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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스는 서비스로 해드렸습니다

by 언덕파


머리에 바르는 왁스도 아니고 브라질리언 왁싱 이야기도 아니다.

가끔씩 가는 손 세차장 이야기다. 평소엔 셀프 세차장을 이용하지만, 아주 추운 날이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에 묵은 때가 쌓일 땐(솔직히 말하면 세차가 귀찮을 때가 더 많다) 이곳 손 세차장을 찾는다. 차를 입고하면,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 공정처럼 서너 명의 직원들이 각자 맡은 파트에 집중한다. 여느 손 세차장과 다를 바 없다. 일사천리다. 바통 터치가 400미터 계주 선수들만큼이나 정확하다. 두 분은 고압수로 초벌 세차와 샴푸를 담당하고, 그 뒤로는 두세 분이 스피디하게 물기를 제거한다. 그다음은 내부 청소. 차 내부는 먼지를 털고 진공청소기로 정리된다.



대기실에 앉아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기계보다 더 정확한 손놀림에 감탄하게 된다. 사실 세차는 기계로 하면 더 부실한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겉만 닦는다. 내 손으로 직접 하는 세차가 가장 깨끗하다. AI가 세차도 대체할지는 모르겠지만 차량 곳곳의 청결함은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하는 게 정확하다는 결론이다. 사람 손은 엄청난 무기다. 단순 노동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기계와 사람의 대결에선 사람의 승리다. 이곳에선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차가 반짝반짝 윤이 나 있다. 오랜 시간 닦아온 내공이 찰나의 과정에서 느껴진다. 한 분야에서 갈고닦은 경험. 인생도처유상수.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배울 것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그저 묵묵히 늘어짐도 없이 자신의 파트에 열중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마치 세차 장인들의 짧고 강렬한 공연 같았다. 10여 분 후, 익숙한 음성이 들린다.


"자, 나오세요!"


대기실에서 커피 한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종료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가 커피 정도를 느긋하게 음미하기엔 우리는 너무 빨라 같은 자신감 같았다. 차는 이미 꼼꼼한 목욕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이 세차장은 사장님도 직접 손에 물을 묻히신다. 작은 스프레이 통을 들고 차 표면을 쓱쓱 닦는 모습은 마치 마지막 악센트를 더하는 퍼포먼스 같다. 대기실 쪽을 향해 각을 잡고 손을 움직이는 걸 보면, 일종의 시연이자 인사 같기도 하다. 첫 방문 때, 저건 뭘까 궁금했는데 계산을 마치고 차에 앉는 순간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왁스는 서비스로 해드렸습니다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이 말을 꼭 덧붙이며 운전석 문을 열어준다. 세 마디의 엔드 카피는 한 번도 바뀌지 않는다. TV광고로 치면 엔드 트레일러 멘트인데, 이 손세차장의 브랜드 슬로건 같기도 했다. 생색일 수도 있고, 습관일 수도 있다. 또는 사장만의 작고 강력한 영업 전략일 수도.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말을 들었을 때 몇 초간은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한 듯 만 듯 쓱쓱 뿌려주는 왁스일지라도, '서비스'라는 단어가 주는 감정의 힘은 꽤 오래 남는다. 그건 단순한 세차가 아니라, 마음의 먼지까지 털어주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서비스, 무료, 공짜는 재구매를 일으키는 강력한 요소임엔 분명하다. 광고를 통한 기업의 신규 고객 유입 전략은 한계가 있다. 비슷한 제품과 서비스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기존 고객들의 재구매가 마케팅적으로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또박또박 세 마디로 고객을 배웅하는 사장님의 멘트는 왁스처럼 단골들의 머릿속에 착 달라붙는다.



세차장뿐일까. 작은 카페든 맛집이든 헬스클럽이든 미용실이든 나는 그곳 주인장들의 태도와 말투를 가끔씩 유심히 관찰해 본다. 브랜딩이 회의실에선 어렵지만 일상에서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말 한마디가 카피가 되고 상징이 되고 그곳의 슬로건이 된다. 그런 디테일들이 쌓여 하나의 브랜드 된다. 왁스 한 줄, 인사 한 마디, 마지막 발렛 서비스까지 이 사장님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마케팅 문구 없이도, 로고 없이도, 단골의 마음에 각인된 '작은 브랜드 철학'이 존재한다. 나도 그들의 일상을 보며 그들의 마케팅에서 한 수 배운다. 주변을 둘러보면 상수들이 많이 존재한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의식처럼, 일관성 있는 브랜딩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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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를 춤추게 하라 #탱고 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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