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영 9시간전

[소설] 이루다 8  교활한 영감탱이!

파멸한 세계에서

그렇게 수정란들은 추출되어 유리관에서 자라고 아기가 되었다. 아기들의 뇌 한쪽에는 미리 주문한 성격과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칩이, 다른 한쪽에는 학습한 지식을 저장할 수 있는 칩이 심어졌다. 

파키오 사람들을 가장 만족시켰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성격이나 특징을 세 가지 주문할 수 있는 것. 아이들은 부모의 기대대로 자랐다. 간혹 예상과 약간씩 다른 부분은 있었어도 큰 골치는 없었다. 그런데 돌연변이가 탄생한 것이다. 페르디다라는 돌연변이.


“YO, 설명해 봐요! 중간에 뭐가 잘못 들어간 거 아니에요? 무슨 애가 저렇죠? 이번에는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세요? 글쎄, 파키오 역사 시간에 선생님께 대들었다지 뭐예요!”

“뭐라고 했습니까?”

“기가 막혀서. 파키오가 모든 인류의 평등을 이루었다고 하니까 반박하더래요. 인종 차별을 없앴다고 하니까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냈다면서! 이게 말이 되나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거 맞아요?”

“그런 것 같네요. 새턴.”


“네?”

새턴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런 것 같다니.

“새턴. 주문할 때 ‘파키오의 논리’라고는 안 했습니다. 인공 배양으로 태어나는 우리 파키오 아이들에게는 인간처럼 ‘기초 자아’가 있죠. 기초 자아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주입한 성격, 자라나는 환경, 학습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자아는 성격의 영향을 받는데, 이 성격은 또 성격에 따라 변화한 자아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지금 페르는 자기 논리를 구축…….”


“그런 궤변이 어디 있어요? 다른 건 너무 위험해요. 그러다 찍히면요? 반역자로 몰리면요! 벌써 선생님께 주의를 받았다고요!”

“새턴. 너무 감정적이세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교육이 왜 있습니까? 교육하면 됩니다.”

“어느 세월에요. 혹시 그 성격 AS 안 되나요? 성격 교환이라든지, 리셋하고 학습을 다시 시킨다든지…….”

YO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정색하며 물었다.


“새턴, 당신은 성격을 바꿀 수 있나요?”

“…….”

“아니면 당신도 리셋해도 되나요?

그날, 새턴은 답하지 못했다.          


“이 사기꾼! 뭐? 교육하면 돼? ‘파키오의 논리’라고 안 해서 그렇다고? 자아? 이 능구렁이 같은 새끼. 이번 일 끝나면 가만 안 두겠어. 파키오에는 위원회의 때나 겨우 오면서! 파트리아에 뭘 그리 꽁꽁 숨겨놨길래! 거기 처박혀서는! 이번에 오면 제대로 따져야지. 모르긴 몰라도 다들 하자들 있을 거야. 안 그래요, 레오?”


다음에 무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페르를 생각하다가 옛날 일이 떠오르자 좀처럼 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불같이 타오르다가 차갑게 식었다가 다시 활활 타오르는 저 성격, 20년도 미칠 것 같은데, 인헤니는 어떻게 미치지 않았는지 그가 심히 존경스러웠다.

“새턴. 지금은 수습부터 생각하시는 좋겠습니다. 우선,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YO한테서 긴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중요한 거 아니면 나중에 통화하고 싶다고 하세요.”

“루다 일입니다.”     


달갑지 않았지만, 영상을 켰다. 한없이 한없이 부드러운 저 미소가 싫어질 줄이야. 아주 처음엔 좋았다. 부드러운 인상, 조리 있으면서도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어조, 목숨이 위태로워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차분한 태도, 솜사탕이 연상되는 목소리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갖춘 의사였다. 

파키오 공식 건설 2년 전, 그에게서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는 초대장을 받고, 인헤니와 함께 그를 만나고 돌아온 날이었다. 인헤니는 딱 한 마디로 그를 정의했다. 


사탕발림.

그때는 아니라고 우겼지만, 인헤니가 옳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오랜만이에요. YO. 잘 지내셨나요?”

새턴이 제법 침착하게 인사를 건넸다.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마주하고 통화해야 하는 것이 짜증스러웠지만, 웃었다. 

“네. 저야 잘 지냈습니다만. 지금 좀 경황이 없으시겠어요.”

‘능구렁이 같은 놈. 걱정하는 척하기는!’

“네, 좀. 여기 파키오가 좀 답답했나 봅니다. 금방 데려올 거예요. 성인식은 잘 준비되어 가나요?”

“네. 제임스가 꽤 잘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설도 한다고 합니다. 말솜씨가 미려하니 사람들이 좋아하겠죠.”

“네. 잘 되었네요. 용건은요?”


“루다가 메디움에 가길 희망합니다.”

“네?! 뭐라고요?”

혈류도 없는데 혈압이 오르는 진귀한 경험을 다 하겠다. 이제 막 등반을 시작하려는데 다음 코스에 더 큰 산이 있음을 알게 된 꼴이었다.

“최고 점수를 받으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더군요. 우선 선택이긴 하나 누구도 메디움을 선택하지는 않았다고 얘기해 두었습니다.”


“제가 루다 키운 것 아시죠?”

“물론입니다. 루다에게 그 점도 언급했습니다. 뭐 말로는 메디움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해 보고 싶다더군요. 그런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보였어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당신이 모르는 것도 다 있네요.”

새턴이 저도 모르게 비꼬았다. 그리고 심사가 뒤틀려서인지 한술 더 떠버렸다.

“설마 우리 애가 왜 저러는지도 모르는 건 아니죠?”


“새턴, 지금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단속에 대한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결혼식이 코앞인데 신랑이 달아나다니요. 평범한 결혼식도 아니고 ‘올해의 신부’의 결혼식이지요. 위원회에서 주관하고요.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분했지만, 사실이었기에 새턴은 자제해야 했다. 파키오의 브레인, 파키오의 굵직굵직한 일을 계획하는 이 남자, YO와 지금은 연대해야 한다. 

‘루다만 무사히 오면!’

“루다는 파키오로 보내 주세요.”

“결혼식에 맞출 수 있습니까? 예비 신랑을 예비 신부가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양새는 좋지 않습니다.”

“그럼! 루다를 메디움으로 보내자고요? 지난 9년간 루다만 지원했어요. 그 막대한 스캔비를 다 내가면서요. 이제 와서 루다 핑계, 페르디다 핑계 대시면!”     


흥분한 새턴이 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하기 전에 레오가 새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새턴은 늘 너무 쉽게 동요되는 게 문제였다. 

앙칼진 새턴에게 여래처럼 인자한 미소로 답하는 YO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세턴이 톤을 내려 말했다. 

“YO. 루다는 반드시 페르와 결혼해야 해요. 제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에요.”

크게 하악질 하며 올린 발을 슬며시 내리며 뒤로 물러나는 고양이, 파르르 떨리는 털을 맹렬하게 세우지도, 완전히 내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는 상태에 YO는 웃음이 났다. 


‘저렇게 속이 다 보이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쯧.’

“루다가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이군요. 1년 안에 파키오로 갈 수 있게 해 보겠습니다.”

“하…. 1년 후에 루다를 어떻게 오게 하죠?”

“프로그램이야 만들면 됩니다.”


“대가는요?”

“새턴, 당신이 굴린 수레바퀴가 목적지에서 멈추었을 때, 나도 태워주면 됩니다.”

“알겠어요. 인헤니와 상의하고 연락할게요.”

새턴은 얼른 통화를 끊고 인헤니에게 가고 싶었다. 가서 저 여래 미소 뒤에 숨긴 이빨의 정체를 같이 캐보자고 해야겠다. 

“좋습니다. 뭐, 그의 답이야 안 물어봐도 알 만하지만, 아들 일인데 부부가 상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답은 레오 통해서 간단히 알려 주시면 됩니다. 그럼, 행운이 있기를!”

YO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교활한 영감탱이!’

이전 07화 [소설] 이루다 7 편을 가려내서 좋았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