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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점이면 굳이다

60점짜리 샷이 삶을 더 자유롭게 만든 이유

by 언덕파

한때 나는 스윙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다. 골린이 입문 5년 동안 프로 7명을 경험했다. 동네 프로부터 세미프로, 투어프로까지 이름도 알만한 선수도 있었다. 스윙에 공을 들였지만 나만의 골프는 어디에도 없었다. 무심한 작대기질만 했었다. 백스윙 궤도, 다운스윙 타이밍, 임팩트 순간의 자세… 라운드가 끝나도, 내 스윙이 영상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그땐 잘 쳐도 찝찝했고, 못 치면 스트레스로 며칠을 끌었다. 어쩌면, 그건 골프를 잘하고 싶은 마음보단 남들이 어떻게 볼까를 더 신경 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동안은 내가 골프를 하는 게 아니라, 골프에 끌려다녔다.



모양 만들기에 전념했던 탓일까. 코스에서 자꾸 80점 이상의 샷을 치려다 자멸하곤 했다. 쇼트게임에서 ‘이건 넣어야 해’라는 조바심이 생기면, 오히려 뒤땅이 나오며 흔들리곤 했다. 페어웨이 한가운데서도 ‘이번엔 붙여야지’ 하는 욕심이 생기면, 꼭 그린 앞 벙커에 빠졌다. 그러다 어느 날, 좋아하는 프로와 라운드를 하게 됐다. 프로의 스윙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지만, 공은 늘 타깃 근처에 있었다. 위험을 피하고, 실수를 줄이고, 찬스를 기다리는 플레이였다. 영리하고 스마트한 전략이었다. 정말 실속 있게 골프를 치는 느낌. 그날 그가 내게 말했다.


“코스에서는 60점짜리 샷이면 충분해”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말이 스며들었다. 스윙에 대한 강박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멋져야 한다’는 압박이 사라지자, 샷이 더 편해졌다. 그럭저럭 보내는 샷, 망하지 않는 샷을 하자고 생각했더니 공은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날아갔다. 그때 알았다. 내스스로가 골프를 힘들게 만들고 있었구나. 이후 골프가 달라졌다. 숙제 같았던 18홀이 즐거워졌고,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됐다. 멋진 샷 하나보다, 실수 없는 샷 10개가 더 소중해졌다. 코스는 스윙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스코어를 만드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스윙이 좋으면 당연히 좋은 샷이 나올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스윙이 나쁘다고 해서 반드시 스코어가 망가지진 않는다. 반대로, 스윙이 아무리 멋져도 타깃에 집중하지 않으면 성과는 없다. 스코어카드는 스윙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타깃에 집중했는지, 얼마나 불필요한 실수를 피했는지, 어디까지 내려놓고 냉정해졌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보여주기'와 '결과 만들기'는 다르다. 물론 연습장에서는 스윙 만들기가 중요하다. 가능하면 올바른 궤도, 간결한 임팩트, 깔끔한 피니시까지 연습해야 한다. 실전에서의 샷 리허설을 연습하는 곳이 연습장이다. 하지만 실제 코스에선 다르다. 코스는 스윙을 뽐내는 무대가 아니라, 실수를 줄이는 곳이다. 80점 이상의 샷을 자꾸 노리다 보면, 실수가 나오고 그게 쌓이면 멘털이 무너진다. 60점짜리 샷을 침착하게 반복하는 사람만이 결국 더 나은 스코어를 얻는다.




이건 골프 얘기지만, 사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일에서든, 사람 관계든, ‘완벽한 결과’를 내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엉킨다. 계획을 너무 조이고,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면 되레 중심을 잃는다. 나는 한때 기획서를 밤새 고치고, 프레젠테이션에서 완벽을 추구했다. 클라이언트가 좋아할 만한 말을 골랐고, 몇 초 단위로 스크립트를 쪼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기획서는 자주 떨어졌다. 반면, 내 경험에 근거해서 담백하게 쓴 70점짜리 제안서는 통과되곤 했다.


왜일까?


내가 ‘맞히려 한’ 기획서는 정답을 말하려 했고, 내가 ‘보여주려 한’ 기획서는 내 언어로 소통하려 했기 때문이다. 스윙은 노력의 결과지만, 스코어는 집중의 결과다. 완벽한 스윙을 추구하는 건 좋다(사실 완벽한 스윙과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매 샷을 100점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은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진짜 좋은 스코어는 60점짜리 샷을 흔들림 없이 쌓아가는 사람에게 따라온다. 광고든, 브랜딩이든, 경력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난 아직 부족해, 조금 더 배우고 나서 해야지”라는 말은 어쩌면 90점을 욕심내다 30점이 되는 샷일지도 모른다.




골프를 예로 들었으니 마무리도 골프로 하자. 화려한 스윙보다 중요한 건, 목적에 맞는 스코어다. 결국은 ‘얼마나 공을 앞으로 보냈는가’, ‘얼마나 덜 망했는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았는가’가 남는다.

그럭저럭, 그냥저냥한 60점짜리면 굳이다.

100점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지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지금 이 순간 정확하게 쳐내는 것. 해내는 것.

그게 결국 '실속 있게 롱런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보여주려고 애쓰는 시간이 줄고, 나답게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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