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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Oct 02. 2024

주방의 흰색 유니폼을 입다.


주방의 흰색 유니폼을 입다.

나의 여덟 번째 이야기


사람은 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버텨내기 힘들다.

낯선 환경에 던져진 사람은 스스로의 생각을 조정한다.

그리하여 버텨내며 적응한다.


버티다 보면 시간은 간다. 늘 그렇듯 시간은 흐르며,

지나고 나면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흘러 있다.  


아르바이트를 간다. 이틀에 하루 정도 잠을 잔다. 학교를 간다.

버틴다. 그것을 매일 반복한다.

반복하는 와중에 지속적으로 마신다. 술을.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의 일과가 되어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정말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갔다.


그래도 돈을 아껴 썼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보증금 300만 원은 채워줬다.

제법 버틸 만큼 돈도 제법 모였었다.


여름 무렵에는 에어컨이 있는 방으로 이사까지 했다.

에어컨 없는 여름은 정말이지 버티기 힘들었다.

더움에 지쳐갈 무렵 옆집이 이사를 나가는 것을 봤고,

그 방에는 에어컨이 달려 있는 것을 현관문 넘어 눈으로 확인했다.


주인에게 옆 호수로 옮기고 싶다고 했고,

방이 조금 더 큰 관계로 월세를 30만 원으로 조정하겠다고 했다.

월세가 문제가 아니었다. 더위는 그렇지 않아도 지친 하루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무조건 그리한다고 했다. 이사가 나가자마자, 계약서를 새로 쓰고 이사부터 했다.


그렇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무렵 나는 웨이터를 그만뒀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 터라 제법 버틸 만큼의 여윳돈이 생겼다.

밤낮 바뀐 생활을 더 한다면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일한 정이 있는지, 송별회처럼 마지막 술자리를 가지며 반년 넘게 지속된 웨이터 생활을 끝냈다.


사실 집에 도움을 청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따뜻한 밥이 그리웠고, 섬유 유연제 향이 가득 나는 포근한 이불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냥 버텼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버티는 건 잘한다.. 버티기만 하는 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

어찌 되었든, 졸업은 했다. 학교를 졸업했다. 전문대학 조리과를 졸업했다.


2학기 끝 무렵은 취업을 인정해 줬기에 가을 무렵부터 일자리를 구했다.

23살 가을이 한창일 무렵부터 나는 원래의 목표대로 주방에 일자리를 구했다.


대학가에 있는 와인을 전문으로 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연락이 왔고, 나는 면접을 봤다.

아무런 경험이 없던 나는 조건은 보지 않았다. 그냥 경험해 보고 싶었다.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 쉬는 조건, 10시 출근해 9시 퇴근이었다.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이 한 두어 시간 있었다.  

월급은 130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꽤 박했지만, 물불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숨을 쉬는 동안에도 모아둔 돈은 사라진다.

면접을 보고 다음날부터 출근할 수 있냐 물어 그러겠다 했다.


그렇게 나는 흰 주방 유니폼을 입었다.


홀은 2명, 주방은 4명인 작은 레스토랑이었으나,

음식은 지금 생각해도 제법 퀄리티를 높이려 신경 쓰는 편이었다.

단가 높은 재료를 쓰려고 했으며, 냉동보다는 생물을 많이 썼다. 코스트가 제법 높았다.


대학 가 지만 가격대가 있는 편이라 학생들보다는 교수들이 주로 왔다. 와인을 많이 팔았다.

사장은 중장비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었고, 레스토랑 자체는 그냥 취미생활처럼 굴리는 모양새였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니 쓸 수 있는 재료들이었고 감당할 수 있는 코스트였다.


주방 일은 힘들다.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발주 넣은 재료를 검수한다.

당장 필요한 재료와 보관할 재료를 구분하여 정리한다.

생물은 곧바로 손질하여 보관한다.

어제 체크한 작업 리스트를 확인하고, 화구에 불을 올린다.

사용할 재료를 칼질을 한다.

소스를 끓인다. 육수를 끓인다. 드레싱을 만든다.

일은 끝이 없다.


오픈이 끝나면 주문이 정신없이 몰려온다.

오더를 쳐낸다. 선배들 서포트한다. 호흡을 맞춘다.


브레이크 타임에 간단하게 밥을 입에 욱여넣고

식전에 나가는 빵을 굽거나, 모자란 소스를 끓이고 저었다.

디저트를 만든다. 하루 11시간~12시간을 서서 일했고, 손을 놀린다.

마감은 주방에 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청소하고 닦는다.

소독한다. 그리고 발주를 하고 퇴근을 한다.


나의 음식 할 때의 원칙은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를 만들자 이다.


칼질이 느리고 손이 느리면 빨리 출근하면 된다.

그래도 안되면 퇴근하고 할 수 있는 걸 하고 집에 가면 된다.

남하고 똑같이 해서는 절대 월등하게 잘해질 수 없다. 빨리 올라갈 수 없다.


막내 생활을 한 1년 정도 하고, 나는 막내를 벗어났다.

그래봐야 4명 중에 3번째지만 이제 샐러드나 피자가 아니라 화구를 쓰는 음식을 익혔다.


오픈 전부터 보관한 모든 소스와 드레싱 등 맛 체크를 해야 했고

간을 보지 않은 접시를 손님에게 낼 수 없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 백번 음식 맛을 봤다.

하루 종일 음식 맛을 보고 음식 냄새를 맡으니 입맛은 없었다.

하루 종일 땀을 흘렸다. 분명 겨울인데 주방은 열기로 가득했다.


그렇게 적응하고 생활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출근했고 음식을 만들고 마감을 했고 집에 와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과 어울렸다.

술은 빠지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지 않는 날은 혼자 술을 마셨다.


하루의 고단함을 술이 주는 자극으로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농담들로 풀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약 3년을 가까이 근무했다. 더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가나 단골 장사를 하게 되면, 메뉴를 바꾸기 힘들다.

안주하게 된다. 새로운 걸 도전하기보다는 늘 하던 잘하던 것만 안정적으로 하고 싶기 마련이다.

사장의 고집을 꺾기 힘들다. 뭐 영업주가 그냥 있는 메뉴를 고집한다는데 뭐라 하겠나.


권태로움이 몰려왔다. 요리책을 보고 레시피를 찾아도,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환경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유학을 말씀하셨다.

나는 머릿속에서 이탈리아에 있는 내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부록 : 나의 금주 일기)

2024-10-02, 금주를 시작한 지 25일째가 되었다.


한 달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동안 상담을 열심히 했고, 약 또한 빠짐없이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예전보다는 혼자 취해있고 싶은 생각이 덜하다.

첫 주차의 금주의 고통에 비하면 지금은 고통보다는 참음의 단계에 돌입한 듯하다.


인생에서 술을 끊는다는 생각이 이만큼 간절했던 적은 지금이 처음이다.

간절한 만큼 참는 것에 동기부여는 확실히 된다.


물론 마시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참을 수 있을 만큼의 시점은 온 듯하다.


집에서 더 이상 술병이 나오지 않는다.

금주를 결심하고 집에 있는 술을 모조리 부어 버린 이후

내가 사는 집에는 더 이상의 알코올은 없다.


정말 마시고 싶은 순간에는 논알코올 맥주 몇 캔으로 그 아쉬움을 달랜다.

취하지 않으면서, 그냥 그 느낌만 느껴본다.


알코올로 얻은 취기는, 사람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즐거움도 증폭시키지만, 때론 우울감이나, 불안, 초조, 부정적인 생각들도 증폭시킨다.

대화를 풍부하게도 해주지만, 때로는 흥분을 대화가 끊어지기도 한다.


술이 주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나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조절을 하지 못했다.


때때로 맛있는 음식과 적당한 취기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면

충분히 긍정적으로 알코올을 이용할 수 있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냥 취함이 좋았다. 고민이나 불안 초조함을 취함으로 잊으려 했다.


사람은 늘 실수를 하고, 늘 옳은 길로 갈 수는 없다.

때로는 잘못된 길에 빠질 수 있다.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인 것을 인정하는 게 첫 번째다.

그리고 돌아가서 옳은 길과 옳지 않은 길 가운데에 다시 서는 것이 두 번째다.

옳은 길로 한걸음 내딛는 것이 세 번째다.


이제 나는 두 번째의 과정처럼 갈림길에 겨우 돌아간 것일 뿐일까?




그 사람과 시간을 가진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되어간다.

여름이 지나 계절이 바뀜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아직까지 나는 그 사람의 작은 물건 하나도, 내 마음도, 뭣 하나도 정리가 되지가 않는다.


술을 참는 것보다, 그 사람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는 게 더 힘들다.

때때로 그 사람 생각에 너무 많이 잠길 때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마음이 쓰라리다. 아직도..


수 없이 많은 사진을 찍고 함께 즐거운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내 감성이 사진첩을 누르는 걸 어떻게든 이성이 만류해 본다.

하루에도 몇십 번을 만류하고 또 만류해 본다.


그 사람이 나에게 말한 세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뭐가 남아있을까..


조금 더 본인 스스로를 챙기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취함에 어느 정도는 벗어난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울감을 전하는 사람보다는, 안정감을 조금 더 줄수도 있을 것이다.

소소한 행복을 찾아도 보고, 누릴 줄도 아는 삶을 살 것이다.

평일의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고, 좋아하는 일에 좀 더 몰두해 볼 것이다.



그런 나에게 그 사람이 남아 있을까..

내년에 보자는 말처럼 다시 돌아올까..


생각에 잠겨 본다.


오늘도 술의 유혹을 이겨내고, 우울감을 떨쳐내 본다.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뭘로 이겨내고 떨쳐낼 수 있을까.

방법이 있기는 할까?


약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보지 못했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내 마음속 한편에서 솟아오른다.

지척에 있음에도 보러 갈 수 없는 이 마음은 무엇으로 달랠까.



분명 그 사람 때문에 행복함을 느꼈다.

웃게 해주고 싶었고, 많은 것들을 함께 하고 싶었다.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그런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의 문제는, 너무 그것에만 몰두했다는 것.

타인에게서 받는 행복감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 사람과 함께 해야 행복하다고 믿은 것.

혼자서는 초조함과 불안감 우울감을 느꼈던 것..

그리고 그 영향을 고스란히 줬다는 것..


스스로도 행복하고 그 행복감을 더 줬다면 어땠을까. 아쉬움만 남는다.


곧 긴 밤이 찾아올 테지만..

수 없이 많은 참음의 순간이 올 테지만..

오늘도 나는 이렇게 보통의 하루를 보내본다..




제주도를 가고 싶다는 그 사람의 말에 우리는 떠났다. 6월 말에 간 제주도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나는 "날씨가 좋았으면.. " 하고 옆에서 내심 아쉬움을 비췄다.


그런 나에게 그 사람은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좋지 않아? 나는 너무 좋은데"

라고 하며 나를 달래줬다.


그런 사람이었다.

늘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는 사람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었다.

남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뭔가를 이뤄내는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삶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마지막 날 돌아오는 공항에서 바라본 바이올렛 색깔의 하늘을 우리는 한참 쳐다봤다.

언제가 저 하늘을 또다시 함께 바라볼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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