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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골프

알리의 어록으로 만나는 원포인트 레슨

by 언덕파

'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위대함을 알기 전부터 이 말을 했다.'

'당신이 나만큼 위대해진다면 겸손하기가 어렵다.'

'나를 때리는 것을 꿈꿔봤다면 각성하고 사과하는 게 낫다.'



역대 복싱계의 위대한 복서이자, 말발의 천재 무하마드 알리. 70세 생일 축하 자리에 수많은 스포츠인들이 참석했고, 그에게 스포츠인으로서 감사를 표하던 중 누군가 골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저는 최고의 골퍼입니다. 단지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기술은 의지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샷, 밥로텔라 지음/이종철 옮김



알리다운 대답이다. 상대의 기를 꺾는 한마디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하다. 그런데 아마추어 골퍼의 입장에서 쉽게 공감하긴 어려운 어록이다. 직업인으로서 프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돈과 노력을 갈아 넣어 획득한 프로자격증은 물론 대회에 나가 상금을 받고 우승의 한을 푸는 그들이야말로 골프 기술은 아무나 도달하지 못하는 신기루 같은 레벨일 테니까. 기술의 습득 없이 의지를 키울 수 있을까. 골린이 또는 백돌이 수준의 골퍼가 의지만으로 싱글을 진입할 수 있을까. 난망하다. 아니 불가능하다. 싱글은 고사하고 갓 입문한 초보가 100타의 벽을 깰 수 있을까. 의지가 기술 습득에 불을 지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 습득을 위한 물리적인 시간은 의지와 더불어 반드시 필요하다. 아니 의지보다 우선해야 하는 기본적인 무기일 것이다. 퍼팅 라인 하나 못 읽겠는데 그저 마음만 굳게 먹는다고 공이 홀컵으로 굴러 들어갈 수 있을까. 드라이버 클럽에 대한 이해와 힘을 쓰는 연습을 하지 않고 강한 의지만으로 300야드를 보낼 수 있을까. 골프 레슨의 대부분은 결국 기술이다.



작년부터 마라톤 대회에 나가느라 라운드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연습광이었던 내가 동네 연습장을 그냥 지나쳐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달리기를 하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져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삶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골프와 조금 멀어져 있었던 이유는 마라톤 준비에 시간 할애하기도 어려웠고, 라운드 약속도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SNS에 가끔씩 들어가 보면 바야흐로 봄 라운드 사진들로 꽉 차있다. 부럽기도 하고 한창 코스에 다닐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나마 궁여지책으로 하는 루틴이 있는데, 요즘 틈틈이 거실에서 퍼팅과 빈 스윙을 하곤 한다. 그립감이라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 하지만 그립은 낯설고 셋업은 흐트러져 있고 웨지 페이스엔 먼지가 앉았다. 봄은 왔지만

내 골프는 아직 동면 중이다.



기술은 의지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알리가 말했지만 나는 이렇게 재해석하고 싶다. "기술은 의지에 의해 예열된다. 하지만, 반드시 별도의 연습도 필요하다" 나의 골프 사부가 했던 어록도 알리의 어록과 오버랩된다. "백스윙을 어떻게 했는지 모른 채로 쳐야 한다. 처음엔 코킹이 어떻고 백스윙 톱이 어떻고 알아야 하지만 익숙해지면 그 과정은 본능처럼 수행해야 한다" 익숙해진다는 말을 골퍼라면 공감할 것이다. 일정기간 집중해서 연마한 기술 말이다. 이런 습득 위에 의지가 불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라운드를 가면 동반자들 까리 주고받는 말이 있다. 요즘 연습 많이 하냐는 것. 대답은 별반 차이가 없다.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전날엔 연습하면 안 되고, 연습해도 효과도 없어서, 또는 연습 하나도 못하고 왔다고 포커페이스처럼 엄살을 부리는 골퍼도 있다. 대부분은 연습에 대해 흐릿한 대답을 주고받는다. 난 조금 선명한 쪽인데, 연습 많이 하고 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초보때부터 그게 동반자에 대한 예의라고 배웠었다. 오늘 잘 쳐야지 하는 의지만으론 코스 안에는 극복할 변수들이 너무 많다.



5월 연휴에 산과 들로 나가는 골퍼들이 많다. 공원 몇 바퀴를 뛰는 내겐 부러운 나들이다. 의도치 않게 거리를 두고 골프를 쉬고 골프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요즘이다. 가장 녹이 먼저 스는 건 아이언과 웨지의 페이스가 아니라 내 감각이다. 그다음은 자신감. 잃었던 자신감은 알리의 말발과 거만함으로 채우고 조용히 칼을 갈 시즌이다. 무뎌진 웨지에 기름칠을 좀 하고 예리하게 날을 세워야겠다. 의지만으로는 스코어를 만들지 못하고, 의지 없이 기술만 반복하면 빨리 지친다. 나는 아직 코스에 나가진 않았지만 작은 연습을 하며, 마음을 예열 중이다. 그리고, 알리의 어록을 떠올린다.


“저는 최고의 골퍼입니다. 단지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벚꽃은 졌고, 잔디는 올라오고 있다.

푸른 잔디들이 호강하는 5월, 드넓은 코스가 그리운 하루다.


무하마드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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