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에서 배운 현실 인식의 기술
세상엔 핑계 댈 일이 참 많다. 자신의 일에서, 취미에서, 만남에서, 관계에서 핑계를 생산하고 핑계로 결과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나 또한 여러 일상에서 핑계를 대기도 했고 탓을 해봤지만 골프만큼 핑계 만들기에 좋은 스포츠가 있을까 싶다. 한 번쯤 골프를 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볼이 자신의 의도대로 맞지 않거나 스코어가 예상대로 나오지 않으면 핑계가 스멀스멀 올라왔던 경험. 혼잣말로 하기도 하고 동반자들에게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비가 와서, 눈이 내려서, 바람이 너무 불어서. 캐디가 불친절해서, 동반자가 맘에 안 들어서, 전날 잠을 설쳐서, 감기 기운이 있어서, 기분이 꿀꿀해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 때문에, 방금 마신 맥주 때문에, 간밤에 벼락치기 연습을 해서, 코스상태가 별로여서,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이상하게 안 맞아서... 핑계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과장해서 말하면 밤을 새워서도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골퍼가 만들어내는 핑계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내 탓은 아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고수는 잘 맞는 날이 아니라, 안 맞는 날에도 자기 게임을 한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동반자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스코어에 대해 핑계를 대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골프를 한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그냥 내가 그랬던 거지, 뭐.”
골프를 22년쯤 쳐보니, 이제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단순히 잘 치는 사람 = 고수라는 등식은 아니었다. 누구와 쳐도, 어떤 날씨에서도, 자신의 핸디캡을 꾸준히 쳐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진짜 고수들이었다. 70대를 쳐도 변명이 많으면 고수로 보이지 않았고. 90대를 쳐도 변명 없이 담백하면, 난 오히려 그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날의 날씨, 캐디의 성향, 동반자의 성격, 코스 상태… 이건 내가 바꿀 수 없는, 컨트롤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내 통제 밖의 변수들이다. 그런데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그걸 자꾸 바꾸려고 한다. 코스 상태에 짜증 내고, 캐디한테 날카롭게 반응하고, 동반자의 플레이에 흔들리고, 날씨 탓을 하며 멘털을 놓친다. 그러다 스코어가 망가지면 핑계를 쏟아낸다. 하지만 고수는 다르다(대체로 멘털이 강한 사람들이다). 바꿀 수 없는 건 빠르게 인정하고,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내 스윙, 내 리듬, 내 멘털. 이건 내 손에, 즉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골퍼 대부분은 ‘오늘은 꼭 잘 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코스에 들어서면, 모든 게 달라진다. 앞바람이 강하게 불 때 샷을 해야 하고, 벙커 턱에 얹힌 공이 있고, 무표정으로 무심하게 응대하는 캐디가 있다?
그럴 때 고수는 속으로 말한다.
“그래, 이게 오늘이구나.”
“이 컨디션에서 그저 내 플레이를 하면 된다.”
나는 이걸 골프의 ‘현실 인식력’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좋은 날은 흥분하지 않고, 나쁜 날은 받아들이며 조정한다. 자신의 오늘 스코어가 90대라고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한 타 한 타의 감각을 복구하며 쌓아가는 사람. 그런 골퍼가 찐 고수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삶도 그렇다. 우린 너무 많은 외부 변수에 마음을 뺏긴다. 사람 탓, 환경 탓, 시기 탓, 운 탓…
코스가 아닌 일 속에서도 나는 종종 느낄 때가 있다.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떨어지면 핑계를 대기 쉽다. “클라이언트가 보수적이었어.” “예산이 너무 짰어.” “경쟁사가 너무 세서 어쩔 수 없었지.”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들 속에는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이 묻히고 만다. 어떤 제약 안에서도 해내는 팀, 그 팀이 프로젝트를 따낸다. 광고판도 결국 골프장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탓하지 않고, 자기 샷에 집중하는 사람이 이긴다.
핸디캡이 낮다고 멘털이 강한 것도 아니다, 반대로 핸디캡이 높아도 태도가 단단한 사람이 있다.
고수는 결국 스윙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을 이긴 사람이다.
흔들려도 자기 리듬을 유지하는 사람.
기분이 안 좋아도 티 내지 않고 걷는 사람.
스코어보다 태도를 먼저 챙기는 사람.
집중과 이완을 자신만의 흐름 속에서 반복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저 사람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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