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광고 카피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종종 이렇게 비유하곤 한다.
“한약을 달이는 것과 같아요.”
환자의 몸 상태를 잘 진단해 적절한 약재를 고르고, 오랜 시간 정성껏 달여야 좋은 한약이 나오듯이, 광고 카피도 그렇다. 소비자의 니즈를 깊이 들여다보고, 적절한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를 모아 천천히 우려낸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쥐어짜야 비로소 한두 방울, 정제된 카피가 떨어진다.
가끔 시집을 읽을 때마다 비슷한 비유가 떠오른다.
시인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언어를 다르게 조합하며, 감정을 농축시켜 짧은 문장 속에 깊은 의미를 담아낸다. 나는 서점에 가면 맨 처음 잡지 코너를 들르고 그다음엔 시집 코너로 향한다. 신간을 둘러보고, 제목이 꽂히는 시집을 골라 펼쳐 본다. 얇은 두께 속에 담긴 단단한 문장들을 읽으며, 종종 카피의 힌트를 얻기도 한다.
장승리 시인의 '말'이라는 시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사랑에 대한 단호한 요구. 애매함 없이, 흔들림 없이, 정확하게 사랑해 달라는 메시지.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강렬했다. 마치 정확하게 가공된 광고 카피처럼.
광고 헤드라인이나 영상 속 카피도 시처럼 짧다. 소비자는 바쁘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 음미하며 읽어주지도, 드라마 보듯 광고에 몰입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최대한 임팩트 있는 단어와 문장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시집은 광고 카피라이터들에게 사탕창고 같은 존재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수록 마치 달콤한 알사탕 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며 녹여 먹는 느낌.
정일근 시인의 '사과야 미안하다'라는 시도 인상 깊었다.
'사과 과수원을 하는 착한 친구가 있다. 사과 꽃 속에서 사과가 나오고 사과 속에서 더운밥이 나온다며 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야 고맙다며 사과나무 그루 그루마다 꼬박꼬박 절하며 과수원을 돌던 그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사과 꽃이 새치름하게 눈 뜨던 저녁이었다. 그날 나는 천 년에 한 번씩만 사람에게 핀다는 하늘의 사과 꽃 향기를 맡았다. / 눈 내리는 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톡, 칼등으로 쳐서 사과를 혼절시킨 뒤 그 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붉은 사과에 차가운 칼날이 닿기 전에 영혼을 울리는 저 따뜻한 생명의 만트라.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야 미안하다. 친구가 제 살과 같은 사과를 조심조심 깎는 정갈한 밤. 하늘에 사과 꽃 같은 눈꽃이 피고 온 세상에 사과 향기 가득하다."
‘혼절시킨다’는 표현이 재미있기도 하고, 왠지 엄숙하고 진지하기도 하다. 이 시를 읽고 난 후, 나도 아침 사과를 먹으며 조심스레 톡, 혼절시키고 깎아본 적이 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인의 문장처럼, 좋은 카피도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몇 줄 안 되는 문장 속에 수많은 고민과 상상력을 농축해, 읽는 이의 마음 속에 잔상을 남길 수 있을까.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딸만 모른다. 딸도 여자라는 사실을 엄마만 모른다.”
박후기 시인의 '엄마라는 공장, 여자라는 감옥' 속 한 구절. 엄마와 딸 단 두 단어만으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을 끌어올리는 힘이 느껴진다. 보약 한 재를 정성껏 달이듯, 좋은 카피도 그렇게 나온다는 비유를 항상 하곤 했었다. 다만, 그저 열심히만 달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정확한 재료와 적절한 온도 그리고 충분한 시간. 그렇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농축된 문장 속에, 우리는 이야기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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