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팅에도, 삶에도 정답은 없다
라운드에 나가면 꼭 이런 장면을 본다. 어떤 사람은 티샷보다 퍼팅에서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물론 티박스에서 그린으로 가까워지면 조금씩 신중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프로들도 그린 위에선 시간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쓴다. 그만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게 퍼팅이다. 아마추어는 어떤가. 볼을 꺼내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혀 그린 위에 올린다. 그리고는 볼에 새겨진 라인을 홀컵 방향에 맞춰 꼼꼼히 정렬한다. '조금만 더 오른쪽… 아니, 살짝 왼쪽이네.' 헛갈리네. 캐디에게 물어볼까? 에이, 시간도 없고 자꾸 물어보기도 귀찮아. 그냥 선 놓인 대로 치자' 볼의 라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눈과 마음을 맞추는 그 과정.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보인다.
반면 또 다른 골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볼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한 번 쓱 보고는 곧장 어드레스에 들어간다. “눈으로 보고 감으로 치면 되지.” 자신감과 단순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퍼팅하는 시간도 빠르다. 볼 라인에 따라 방향을 맞추고 여러 번 수정하는 대신 라이와 거리를 체크하는 데 시간을 쓴다. 시각과 목측의 감각을 최대한 활용한다. 물론 짧든 길든 미스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미스하는 게 퍼팅이다.
이처럼 퍼팅 라인 정렬. 은 골프장에서 유난히 취향과 성향이 갈리는 루틴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라인을 그려서 퍼팅을 해왔다. 시중에는 별별 도구가 다 있다. 볼에 줄 하나를 긋는 심플한 방식부터, 줄 세 개로 복잡하게 그리는 것, 십자 모양, T자 라인까지. 아예 볼 자체에 라인이 프린트된 제품도 있고, 양쪽 컬러가 다른 ‘투볼’ 디자인도 있다. 아마 골퍼마다 한두 개씩은 골프백에 있을 흔한 도구다. 자신만의 특정 볼 라인은 다른 골퍼의 볼과 구별하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빨간 펜, 파란 펜, 검정 펜 선 컬러도 다양하다. 어떤 골퍼는 굵게, 또 가늘게- 개성도 가지각색이다. 그 작은 볼에 골퍼 수만큼이나 지문처럼 표시된다. 라인은 마치 길잡이다. '여기로 굴러가야 한다'는 확신을 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라인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내 눈을 의심한다. '아닌 것 같은데… 라인이 틀린 건가, 내 눈이 틀린 건가?' 결국 마음이 흔들리면, 라인을 무시하고 감각대로 치기도 한다. 퍼팅의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 있다. 믿으려고 그은 선이 오히려 의심을 키운다.
퍼팅연습장에 갈 시간도 없이 골프장에 도착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찍 왔더라도 식사하고 대화하며 커피 한잔 하다 보면 벌써 티오프 시간이다. 그나마 일찍 도착해 퍼팅연습장에서 볼을 굴리는 소수의(?) 골퍼들을 본다. 그들의 퍼팅연습에서 공통적인 걸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라운드 직전 퍼팅연습장에서 라인 정렬을 하지 않고 감으로만 퍼팅을 한다는 것이다. 연습 그린 위의 작은 핀을 향해 그냥 눈대중으로 보낸다. 숏퍼팅도 마찬가지다. 볼라인이 있더라도 라인을 맞추는 과정을 생략한다. 연습그린에서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퍼팅을 하는 것이다. 잘 맞아떨어지면, 그날은 퍼팅이 좋을 거라는 징조처럼 느낀 채 1번 홀로 이동한다.
그런데 막상 코스에 나가면 다시 볼에 그려진 라인에 맞춰 정렬한다. 좀 전까지 감각으로 연습한 후 곧바로 라인에 맞게 준비하는 것이다. 눈과 몸, 감각과 선 사이에서 자꾸 헛갈리기 시작한다. 볼을 믿을지, 나를 믿을지. 그 경계에서 긴장이 더 커진다.
나 역시 이런 과정을 무수히 거쳐왔다. 라인대로 잘 떨어진 적도 많았고 그 반대도 허다했다. 이런 헛갈림 속에서 작은 다짐으로 최근에 라운드를 다녀왔다. 아예 18홀 내내 라인을 긋지 않고 쳐봤다. 놀랍게도 퍼팅 시간이 간결해졌고, 무엇보다 완벽주의에서 조금 해방된 기분이었다. '정확히 맞췄나?'라는 집착 대신, '일단 보내보자'라는 단순함이 자리했다. 결과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스트로크 리듬이 더 자연스러웠다. 라인이 시야에 없어서 방향 대신 거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건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매킬로이, 셰플러, 임성재, 박상현 선수는 라인 정렬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리디아 고, 디섐보, 마쓰야마 히데키 선수는 꼼꼼히 라인을 맞춘다.
즉, 정답은 없다. 세계 최정상에서도 각자의 스타일과 루틴이 존재할 뿐이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 결국 골프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기만의 루틴을 만드는 과정이다.
라인 정렬 문제는 단순히 퍼팅의 기술을 넘어, 인생의 태도와 닮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선택한다.
라인을 그어두고, 그 길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감각을 믿고, 눈이 가리키는 대로 걸을 것인가.
라인을 긋는 건 안전하다. 길을 확인하고, 자신을 안심시키는 장치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도 만든다. 선에 집착할수록 마음이 흔들린다. 반대로 라인을 지우면 불확실하지만, 오히려 자유롭다. 순간의 감각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삶도 그렇다. 계획을 촘촘히 세우면 안정감이 있지만, 그만큼 그 틀에 갇힌다. 계획 없이 감각대로 살면 위험해 보이지만, 그 자유 속에서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골프가 늘 묻는 건 결국 이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볼 위에 그어둔 선일까, 아니면 내 눈과 손끝의 감각일까. 사람에 따라 답은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마다 달라진다. 어제는 라인을 믿었지만, 오늘은 감각을 택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골프의 본질이다. 매일 다르고, 정답이 없는 게임.
라인을 맞췄는데도 놓칠 수 있고, 감으로 쳤는데도 들어갈 수 있다. 그때마다 후회는 남는다.
'괜히 라인을 믿었네…'
'차라리 라인을 그을 걸…'
하지만 그 후회조차 루틴의 일부다. 오늘의 후회가 내일의 자신감을 만든다. 라인을 긋든 안 긋든,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이 선택한 방식을 끝까지 믿는 태도다.
골프에서 누군가는 철저히 계획적이고, 누군가는 자유롭다. 퍼팅 라인 하나에도 그 사람의 성향이 묻어난다. 나는 때때로 라인을 긋고, 때때로 감각에 맡긴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 더 옳으냐가 아니라, 그날의 나와 어떻게 마주하느냐다. 라인이 있든 없든, 볼은 결국 진실만을 말한다. 오늘의 내 태도와 마음을 그대로 비춰줄 뿐이다.
“너는 오늘, 무엇을 믿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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