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스승님 중 한 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세상에 ‘스승’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스승을 만난다. 보통의 스승은 시간과 공간, 혹은 누군가가 임의로 맺어준 ‘사람’이다. 하지만, 진정한 스승은 그게 아니다. 존재만으로도 나의 사고를 확장 시키고,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내가 그를 ‘스승’이라 정한 날을 잊을 수 없다. 단 하나의 말 때문에 그는 내 스승이 되었다.
“저는 어떤 사람인 것 같으세요?”
[왜 이런 질문을 했냐고요? 모르겠습니다! 그냥 궁금한 게 많은 나이였습니다. 껄껄.]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잘 웃고 예의도 바르지만, 그 안에 약간의 광기가 보인다. 모든 사람이 널 특이하다고 하겠지만 난 그걸 천재성이라고 본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울렸다.
유레카!
‘특이하다.’는 말은 내게 늘 낯설고도 익숙한 딱지였다.
다들 내게 ‘특이하다.’ ‘평범해져라.’ ‘그런 걸 왜 하냐.’ ‘또 이상한 데 꽂혀 있네.’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또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특이함은 곧 이상함이었고, 이상함은 곧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그것을 ‘천재성’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약간의 광기’라는 팩트 섞인 단어와 함께. 그때부터 나는 그를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너무 천재적이라는 거다.
아무리 따라가고 싶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있는 사람.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 걸까?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부처의 제자 가섭을 아느냐?”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실제로 내뱉었던 워딩.]
그는 말을 이어갔다.
“가섭은 스승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참고로 가섭은 부처의 십대제자이고, 제자 중에서도 으뜸! 제자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도 눈치채셨겠지만, 가섭과는 거리가 먼 MZ 유라헬. 껄껄. 미스터 가섭씨와 대결해서 이길 수 있는 종목은 ‘라면 맛있게 먹기’ 정도랄까….]
지금은 그냥, 키보드 위에서 허둥대며 그가 남긴 글을 바라볼 뿐이다.
어느 날, ‘몰랑몰랑 타자 연습’을 하며 썼다는 글을 보면 ‘천재’라는 단어의 의미가 절로 떠오른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면 허허벌판에 기다란 길 하나가 나타난다. ㅅ ㅏ ㄹ ㅏ ㅇ을 누르니 파란 하늘 중앙에 홍조 띤 두 남녀가 서로 입 맞추고 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눈을 볼라치면 타자하는 손가락을 멈춰야 한다. 창포 냄새나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여인의 어깨 위에 얹힌 손등이 파르르 떨 때 내 둘째 손가락도 떨고 있다. 천둥 같은 강렬한 남자의 침 삼키는 소리와 우주 저쪽에서 난 것 같은 알 수 없는 ‘웃-울음소리’가 내 심장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엔터 키를 치기 직전 저만치 이별이 걸어오고 있다. 그가 고함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아픔과 슬픔이 두 남녀의 틈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지 않도록 마침표를 쳐야 한다.
이제 넓은 벌판은 까만색 생명으로 꽉 찼다. 어설픈 키보드 치는 손가락은 시리고 버벅대고 있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탁탁탁 소리가 뜨거운 포옹 때 나는 갈비뼈의 부딪히는 둔탁한 음이 되어 손가락을 감싼다.
수없이 두들기는 글자 위에 땀 눈물이 젖는다. 세상의 모든 글자가 다 있는 저 글자 창고에서 한 손으로는 끄집어낼 수 없다. 두 연인 같은 두 손으로 쉼 없이 글자를 꺼내고 있다.
그는 타자를 연습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랑과 이별과 감정을 담아낸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살아 움직인다.
그냥 ‘글을 쓴다’가 아니라 ‘글을 창조한다.’
나는 스승을 닮고 싶다. 그러니 차근차근, 한 걸음씩 가려 한다.
언젠가는 나도 가섭이 될 수 있을까? 스승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뜻을 이해하는 날이 올까?
지금은 아직 길의 초입에 서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이제 더 이상 ‘특이하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말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날이 오면, 나는 진정으로 스승을 이해하는 가섭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사진은 조정석의 그 유명한 '야, 너두 할 수 있어.' 짤 입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