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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에서 멈출 뻔했다

말도 안 되는 꿈이 말이 되기까지

by 언덕파

내 골프 인생의 라베(Life Best)를 기록했던 날이 있었다. 골프를 꽤 오래 치면서 싱글 스코어는 익숙해졌고, 연습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 뿌듯했던 시기였다.

“싱글 스코어면 됐지, 뭘 더 바라겠나.”

그게 당시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무모한 고민 하나가 스쳐가곤 했다. ‘여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언더파에 도전할 것인가.’ 스크래치 골퍼(핸디캡 0)를 건너뛰고 곧장 언더파에 도전한다는 건 무모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언더파는 아마추어 골퍼로서는 그야말로 꿈에 불과한 경지였다. 싱글 스코어만 나와도 기뻤고, 연습한 보람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고 행복했다.



현실적인 생각은 언제부터였는가?” 밥 로텔라 『내 생애 최고의 샷』 중에서



싱글 핸디캡에 집중하던 즈음 청주에 있는 그랜드 CC를 자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지인인 프로님의 초대로 자주 라운드하던 곳이었다. 마치 숙제 검사 받는 학생처럼 18홀 플레이를 하던 중, 프로님은 내 플레이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아우야, 곧 언더파 치겠다.”

그 말에 나는 웃었다. 그냥 덕담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다음 라운드에서도 같은 말을 하셨다.

“언더파가 머지않았네. 도전할 거지?”

그리고 그다음에도... 그저 칭찬일 거라고 생각했다. 립서비스라고 여겼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 근처 실외 연습장에서 스윙을 반복했고 주말이면 레슨을 받았으며 틈틈이 라운드 하러 나가던 때였다. 그렇게 쌓인 루틴은 어느덧 일상이 되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그분이 보는 내가 달랐던 것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현실적인 목표만 허락했고, 그는 나에게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시도하라고 했다.



그해 어느 여름날, 청주 그랜드 CC로 향한 날도 그저 ‘연습의 연장’ 정도로 생각했다. 특별한 기대도 없었고,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욕심도 없었다. 오후 티오프였고, 오전엔 가볍게 연습을 하고 출발했다. 결과는 전반 9홀 보기 없는 버디 3개. 후반 9홀 보기 없는 버디 3개. 총 66타, 6언더파였다. 스코어카드는 담백하고 깨끗했다. 정신은 백지처럼 투명했고, 스윙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흘렀다. 프로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옆에서 지켜봐 주셨을 뿐. 그렇게 그날은 생애 처음 언더파를 달성한 날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 기쁨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 얼떨떨했다. 설마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지?'
'내가 진짜 언더파를...?'

기분이 벅차오르기보단,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 그게 나에게 가능했던 걸까? 연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동안 귀에 박히게 들은 "곧 언더파 칠 거야"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밥 로텔라의 『내 생애 최고의 샷』에 그 질문에 대한 힌트가 있었다.


"자신의 꿈을 낮추거나 현실적인 생각에 멈춰있거나, 그건 과연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그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언더파 스코어는 고수들만 치는 거야’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뒀던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내 실력을 “현실적”으로 측정해 왔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가능한 꿈만 꾸도록 훈련받는다. 실패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계획하고, 타인에게 어색하지 않은 수준까지만 욕망을 펼친다. 그 말도 안 되는 목표를 프로님이 귀에 딱지 앉도록 말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싱글 스코어에 만족하며, 그날을 맞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잭을 기준으로 잡았기에, 타이거는 15번 우승했다.” 목표는 곧 방향이다



언더파 스코어는 내 계획에 없었다. 그건 그냥 지속된 암시의 산물이자, “말도 안 되는 말”이 무의식 깊숙이 들어간 결과였다. 언더파는 기술의 결과가 아니라, 내면 허락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꿈은 높을수록 좋다. 그건 오만이 아니라, 용기다. 스스로에게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으면, 꿈은 영원히 현실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싱글에서 멈출 뻔했던 어느 날, 남이 던진 말도 안 되는 목표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언더파를 경험하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목표는 때론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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