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골프 레슨을 해주고 있다. 레슨이란 단어는 좀 거창하고 '봐드린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는 협회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 대회 출전 경력도 많지 않지만, 가끔 요청해오면 조용히 레슨을 해주곤 한다. 그야말로 같은 아마추어 입장에서다. 나 또한 초보 시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걸 줄여주는 실전 팁 위주로 진행해 드린다. 한 번은 레슨이 끝난 뒤 한 분이 나를 이렇게 평가해 주셨다. “말투가 조곤조곤하고, 부드럽고, 차분하세요. 어려운 용어도 안 쓰시니까 귀에 쏙쏙 들어와요.”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이런 분위기로 전달되는 사람이구나. 말투라는 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설명하는구나. 사실 클라이언트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외엔 내 말투가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은 별로 없었다. 의외의 상황에서 적나라한 나의 일부가 보인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우리 주변엔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많다. 근데 그 브랜드는 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까. 나는 그럴 때 '말투'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로고도 아니고, 제품 기능도 아니고, 광고 문구도 아닌. 브랜드와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태도, 분위기 그리고 말투. 그건 설명하기 좀 어려운 부분이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소비자가 그 브랜드를 대할 때마다 느끼는 어떤 인상이다.
브랜드는 사람을 닮는다. 그중에서도 말투를 닮는다. 말투란 참 신기한 것이다. 같은 말을 해도 누구는 신뢰를 주고, 누구는 불편함을 남긴다. 그저 단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의 태도, 생각, 감정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도 그렇다. 로고나 슬로건보다 먼저 와닿는 건, 그 브랜드가 어떤 말투로 나를 대하느냐다. 말투는 콘텐츠 안에서 흘러나온다. 인스타그램의 짧은 한 줄, 뉴스레터 제목, 피드의 여백, 댓글에 답하는 방식. 사소한 것 같지만, 그게 다 말투다.
그래서 '말투'라는 키워드로 브랜드에 대해 다시 정의해 봤다. 정확히 말하면, 브랜드가 '기억되는 방식'에 대해 정리해 본 것이다. 다섯 가지쯤의 흐름이 있었다.
'패션' 하면 무신사, '배달' 하면 배달의민족. 그들은 그 의자에 먼저 앉았다. 그 의자는 단지 ‘카테고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이 쓰는 말투, 말 거는 방식, 심지어 고객을 부르는 호칭까지, 그 모든 게 브랜드의 자리를 만든다. 무신사의 말투는 ‘쿨한 형’이다. 배달의민족은 ‘위트 있는 친구’다.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들이 먼저 말했고, 먼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포지셔닝은 복잡한 전략 같지만 사실은 아주 단순한 선점의 싸움이다. 배달의민족은 정말 ‘말투의 힘’을 잘 보여주는 브랜드다. “이 사람(브랜드), 좀 웃기다. 그런데 센스 있어.” B급 감성 같지만 결코 허술하지 않은, 기획과 카피가 아주 정교하게 짜인 ‘설계된 친근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오늘도, 내일도, 배달의민족” 이런 문장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배달이라는 일상 속에서 브랜드가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다. 마치 친구가 내 옆에서 툭 던지는 말처럼. 그리고 이 톤 앤 무드는 앱 UX부터 고객 알림, 심지어 배송 박스 문구까지 쭉 이어진다. 즉 “브랜드는 말투다”라는 명제의 증거다.
브랜드는 결국, "그 브랜드는 어떤 말투였지?"로 기억된다. 말투는 단어보다 깊고, 문장보다 오래 남는다.
마켓컬리는 ‘내일의 장보기’라는 슬로건보다 고요하고 정갈한 말투로 각인된다. 차분한 톤의 문장, 신뢰를 주는 단어 선택 그리고 고객을 ‘고객님’이 아닌 ‘당신’으로 부르는 섬세함. 이 모든 것이 브랜드의 이미지가 된다. 젝시믹스는 말수가 적지만 자신감 있는 브랜드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설명보다 체험을 권한다.
그런 말투가 결국 ‘입어보면 안다’는 브랜드 감각을 만든다. 사람들은 브랜드의 말투에서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 말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비주얼이다. 브랜드는 결국, 말하는 방식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말투는, 브랜드의 얼굴이 된다.
좋은 브랜드는 말이 짧다. 그리고 그 짧은 문장 안에 자신을 다 담는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문장. 그 자체로 브랜드의 철학이 되고, 때로는 고객의 생활 방식이 되기도 한다. "Just Do It." 이 세 단어는 하나의 권유이자 명령이다. 움츠러들 때, 머뭇거릴 때, 핑계를 찾을 때 이 말은 당신을 조용히 밀어준다. 말은 짧지만 울림은 길다. 이건 단지 슬로건이 아니다. 브랜드가 세상에 말 걸기 위해 선택한 단 하나의 말투다.
"무신사랑 하세요." 장난처럼 시작한 말이 어느새 무신사의 고유 언어가 되었다. 그 말을 들으면 그 브랜드가 떠오르고, 그 브랜드를 보면 그 말이 생각난다. 말버릇이 그 사람을 말해주듯, 이 짧은 문장은 브랜드의 말버릇이다. 고객이 자기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는 말투. 자주 들을수록 정이 가고, 익숙해질수록 브랜드가 된다.
좋은 브랜드는 결국 자기를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세상과 나누는 방식으로 말한다. 좋은 브랜드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문장을 하나쯤 갖고 있다.
브랜드는 눈에 먼저 보이고, 마음에 먼저 와닿는다. 그리고 말없이 감정을 전달한다. 그 모든 게 콘텐츠다. 블로그에 쓰인 한 문장, 뉴스레터 제목에 담긴 리듬, 인스타그램 피드에 반복되는 색과 여백. 그건 단순히 디자인이나 톤 앤 매너가 아니다. 브랜드의 말투가 시각과 언어를 타고 전해지는 방식이다.
뉴닉은 뉴스조차도 친구처럼 말 건다. ‘~했다냥’, ‘~할지도’ 같은 말투는 처음엔 낯설지만, 어느새 그게 뉴닉다워진다. 그들의 말투는 무겁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다. 그 균형이 콘텐츠 안에서 유지된다. 스픽은 학습 브랜드지만 ‘공부하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하루 5분’, ‘들으며 따라 하기’ 같은 말투로 말을 건다. 조금씩, 가볍게, 매일. 그게 그들의 말투다. 브랜드는 콘텐츠에서 숨 쉬어야 한다. 보이는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그 말투가 콘텐츠 안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브랜드는 비로소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브랜드도 사람처럼 느껴져야 신뢰가 생긴다. 한 번 마음에 든 사람이, 다음에 만났을 때도 같은 눈빛과 말투로 인사하면 우리는 그를 다시 좋아하게 된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브런치에서 봤던 브랜드가 인스타그램에서 같은 톤으로 나를 맞이하면 그 브랜드는 더 이상 마케팅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니스프리는 자연의 언어로 말한다. 그들은 계절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말투는 항상 부드럽고, 맑고, 단정하다.
애플은 말을 아낀다.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그 대신 이미지로, 여백으로, 조용히 자신을 설명한다. 그들의 절제는 매장에서, 패키지에서, 광고 영상에서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이어진다. 일관성은 꾸며내는 게 아니다. 그건 브랜드가 자기 자신을 아는 방식이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걸 알아본다. 브랜드는 하나의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말투가 있고, 감정이 있고, 취향이 있어야 한다. 그게 쌓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말한다. “그 브랜드, 참 그 브랜드답다.”
말투라는 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나는 그걸 골프 레슨을 해주던 어느 날, 뜻밖의 피드백 한 마디로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다. 느낌을 남기고, 기억을 남기고, 어딘가 조용히 분류해 둔다. 그리고 그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 사람이 말하는 방식, 그 말투에서 전해지는 온도와 속도. 브랜드도 그렇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브랜드와 마주치지만, 어떤 브랜드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기능이 특별해서도, 디자인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그 브랜드가 말을 거는 방식, 그 말투에서 묘한 친근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말투는 브랜드의 얼굴이고, 그 브랜드가 세상과 맺는 관계의 태도다.
설명하려 들지 않아도 괜찮다. 크게 외치지 않아도 괜찮다. 브랜드가 어떤 말투로 존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 인상이 쌓이면, 이름보다 먼저 떠오른다. 기능보다 먼저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조용히 말할지도 모른다.
“그 브랜드, 참 그 브랜드답지.”
“그 말투, 괜히 마음에 남더라.”
여러분은 오늘 어떤 말투와 마주하셨나요? 어떤 말투는 마음을 닫게 하고, 어떤 말투는 괜히 오래 남죠. 그 속에서 당신이 발견한 오늘의 PICK은 무엇이었나요? 말투 하나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하루였다면, 그건 꽤 괜찮은 하루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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