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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잘랐더니, 길게 남았다

-바버샵에서 다듬은 건 머리가 아니라 태도였다

by 언덕파

이마를 드러내는 짧은 머리를 좋아한다. 앞머리가 눈을 찌르거나, 머리를 손질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게 성격에 맞지 않아서다. 그래서 나는 2주에 한 번, 같은 곳을 찾는다. 서울 장안동, 어느 오래된 건물 1층의 바버샵. 이곳은 내가 ‘단골’이라는 단어를 아끼지 않고 쓰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처음 이곳을 찾게 된 건 단순한 이유였다. 미용실에 가면 늘 유행을 따라야 했다. 댄디컷, 가르마펌, 다운펌… 상담이 있고, 헤어 디자이너의 추천이 있었다. 남동생 소개로 미용실을 가게 되었고 몇 년을 같은 스타일로 맡겼었다. 늘 같은 머리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어딘가 나를 '꾸미는' 방향이었다. 나는 '꾸밈'보다 '정돈'을 원했다. 단골이 된 바버샵 또한 남동생의 추천 때문이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미용실처럼 분주하거나 손님으로 꽉 차있지 않은 한산한 샵이었다.



바버4.jpeg 문을 여는 순간, 확실히 다른 공기가 흐른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흘러간 재즈.


이 바버샵은 간판도 보이지 않는다.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없고, 입구도 소박하다. 유리로 된 미닫이 문. 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확실히 다른 공기가 흐른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흘러간 재즈. 미용실에서 드는 요즘 노래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요란하지 않은 빛. 조명도 밝지 않고 차라리 어둡다. 나무와 가죽이 어우러진 소박한 인테리어. 그리고 "어서 오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바버. 그는 단정한 셔츠를 입고 있다. 매번 같은 스타일의 셔츠 같은데, 그마저도 바버샵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말이 많지 않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묵묵히 자신의 할 일만 한다. “지난번 스타일 그대로 할까요?”
그 말 한마디면 된다. 오히려 그 한마디 덕분에 다시 오게 된다. 의자에 앉으면 별다른 질문 없이 커트가 시작된다. 바리깡. 흔히 이발소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이발기구다. 바리깡은 프랑스의 이발기 제조회사 ‘Bariquand et Marre 바리깡 에 마르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외래어라고 한다. 프랑스 미용실이나 이발소에서는 ‘tondeuse똥되즈’라는 용어가 더 널리 쓰인다. 어렸을 때 보았던 익숙한 바리깡은 보이지 않는다. 클리퍼라는 기구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아마 동네 오래된 이발소에 가면 바리깡이 있을 수도. 먼저 클리퍼로 주변머리를 짧게 깎는다. 이후 가위질은 정확하고, 기계적으로 정돈된다. 그의 손은 머리카락의 흐름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하다. 좌우 균형을 맞추는 데는 집착에 가깝고, 면도칼로 정리하는 손놀림은 예술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프로세스에 따라 실행된다. 수건을 데우는 시간조차 세심하다. 목덜미에 얹히는 뜨거운 수건.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이어지는 간단한 두피지압과 목덜미 마사지. 내가 바버샵을 오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살짝 스치는 물기의 온도. 그 모든 것이 어쩐지 나를 다시 사람답게 만드는 것 같다. 샴푸 후 마지막 손질을 마친 뒤, 그는 거울을 비춰준다. 그저 한 발짝 물러나 “다 됐습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본다. 짧게 잘린 이마, 단정하고 짧게 정리된 옆머리. 이상하게도 그 순간, 거울 속 내가 조금 더 나아 보인다. 그런 시간을 겪고 나면, 난 내 삶까지도 정리된 듯한 기분이 든다.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 헝클어졌던 일상. 그 모든 것이 짧은 머리와 함께 다시 제자리를 찾는 느낌.


바버6.jpeg 이곳은 내게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장소가 아니다. ‘리셋’의 공간이다


이곳은 내게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장소가 아니다. ‘리셋’의 공간이다. 2주마다 나는 다시 이곳에 온다.

그리고 다시 나를 단정하게 만든다. 짧은 머리로, 조용한 음악으로, 한 시간의 정숙함으로.
말이 없고, 유행도 없지만, 이곳만큼 나에게 집중해 주는 곳은 드물다. 그야말로 풀서비스를 받는 기분이다. 미용실을 다녔던 시절엔, 항상 트렌드와의 간격을 의식했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인지, 옆머리는 더 밀어야 하는지, 왁스는 어떤 게 좋을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자꾸 신경 쓰였다.

지금은 다르다. 누구를 위한 머리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바버샵을 나서면 바깥은 여전히 바쁘고 시끄럽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여유 있고 단정한 마음으로 거리를 걷는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올드 재즈의 여운이 귓가에 남는다. 누군가는 바버샵을 남성적인 공간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곳이 나를 더 부드럽게 만든다고 느낀다.


한 시간 동안 머리를 다듬는다는 건, 어쩌면 내 마음을 다듬는 일이기도 하다. 이마가 드러나면, 생각도 맑아진다. 뒷머리가 정리되면, 지난 시간도 정리되는 것 같다. 이제는 습관처럼 이곳을 찾는다. 큰 이유는 없다. 단지, 이곳에서 내가 나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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