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 먹자골목에 가끔 가던 한우 식당이 있다. 요즘은 먹자골목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들었지만, 그 집은 그 먹자골목의 맨 끝에 있었다. 이 집은 한 번이라도 갔던 지인들은 모두 끝집으로 기억을 했더랬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소리였다. 담장 건너가 철로였기 때문이다. 경의중앙선 철길이었다. 손님들 떠드는 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 외에 뭐가 있을까 싶지만, 그곳엔 유니크한 '음'이 있었다. 간헐적으로 들려지는 '음'.
그 끝집 식탁에 앉아 고기를 굽다 보면 어디선가 열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순간, 담장 너머로 기차가 휙— 지나간다. 단 몇 초의 길이. 고기 한 점이 사라지기도 전에 소리가 먼저 사라진다. 순간 고기 굽는 소리도, 둥근 테이블 건너 지인들의 웃음소리도 잠시 열차 지나가는 소리에 덮이고 만다. 일부러인지 고기 냄새 때문이지 알 수 없지만, 식당 출입문은 늘 오픈되어 있었다. 출입구 앞쪽 전체가 통으로 열려 있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지나가는 손님들, 담배 피우는 사람들, 화장실 다녀오는 사람들 모두를 보게 된다. 모든 소리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지나간다. 모든 소리를 잠재우는 단 하나의 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한우집이 한우 퀄리티로 기억되기보다, 그 짧은 순간의 익숙한, 그러나 의외의 사운드로 기억되곤 했다. 음악은 소리의 향수(감각의 박물학, p300)라고 했던 표현이 생각난다. 이 집엔 흔한 가요나 팝송도 들리지 않는다. 멀리서 다가왔다가 멀리로 사라지는 기차 소리가 배경음악을 대신하고 있었다.
철컥... 철컥...철컥 철컥
철길 소리가 고깃집 연기 사이로 들어오면 그 순간만큼은 고깃집이 아니라 어디 먼 곳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담장이 막아주는 건 시선뿐이었다. 소리와 분위기는 그대로 들어왔다.
‘이 집은 운치가 있구나.’ 비 오는 날 다시 와야지. 눈 오는 날도 좋겠다. 어떤 이와 가더라도 기차소리를 처음 듣는 이는 똑같은 말을 했다. 누군가와 꼭 다시 와야겠다고 모두 다짐 같은 걸 했었고 그럴 즈음에 인심 좋은 사장님은 서비스로 특수 부위를 내오곤 했었다. 가끔 경의중앙선을 타고 이곳을 지날 때면 그때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 소리의 원근감이 없이 덤덤하게 열차는 그 끝집을 지나쳐버린다.
기차는 멀리서 볼 때 이상하게 감정이 생긴다. 플랫폼에서 정면으로 다가오는 열차와 멀찍이서 스쳐 지나가는 열차는 느낌이 다르다. 정면으로 다가오는 건 ‘도착’을 예고하지만, 멀리서 스치는 건 ‘이별’ 같다. 혹은 ‘그때 그 시간’처럼 이미 지나간 감정들. 열차는 역으로 들어오는 앵글 보다 측면이나 혹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들었을 때 더 감성을 자극한다.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도 기차가 지나간다. 저녁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 기차 소리를 듣는다. 어쩌다 기차를 마주치지 못하면 잠시 벤치에서 올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다. 마치 우연한 행운이라도 만난 것처럼 핸드폰을 꺼내 지나가는 찰나를 포착한다. 일직선의 불빛들이 그어지고 카메라는 그것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걸 소음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 소리에 위로받곤 한다. 단 몇 초 동안. 그 순간 산책이 괜히 더 근사해진다.
똑같은 길, 똑같은 가로등인데도 기차 한 대가 지나간 뒤엔 모든 게 달라 보인다. 속도를 비교하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잠깐이나마 기차와 내가 같은 풍경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어딘가 감정이 생긴다. 예상치 못한 기차의 등장처럼, 삶에서도 가끔은 스쳐 지나가는 장면 하나가 오래 남는다. 멀리서 온 소리가 마음 가까이에 머무는 것처럼,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눈빛 하나가 긴 여운을 남긴다. 감정은 거리에서 비롯된다. 얼마나 멀리 있느냐, 어떤 각도로 바라보느냐. 그에 따라 풍경도, 감정도, 의미도 달라진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거리’와 마주하셨나요? 어떤 거리는 감정을 멀어지게 하고,
어떤 거리는 뜻밖의 온기를 남기죠. 그 속에서 당신이 발견한 오늘의 PICK은 무엇이었나요?
느린 감정에 잠시 머무는 뉴스레터,「정카피 한 잔」에서 만나요.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https://maily.so/jungcopy
#정카피 한잔 #오늘의 PICKNIC #거리는 감정을 만든다 #기찬지 나가고 나는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