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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나누다

이웃이 식구가 되는 시간

by 조유상 Mar 19. 2025

   

내가 묵는 숙소 사장님은 점심때마다 밥을 먹으라 한다. 첫날은 첫날이어서 그랬다 치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전화까지 하면서. 벌써 세 달째. 밥 먹이는 게 취미일까요? 그건 아닐 테고... 인근 회사 직원들 스무 명 남짓은 돈을 내고 먹는 밥을 우리는 맨으로 거저 얻어먹으라고요? 안 된다, 안 됩니다, 대머리 까진다고요 해도 매번 남는다며 부른다. 무거운 그릇을 나르고 손을 계속 냅두질 않으니 양쪽 엄지손가락에서 손목으로 향하는 근육이 붓고 아프다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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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골고루 차려낸 음식은 가짓수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 밥에 국이나 찌개, 나물 두어 종류, 고기볶음이나 찜 혹은 생선류, 샐러드에 김치, 깍두기와 장아찌, 겉절이에 누룽지도 있다. 빵과 라면까지 덤이다. 라면을 취향대로 끓여 밥을 말아 드시는 분도 있고 밥+누룽지로 입가심하기도 한다. 계란프라이나 야채를 다져 넣은 계란말이는 번갈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반찬이다. 이 푸짐한 음식을 차려놓고도 별거 아닌 듯 맑게 활짝 웃는 모습에 우리는 녹아내린다.

그가 일일이 다듬고 씻고 데쳐내고 건지고 다지고 양념하고 볶아내고 익혀내고 지져낸 수고로운 손길은 물론 그 일을 하는 시간까지 덤로 먹는다. 설거지도 만만찮다. 아무리 커다란 한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는다 해도 국과 컵이 있고 수저가 기다린다. 음식을 담아두었던 묵직한 철판도 있고. 설거지라도 함께 할 수 있게 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지련만 밀어내며 못하게 한다. 억지로 우겨 몇 번 간신히 하긴 했지만 내가 하는 양은 지극히 일부일 뿐. 자기 몫이라 여겨 맡기지 않는 거겠지만, 나로선 최소한이라도 그미의 손목을 보호하고 싶고 최소한의 미안함을 덜고 싶다, 아니 고마움으로 함께 하고 싶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식당 노동일이 보통 일인가. 밥을 해 준다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도 소중한 일이라는 걸 왜 모르겠는가? 애들 풀무학교 다닐 때도 가서 밥 먹게 될 때마다 내겐,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더 중요하고 값진 일 순위는 언제나 밥을 준비해 주는 분들이었다. 밥은 내게 곧 생명이고 하늘이다. 김지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렇다.      

남는 걸 준다며 미안해하는 말로 우릴 편안케 하지만 우리는 안다. 남은 밥을 처리하기 위함이 아니라 일부러 넉넉히 해서 우릴 함께 먹이려는 그 마음 그릇을. 그 품 안에 넉넉한 솥단지가 들어앉아 있나 보다. 그 따뜻한 마음 솥단지를 끼고 사는 우린 전생에 나라를 구하기라도 했는가? 어디서 이런 인연을 맞을까?  

앞집 오라버니 부부는 사장님이 쉬는 주말이면 맛있는 밥을 사주시고 손수 운전까지 도맡아 하신다. 주중과 주말이 모두 기대되는 매일을 산다. 이제 이웃 울타리가 허물어져 식구(食口)가 되어버렸다.     

점심마다 우릴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사장님은 간혹 지나가던 지인까지 불러들인다. 우린 기꺼이 즐거운 식객이 된다. 어미새 앞에 아기새처럼 입을 쫑긋 오물오물 음식이라 부르는 정성을 수저마다 함께 떠 꼭꼭 씹어 목으로 넘긴다. 오늘의 생명도 어김없이 그에게 빚진다.     

나는 오늘 저녁을 위해 도토리가루를 풀어놨다가 묵을 쑤었다. 집에서 보내준 짜게 절였던 무시래기를 어제부터 담가 적당히 짠기를 빼놨다. 양념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조물조물 간을 한 뒤 씻어둔 밥 위에 올려 안쳐두었다. 다 같이 먹게 넉넉히.


오늘 저녁 메뉴는 무시래기 밥이다. 앞집 언니 부부가 캐다 다듬어 씻어둔 파릇하고 향긋한 달래를 사장님이 양념간장에 무쳐 오면 그걸로 들기름 넣고 밥을 썩썩 비벼 한입씩 넣으며 다정하리라. 매끌매끌 탱글 쫀득한 묵무침까지 한 볼태기씩 먹으며 가는 겨울과 다가올   먹겠지.


밥도 익기 전 벌써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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