했을 때 일반적인 서빙으로는 보증금을 채워 넣을 수도 

생활비를 쓸 수도, 월세를 낼 수도 없었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당시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용돈벌이 밖에 되지 않는 시급이었다. 

생각을 해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생각이 많아지면 걷는다. 

걸으면 생각이 옅어진다. 그 당시에도 한참을 걸었다. 

돈이 없으니 친구들도 볼 수 없었다. 돈이 없다는 소리도, 힘들다는 소리도 하기 싫었다. 


철저히 혼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집을 구한 곳 근처에는 유흥업소가 많았다. 

걷다 보니 구인한다는 전단지가 가게마다 붙어있었다. 

막연히 나는 들어가 일자리를 구한다고 했다. 


유흥업소에서 구하는 건 웨이터였다. 

하는 일은 발주 한 술을 정리하고, 안주 등을 서빙하고, 

손님들 심부름 가게에서 일하는 여종업원들의 잔심부름을 하고 

룸을 세팅하고 정리하는 등 일이었다. 시급은 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서빙이나 아르바이트 보다 월등히 많았다.)


월요일에서 토요일 오후 9시부터 새벽 4~5시까지 근무 시간을 설명해 줬다.  

머리를 굴렸다.


'학교 늦게 끝나도 오후 5시, 조금 쉬다가 출근하면 되고, 

아침 수업은 오전 9시, 2시간 정도 눈 붙이고 학교를 가면 할 수 있다. 

아침 수업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5시에 끝나는 수업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니까, 

조금 견디면 할 수 있다. 잠 좀 줄이면 할 수 있다'라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하겠다고 했다. 오늘부터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대신 주마다 정산해서 돈을 지급해 달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현금으로도 급여를 지불하고 했으니 사장도 알겠다고 했다.


그날부터 나는 유흥업소의 웨이터를 시작했다. 


주방 이모가 나를 많이 챙겨줬다. 밥은 먹었냐, 몇 살이냐 등 질문을 많이 해줬다. 

특히 먹는 걸 많이 신경 써서 챙겨줬다.

(못 먹고 다니는 게 퍽 티가 났을까.. 그 당시에는 정말 배가 고팠다. 먹을 수 있을 때 정말 많이 먹어 뒀다. 아니면 내 돈을 써서 사서 먹어야 했으니까.)


사장은 전직 조폭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반 건달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종업원 누나들이 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냥 특별한 점은 없었다. 

돈은 정확하게 계산했고 가게도 깔끔하게 유지하려 신경 썼다. 물론, 덩치도 크고 머리는 짧았으며, 

험상궂은 외모를 지녔었다. 검정 양복을 입고 다니고, 돈 가방처럼 보이는 손가방을 

늘 들고 다녔으며, 검은색 오피러스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내가 봐도 조폭처럼 보였다.) 


실질적으로 가게 운영은 조금 젊은 사람이 했고, 실장으로 불렸다. 

뭐 가끔 농담을 나누거나 하긴 했어도 깊은 대화는 나눠본 적이 없다. 

주로 그 사람이 여기로 가라 저기를 치워라, 이걸 날라라 하면 나는 그대로 빠르게 움직였다.


여종업원 누나들도 잘해 줬다. 나이가 어려서 인지, 귀여워도 해주고, 팁을 많이 챙겨주려 노력했다. 

손님들 담배를 심부름하면 잔돈이 남는데, 항상 구슬려서 내가 가지게 해 줬다. 

본인들 담배를 사다 줘도 잔돈은 나에게 줬다. 

가끔 일이 끝나고, 해장국에 술 같은 것도 사줬다. 공짜 밥과 술이니 감사했다. 


손님들도 제각기 스타일이 달랐다. 

그냥 놀다가는 사람도 있었고, 진상도 있었고, 온갖 사람들이 오고 갔다. 

술 취한 사람, 아니 정확하게 돈을 쓴 만큼 대접받기를 바라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건 쉽지 않았다. 허리를 숙이고, 억지로 미소를 띠웠다. 


그렇게 나는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아니..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고 있었다. 


한 주가 지나가고, 내 수중에 40만 원 정도가 생겼다. 

아마 팁을 더하면 더 많이 챙겼을 것이다. 

한 달 정도 계산하니 15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필요한 것들을 샀다. 라면, 매트리스 등을 샀고, 간단한 기물들을 사 집에 채워 넣었다.

일은 고되고 잠에 잘 들지 못했지만, 그때는 잠이 중요하지 않았었다. 

돈이 먼저였다. 잠은 일요일에 자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몇 주 뒤 개강을 했다. 학교를 가야 했다. 졸업은 해야 했으니까. 

난 요리사가 꿈이고 지금은 잠시 급한 불을 끌 뿐이라고 생각했다. 


늘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간다면, 나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얼마나 세상이 편할까. 

하지만 인생은 그렇듯 늘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막상 학교를 개강하고 나니 내가 생각하던 생활과는 전혀 다를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처음 경험했었다.


나는 사람은 누우면 잠이 그냥 오는 줄 알았다. 

학창 시절에도 군대에서도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새벽이 다 되어서 들어가 잠을 청하니 막상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초조했다. 지금 자야 몇 시간이라도 잠을 자고 학교를 가는데, 가는데, 가는데.


그러다 해가 떴다. 

그러면 지금 자면 깰 수 없다. 잠에서 깰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매일 술을 사서 집에 갔다. 

아니면 가게 일하는 분들과 해장국과 곁들여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갔다. 

취기가 있어야 겨우 잠에 들었다. 


취기에 의해 피곤을 덜 풀리더라도 잠을 잘 수 있음에 술을 마셨다. 

생활이 엉망이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보았다. 


피곤함에 잠을 청해도 그 피곤함이 예민함으로 돌아왔다. 


"곧 해가 뜨겠지... 자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학교는 졸업할 수 있을까.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나의 새벽의 감성은 나에게 잠보다는 걱정을 밀어 넣었다. 

닥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꾸역꾸역 나에게 강요했다. 

시계의 초 침 소리까지 예민하게 들려왔다. 버스의 첫 차 소리가 들리면 그땐 잠을 포기했다.   


결국 나는 가장 편하고, 쉽고, 가까이 있는 방법을 택했다. 


혼자 마시는 술이 편했다. 약속을 잡을 필요도 없다. 

그저 가까운 편의점에 가 술을 사서 집으로 가 마시면 되었다. 

간단했다. 술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마시면 즉각적으로 반응이 온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술은 분위기를 즐기거나 하는 따위의 수단이 아니었다. 

모임의 흥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상황에 맞게 적당히 취하는 그런 음주가 아니었다. 


취해야 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으로 취하기 위해 술을 마셨다. 

나에게는 술은, 알코올은 점점 의미가 붙었다.

마셔야 하는 이유, 마셔야 좋은 이유 등을 합리화했다. 


자는 동안 술을 해독해야 함에 피곤했지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돈해 주는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도 힘들다 말하지 못하는 나에게 위로를 전해주는 느낌이었다.

오늘 하루의 고생을 보상해 주는 느낌이었다.  

말 못 할 허전함을, 공허함을 달래주는 느낌이었다. 

혼자 있는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취기가, 취함이 계속될수록, 더 많은 술을 찾았다. 

처음에는 한 병, 그리고 두병, 그리고 세병.. 

취기에 적응을 하기 시작할수록 마시는 술은 많아졌다. 


그렇게 나는 매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잠에 들 때까지 마셔 댔다. 안주는 새우깡이면 족했다.   

그렇게 마셔 대고 학교를 가니 술이 깰 리가 만무했다. 

입안 가득 술 냄새가 난 채로 나는 학교를 향했고 수업을 들었다. 

꾸역꾸역 수업을 참여했다. 

좋은 점수도 필요 없었다. 졸업만 하기 위해 학교를 향했다.  


그렇게 나는 술에 점점 의지하고 잠식되어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알코올에 의존했다. 




(부록 : 나의 금주 일기)

24-10-01, 금주를 시작한 지 24일째


지난밤, 혼자 마시는 술보다는 술자리에 대한 욕구가 올라왔다.

혼자 그냥 취기만을 꾸역꾸역 밀어 넣기보다는, 

적당한 취기에 사람과 대화하고, 웃고 떠들고 하는 그런 자리...


혼자 영화 한 편을 찾아서 감상해 본다. 

팝콘 같은 스낵과 논알코올 맥주를 곁들여 본다. 

이윽고 새벽이 찾아온다. 


내일은 휴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으니, 영화 한 편이 마무리될 때까지 잠을 청하지 않는다.

내일은 정말 하루종일 누워있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취침약을 입안에 털어본다. 

따뜻한 캐모마일 차 한잔을 타 창밖을 바라보며 마셔본다. 


향이 제법 마음에 든다. 허브티를 좀 구매해야겠다 생각한다.

조용한 동네.. 어둠이 찾아오면 지나치게 조용한 동네다.


 



오전 11시쯤 눈이 떠진다. 

아침약을 먹는다.


집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어 해가 들어오게 한다. 

빨래 정리를 해본다. 


그러다 그냥 다시 침실로 들어가 이불속에 몸을 파묻어본다.


최근에는 침실의 블라인드를 일부러 절반만 친다. 

예전에는 해가 뜨나, 비가 오나, 맑으나, 흐리나 나의 침실은 어둠이 가득했다.


지금은 해가 뜨면 해가 들어왔으면 좋겠어서, 또 비가 내리면 빗소리가 느껴지고 볼 수 있게

침실의 블라인드 절반을 걷어냈다. 


침대 속에서 그냥 눈만 끔뻑거린다. 휴대폰을 뒤적여 본다. 아무런 스케줄이 없는 하루.. 

휴대폰 속 떠있는 무작위의 뉴스나, 이야깃거리들을 이것저것 눌러 눈에 담아 본다.

하루를 어떻게 쓸지 생각을 해본다.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해 본다. 


그냥 오늘은 하루종일 누워만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약 기운이 퍼지면서 사고가 제법 단순해진다.

확실히 금주를 하면서, 약이 잘 받는 날이 훨씬 많아진다. 증상이 좋아짐을 느낀다.


침실에 TV를 켜 이것저것 돌려보다 다시 잠에 든다.. 

그러다 다시 잠에서 깬다.. 이것을 반복한다. 


최근에 이렇게 그냥 쉰 적이 있었나?. 

뭔가를 쉼 없이 했었다.


쉰다는 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보기로 한다.

오랜만에 그냥 편안함을 느껴본다. 

편하다 편하다 머릿속에 생각을 하니, 몸이 저절로 릴랙스 되는 느낌이다. 


오후 4시에 두유 하나를 꺼내 마시며, 사진기 속 사진을 정리해 본다.

건드리지 않은 사진이 한가득이다. 


달력을 보니 10월 1일이 되어있다. 

벌써 4분기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이다. 

시간이 금방 갔으면 좋겠다가도, 시간의 빠름에 놀라운 생각도 든다. 


얼른 추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차가운 바람이 내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 주면 좋겠다. 

얼른 내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카페에 와 글을 쓴다. 

창가에 앉아 글을 쓰며, 바다가를 걷는 여러 사람들을 바라본다.


일상의 루틴이 지켜지는 느낌, 마음에 든다. 기분도 나아진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글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지금 쓰는 글, 그리고 앞으로 쓸 글들을 정리하고, 또 구상해 본다. 


글을 통해서 나의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고 또 나아짐을 느낀다.


글을 쓰며 그냥 보통의 하루가 져물어간다. 

오늘의 보통의 하루가 지나간다. 

그 사람 없는 하루가 또 하루가 지나갔다.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 시간 동안 나는 조금은 변했을까..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으로 한 발자국은 나아갔을까..




(10월에는 더 많은 사진을 올릴 예정이다. 주말을 이용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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