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사람을 움직이는 글은 아직 사람이 쓴다
요즘 글쓰기가 쉬워졌다고 한다. 짧게는 10여분이면 한 페이지 뚝딱 출력할 수 있는 세상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많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잘 써진 글’이 많다. 챗GPT를 켜고 한두 줄 입력하면 타이틀이 나오고, 콘텐츠 소개문도 그럴듯하게 완성된다. 하루에 수십 개, 수백 개씩 나온다. 모두가 작가고 모두가 카피라이터다. 그런데 좀 어색하다. 틀린 문장은 없는데, 가슴에 남는 문장은 글쎄다 일 때가 많다. 모두 똑똑하고, 정제되어 있고, 누가 봐도 말이 되는데... 왜 감정은 좀처럼 안 생길까?
바로 AI가 만든 문장의 특징이다. 정확한데, 안 움직인다. 나는 광고인이니까 광고에 한정해서 얘기해 본다. 문장과 카피는 다르다. 문장은 정보를 담고, 카피는 감정을 건드린다. 문장은 연결돼야 읽히지만, 카피는 단독으로도 존재한다. 카피는 결국 한 방이다. 뒷문장이 없더라도, 그 한 줄만으로 사람의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AI가 쓴 카피는 이런 식이다.
“이 제품은 탁월한 기능과 합리적인 가격을 자랑합니다.”
깔끔하다. 말 된다. 무난하다. 그래서 위험하다. 나는 같은 제품에 이런 문장을 썼다.
“이 기능에 이 가격, 미친 거 아냐?” 클라이언트가 선택한 건 후자였다. 정확한 문장보다, 살아 있는 말이 더 강하니까. 나는 광고일을 하며 수천 개의 문장을 만들었다. 그중 절반은 수정됐고, 4분의 1은 폐기됐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AI는 폐기당한 문장을 다시 써줄 수 있지만, 싸워서 채택된 문장의 공기까지 복원하지는 못한다. 그건 광고인만이 아는 감정이다. 숱한 야근과 3차, 4차 회의 끝에 결국 올라간 문장, 그 무게를 데이터로는 해석할 수 없다.
작년 어느 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면서 광고 현장 역시 AI시대임을 실감했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체 스태프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꺼내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자리였다. 어설픈 콘티(대부분 전문 콘티작가 수준이 아닌 아마추어 수준의 드로잉이다)를 그려오기도 하고, 영상 자료를 찾아 레퍼런스로 내놓는 자리다. 선배 CD 한 분이 편집된 영상 하나를 보여준다. 놀라웠다. 전문 싱어가 부른 듯한 SONG으로 제작된 시안 영상이었다. 또 다른 썸네일 시안은 전문 성우의 내레이션과 이해하기 쉽게 편집된 '그럴싸한' 영상이었다. 어떻게 만들었지? 개인이 만들기엔 쉽지 않은 난이도인데. 비밀은 바로 AI.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스태프들은 모두 원시 시대에 머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바야흐로 광고 회의실에도 AI 시대가 도래한 사건(?)이었다.
“AI로 다 만들었대.”
“로케이션 없이도 영상 뚝딱이더라.”
“내레이션도 AI 성우야.”
그렇다. 이제 광고도 AI가 만든다.
이전처럼 카피 대결, 비주얼 어탠션, 이런 키워드 시대는 저물어 가는 걸까.
실제로 AI 기반 광고는 이미 진행 중이다. 현대자동차 <영원히 달리는 자동차> 캠페인.
현대자동차는 아예 현장 촬영 없이, 생성형 AI 15개를 활용해 3부작 브랜드 필름을 만들었다. 영상, 음악, 내레이션까지 올 AI 세팅이었다. 보는 내내 묘한 감정이 들었다. 영상은 흘러갔지만, 정서가 남지 않았다. 이 캠페인은 AI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동시에, 감정 전달의 한계를 드러낸다. 영상의 완성도는 높지만, '체온이 낮다', '정서가 남지 않는다'는 느낌은 AI가 아직 인간의 감성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코카콜라는 아예 사용자들이 챗GPT와 DALL·E를 활용해 이미지를 직접 만들게 했다. 바로 <Create Real Magic> 캠페인이다. 진짜 마법을 만들라는 콘셉트지만, 정작 AI가 만든 이미지는 “어쩐지 다 괜찮은데, 하나도 못 고르겠다”는 느낌. 나이키는 세리나 윌리엄스를 AI로 두 번 불러냈다. 1999년의 그녀와 2017년의 그녀가 시뮬레이션 경기로 맞붙었다. 기술은 훌륭했다. 그런데 끝나고 나니, 감정의 박수는 없었다.
AI가 만드는 광고는 대부분 "틀린 말은 없다." 게다가 요즘 AI는 꽤 그럴싸하게 똑똑하다. 카피도 만들어주고, 제안서 문구도 도와준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다. “그럴싸한 말이, 그럴 뿐인 말”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감정이 끌리지 않고, 장면이 남지 않는다. 카피라이터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 있다.
“좋은 광고는 설명이 아니라 기억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AI가 추천한 국내 여행지 vs 사람이 선택한 장소> 캠페인이다. 영상으로 만들었더니, 확연히 감정선이 달랐다. AI는 '합리적인 명소'를 추천했지만, 사람은 '가고 싶은 이유가 있는 곳'을 선택했다. 삼성전자의 <Vision AI 캠페인>은 기술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있었다. 광고는 "우리가 얼마나 앞서가는가"를 말했지만, "그 기술로 내가 뭘 느낄 수 있는가"는 말하지 않은 느낌이다. 킷캣은 오히려 AI의 어색함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AI가 만든 Z세대 타깃 광고 문구를 그대로 광고로 썼고, 그 부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브랜드 메시지를 강화했다. 이건 아주 영리한 방식이다. AI의 어설픔을 브랜딩에 쓴, 진짜 사람의 판단이었다.
AI는 위협일까? 나는 오히려 반갑다. 이 시대에 ‘진짜 사람 말 같은 카피’의 가치가 더 올라갈 테니까. 지금처럼 말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진짜 말은 더 잘 들린다. 그래서 나는 AI를 도구로는 쓸 수 있어도, 광고를 설계하는 심장까지 맡기진 않을 생각이다. 카피는 여전히 사람의 온도를 먹고 자란다. AI는 문장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말, 그건 아직 우리가 써야 한다.
카피라이터가 사라질 거란 농담을 듣곤 했다. 워드프로세서가 나왔을 때도,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SNS 시대가 열릴 때도. 그런데 아직 살아있다(생존인지는 모르겠지만). 카피는 기술보다 감정을 먼저 설득하는 일이다. 나는 AI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정말 두려울 수준의 녀석이 나온다면... 그땐...). 다만, 사람처럼 말하는 AI보다, 사람처럼 느끼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AI는 문장을 만든다. 그 문장들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광고는 ‘맞는 말’보다 ‘남는 말’이 필요하다. 그 말이 아직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AI카피라이팅 #정카피 #AI광고사례 #카피의 온도 #브런치글쓰기 #광고인의 시선 #문장이 아닌 기억
#아이디어를 춤추게 하라 #탱고크리에이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