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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쩍새 Oct 02. 2024

01. "야, 러시아 가자!"

2016 1월 온몸이 시리던 겨울, 나는 대학 생활 2년을 간신히 버텨내고 방학 동안 작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를 자퇴하고 생계를 위해 정식으로 공장일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올수록 방향을 정하지 못한 내 가슴 속에서는 불쑥불쑥 울화가 치밀어 올라왔고, 술을 마시는 날들이 늘어갔다. 내 청춘이 검은색 컨베이어 벨트 위로 돌돌돌 흘러갈수록 나의 마음속에는 무력함이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러던 무렵에 갑자기 친구 K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러시아 가자!"

…….'

지루한 저녁 잔업 후, 가뜩이나 진이 빠져있었던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의 한마디 말에 대답도 못하고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놈이 내 형편을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고 있나?'

그래도 몇 안 되는 친한 이의 전화이기에 순간 치밀어 오른 짜증을 간신히 참으며 가만히 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어두컴컴한 밤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마음이 진정되자,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제까지 나는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나는 정말로 러시아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가 러시아에 가면 안 되는 수많은 이유가 참으로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을 짓눌렀다.

'그 이후에는?'

'돈은?'

'집안일은?'

'여행 한 번이 그만한 가치가 있나?'

'내 주제에 사치를 부리는 게 아닌가?'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

생각의 흐름이 마침내 이 한 구절에 이르렀을 때, 나는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때 나는 평생토록 이 가난하고 비루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숨 막히는 공장 속에서 먼지로 부스러질 내 청춘에게 마지막으로 원하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 러시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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