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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에는별땅에는꽃 Oct 03. 2024

나의 반짝이던 시절

나의 반짝이던 시절

나의 아홉 번째 이야기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양식을 전공으로 한다면 그 나라에 가보고 싶기 마련이다. 

음식은 문화를 통해 발전하고, 그 지역의 특징이나, 풍토 기후에 따라 발전하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그 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그 나라의 식자재를 사용해 보고 또 경험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나 또한 그러했다. 넓은 곳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싶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 당시 먼저 이탈리아 유학을 경험하고 온 선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내가 가려고 했던 학교는 이탈리아 파르마에 위치해 있었다.

학비는 기숙사비를 포함하여 1년에 약 5000만 원이었다. 

방학기간이 있어  그 기간 동안 유명 와이너리와, 여러 음식점을 다니고, 

여행경비까지 하려면 약 1억 가까이 든다고 말했다. 


굳이 방학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왕 유럽을 머무는 김에,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맛을 보고 경험을 하는 게 무조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 선배는 유학 자체는 추천을 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여유가 되면 다녀오는 것이 스스로에게는 도움이 무조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본인의 경험상으로, 아무리 많이 배워오고 보고 온들 한국에서는 

배워온 것들을 접목시키기 어려울 거라 했다. 


상업요리는 단순하다. 매출이 되어야 한다. 

수요가 있는 것들을 메뉴로 내어야 팔린다. 

생소하기보다는 익숙한 것들이 팔린다. 

그런 것들은 감안을 하라고 조언했다.


선배들 조언했다.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아무런 베이스나 기본이 잡혀있지 않은 채로 유학을 가면 배움이 제한적일 것이라 했다.

틈틈이 어학원에 가 이태리어를 배웠다. 


선배들의 소개로 나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에 

위치한 파인 다이닝에 일을 할 수 있었다.


파인다이닝은 처음이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베이스부터 다져야 했다.

기본적으로 파인 다이닝은 일이 많다. 

코스가 위주가 되기에 흐름을 중요시한다. 

기본적으로 테크닉이 없으면 따라갈 수가 없다. 


프렙을 해야 하는 양도 어마어마해진다. 

기본적인 소스의 종류나 사용하는 식자재 또한 

일반 레스토랑 수준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프렌치 기반이라 용어부터 공부해야 했다. 

테크닉 적인 부분을 떠나 기본부터 다시 차근차근 배웠다. 

하루하루가 고되고 힘들었다. 


백사이드 주방부터, 차근차근 올라가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누구보다 빨리 주방에 출근했고, 마지막까지 남아 청소했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잠만 자는 집에 월세조차 아까운 수준이 되었을 무렵 부모님은 집에 들어오라 손을 내밀어 줬다. 


그렇게 나는 다시 부모님과 살게 되었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얼굴을 볼 일은 거의 없었다. 


내 인생에 가장 바쁘게 몸을 썼던 순간이었다. 

아침 9시 반에 유니폼을 입고 주방에 들어가 오후 10시가 다되어 나왔다. 

마감이 늦어지면 더 늦어질 때도 있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매일같이 일했다. 


그때만큼 음식이 즐거웠던 순간은 없었다. 

팀원들과 호흡이 맞아갈수록 쾌감이 있었고, 꼬이고 꼬인 오더도 겁나지 않았다. 

아무런 문제 없이 스무스하게 흘러갈 때의 그 쾌감은 음식을 하는 사람은 다 느낄 것이다. 


새로운 메뉴들, 수없이 많은 식자재, 허브, 레시피, 하루하루 기본이 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노동이 노동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정도로 힘듦을 즐기고 있었다.

 

2년을 그렇게 일을 했다. 

점점 내가 생각했던 유학 시기는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 내 머릿속에 어떤 질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드시 유학이 필요할까? 다녀와서 배운 것들을 쓰지도 못할 텐데, 1년에 1억을 쓰는 것이 맞을까?

내가 아무리 돈을 보태도 푼돈일 텐데 부모님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다녀와서 다녀온 선배들처럼 자리를 못 잡고 실패하면 어떡하지?  장담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한번 이 질문이 들어온 이후부터 떠나지 않았다. 

기회비용을 생각했다.

우리 집의 형편을 생각했을 때, 

반드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1년에 쓸 수 있는 돈일까, 고민하고 또 했다.  


막상 가기로 계획했던 해가 다가오자,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가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더 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나, 설렘도 있었지만, 

적응에 관한 두려움과, 다녀와서 제대로 된 값어치를 할까 라는 물음 역시도 끊임없이 몰려왔다.


결론에 다다른다. 

충분히 이곳에서 배워도 내 가게는 할 수 있다.

내가 번 돈이 아니라 부모님이 번 돈이니까, 부모님이 차라리 하고 싶었던 일에 쓰시는 게 맞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랬다. 가지 않기로 했다. 


부모님께는 내가 내린 결론을 말씀드렸다. 

늘 그렇듯 선택을 존중해 줬다.

나 또한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충분히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때는 그러했다. 

지금 만약 그 순간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 것 같다.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고 자랐으니까.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빛나던 눈동자가, 음식을 하며 가장 즐겁던 순간이 지나고 있었다.  




(부록 : 나의 금주 일기)

24-10-03, 금주를 시작한 지 26일째.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창문을 열어둔 채로 잠에 들었을까. 

블라인드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어젯밤의 기억은 취침약을 먹은 이후로 없다. 

수면제가 잘 들어 요즘은 잠을 푹 잔다.


다만 아침에 눈을 떠 정신을 차리기까지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약기운이 옅게 남아있는 느낌이다. 머리가 좀 무겁다.


채 취침약의 기운이 가시기도 전에 아침 약을 복용한다.

다시 침실로 들어가 침실을 정리하고 거실에 나와 소파에 몸을 뉘인다.

얼마간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본다.


간밤에 비가 왔을까, 하늘이 흐리다.

그리고 제법 서늘한 바람들이 들어온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가을은 금방 지나갈까.. 

사진 출사는 어디로 가볼까..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도심으로 가볼까.

따위를 생각하며 그냥 누워만 있다. 


휴일이지만 아무런 약속도 없다. 

술을 끊고 나서는 부러 약속을 잡지 않는다.

논 알코올 맥주가 있는 장소를 찾는 것도 제법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다 허기짐에 컵라면을 하나 먹어본다. 

간단하게 배를 채우기에는 컵라면만 한 게 없다.

빠르게 먹을 수 있고, 치우기에도 간편하다.


컵라면을 먹으며,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1시가 넘어있다. 

간단하게 먹고, 정리하고 다시 소파에 눕는다.


날씨라도 좋다면 어딘가 사진을 찍으러 가고 싶었겠지만

다른 휴일을 노려봐야겠다. 


약이 오늘따라 잘 듣지 않는지 마음이 좀 갑갑하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미묘한 불안감을 잊어보려 유튜브를 봐 본다. 

영화 시리즈 3편을 2시간 동안 요약해 놓은 걸 틀어 놓고 그냥 누워 허공만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영화관을 간지도 오래 지났다.

영화를 좋아했다. 특히 영화관을 좋아했다.

조조부터 심야까지 하루동안 영화관에서 4편을 본 적도 있다.


조용한 거실에 울리는 티브이 속 소음을 잠시잠시 듣다 얼마간 동안 잠에 든다.


일어나 차를 한잔 타 창밖을 보며 마셔본다.  

식물을 좀 키워볼까 하는 생각 해본다.

물만 주면 잘 자라는, 무심해도 잘 견뎌주는 식물로 찾아봐야겠다. 


노트북을 켜 글을 써 본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다.

시계가 6시를 가리킨다.

저녁약을 먹어본다.


어제 상담을 했다.

항갈망제를 좀 늘려준다고 한다. 

술을 참는게 여간 힘든 게 아닐 텐데 잘하고 있다고 늘 힘을 준다. 

약으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도움은 될 거라 한다. 


진작 좀 이렇게 약도 잘 먹고, 술도 견뎌볼걸..

사람은 늘 지나고나야 후회를 한다. 

이번 후회는 꽤 깊고 아리고 쓰리다.


집을 나와 글을 마무리하러 카페를 향해 간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순간이 좋다.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내 머릿속에 있는 문장과 단어를 정리해

타이핑하는 순간이 꽤 즐겁고 행복하다.


전에는 바다를 봐도 그저 그랬었다. 

사람들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바다를 찾는 걸 이해를 못 했다.

'바다를 본다고 기분이 나아지나?'


비로소 이제 이해가 된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서 파도를 보낸다. 

파도를 보며 내 근심 걱정이 함께 쓸려가는 상상을 한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에 답답함도 함께 부숴본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나는 위로를 느낀다. 


나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의존적으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음도 쉽게 주지 않았다. 준다고 해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 나 한번 마음을 주고 곁을 주면 너무 많이 의지하고 의존했던 것 같다.

삶의 밸런스를 그 사람을 위해 조정한다. 

그 사람으로 인해 행복하고 그 사람으로 인해서만 감정을 느낀다.


나와 타인과의 밸런스를,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지 못했다. 

모 아니면 도.


글을 쓰면서도 생각을 하고 또 해본다. 

이렇게 쓰고 보면 일기보다는 고해성사 같기도 하고... 참 어렵다.


지난밤 차단되어 있어 어차피 걸리지 않을 전화를 걸어본다. 

'차단'이라는 단어는 냉정함이 있다.

사전적으로도 '다른 것과의 관계나 접촉을 막거나 끊음'  


'이 짓도 이제 하지 말아야지' 생각해 본다...


오늘도 글을 쓴다. 소설을 한편 구상하고 있어, 수많은 메모를 한다.

여러 인물들의 디테일들을 메모하고, 관계들을 설정한다.


외모, 습관, 특징, 직업, 성격, 버릇, 음식성향, 주량, 등을 설정한다.

세상에 없는 공간과 인물 배경을 창조하는 재미가 있다.

오늘도 자리에 앉아 4~5시간을 글을 쓰고, 상상을 하며 메모를 한다.


아직 프롤로그 단계. 

큰 틀을 정하고, 거기에 이야기들을 쪼개고 쪼개 본다. 


오늘도 술을 참아보며 어떻게든 하루가 지난다. 

취기로 가득 찬 머릿속을 글로 대신해 본다. 





 

파도가 오늘따라 매섭게 친다. 

요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정확히는 파도를 바라본다. 파도 소리를 듣는다. 

거의 매일을 보지만, 늘 느낌이 다르다. 오늘은... .. . . . 내일은 어떨까?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쓴다. 

3~4시간은 앉아 쓴다. 

머릿속에 계속 영감을 주려 한다. 

즐겁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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