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차고 산 적이 거의 없다. 몸에 뭔가를 두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손목을 비워두고 살았다. 목걸이도, 팔찌도, 반지도… 땀이 차는 느낌이 싫고, 금속이 피부에 닿을 때의 서늘한 촉감도 어딘가 불편하다. 그걸 억지로 참고 하루를 지내는 건, 괜히 내 리듬을 망치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건 내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든 후다닥 벗고, 가볍게 움직이고 싶은 마음. 혹은 무엇에도 구속받고 싶지 않은 습성(?) 같은 것일까. 나는 늘 최대한 가볍게 입고, 가볍게 움직이려 애쓴다. 그래야 생각도 가벼워지고, 하루도 덜 무거워진다.
예전에 당구장 세면대에서 대학 졸업 선물 반지를 빠뜨린 적이 있다. 거울을 보며 손을 씻던 그 순간, ‘툭’ 하고 금속이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 바로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반지는 배수구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고, 그날 하루는 이상하게도 모든 게 허전했다. 또 한 번은 골프 연습장 테이블 위에 비싼 시계를 놓고 그냥 돌아선 적도 있었다. 테이블 위에 벗어놓은 걸 까맣게 잊은 채 집까지 왔고, 손목이 허전한 걸 느낀 순간, 다시 달려가 봤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 시계를 선물했던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후로는 액세서리를 멀리했다. 받지도, 차지도 않았다.
그렇게 걸침 없는 생활을 이어가던 중, 광고업계 친한 선배는 내게 농담처럼 이런 말을 던졌다.
“롤렉스가 아니면 차라리 애플워치가 낫지 않아?
트렌디해 보이잖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배의 소매 끝에서 롤렉스 서브마리너가 번쩍였다. 빛이 난다기보다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 반짝임은 선배의 삶과 잘 어울렸다. 경력도, 말투도, 옷차림도, 심지어 목소리까지도. 경력 많은 광고인의 손목에 올려진 ‘시간의 무게’ 같았다. 그걸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걸. 나는 반짝임보다는 ‘흐름’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눈에 띄기보다는 계속 움직이는 쪽. 무게보다 리듬이 편한 사람.
러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대략 4년 전쯤.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러닝은 기록의 스포츠다. 속도, 거리, 페이스, 고도, 심박수... 달리면 달릴수록, 수치가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떻게 달려왔는지, 그냥 숫자들이 조용히 내 상태를 설명해 준다. 처음엔 애플워치로 시작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스마트하긴 했지만, ‘러너의 시계’는 내겐 아니었다. 제 아무리 애플 마니아지만 워치만큼은 그랬다. 그러다 우연히, ‘가민’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디자인은 소박했고, 색깔도 튀지 않았다. 딱 운동용. 딱 실용적. 말 그대로 ‘운동용 시계’ 그 자체였다. 남들의 눈길을 끌만한 포인트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그 소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의 이목보다는 나만의 페이스가 중요한 시점이었다. '어차피 롤렉스가 아닌데 뭐...' 이왕이면 실용적인 걸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여러 모델 중 음악이 재생되는 모델을 골랐다. 러닝 초보 시기엔 음악을 자주 들었다. 비트가 뛰면, 자연스럽게 다리도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용법이 복잡했다. 메뉴가 많았고, 설명서도 꼼꼼히 읽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단순한 기능만 골라서 썼다. 심박수, 훈련 프로그램, 수면 분석.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간밤의 수면 기록과 '오늘의 훈련 제안'이다.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체육인의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이랄까. 이젠 자연스럽게 몸이 그 순서를 기억한다. 아주 짧은 그러나 중요한 모닝 루틴이 되었다. 샤워할 때만 빼고는 하루 종일 착용하고 있다.
가끔 시계를 두고 외출하면 뭔가 빠진 느낌이다. 마치 내 하루의 리듬이 하나쯤 빠진 것 같은 기분. 이젠 자연스럽게 손목이 그 무게를 기억하고, 몸이 그 리듬을 받아들인다. 처음으로 ‘시계를 손목에 매고 산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이건 액세서리가 아니다. 어쩌면 작은 주치의 혹은 조용한 퍼스널 트레이너에 가깝다. 동그란 시계 화면을 통해 짧은 조언을 확인하고, 수치로 격려를 받는 기분이다.
선배의 손에는 여전히 롤렉스가 있다. 롤렉스의 브랜딩은 '성공한 이의 상징'으로서의 시간을 담아낸다. 롤렉스 광고 캠페인은 언제나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시간이 가치를 증명한다.” 빛나는 캠페인답게 롤렉스는 가슴을 뛰게 한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고, 마음에 무게를 싣는다. 내 손목의 시계는 그 반대다. 이 시계는 다리를 뛰게 한다. 심박수를 올리고, 골목을 지나게 하고, 생각을 흐르게 만든다. 롤렉스는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말해주지만, 가민은 그 시간에 어떤 감정을 담았는지를 알려준다. 어떤 브랜드는 눈에 남고, 어떤 브랜드는 몸에 남는다. 나는 주말 아침 이 시계를 차고, 상암 하늘공원을 달렸다.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기록을 남기며.
어떤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고, 어떤 시계는 나를 알려줍니다.
오늘 당신의 리듬은 어디쯤 있었나요? 그 리듬 위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았다면,
그건 분명 브랜드 보다 깊은 당신만의 하루일 겁니다.
*아이디어가 춤추게 하라- 탱고 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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