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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이냐 감각이냐, 퍼팅이 문제로다

by 언덕파

라운드를 하다 보면 동반자의 드라이버 스윙이나 아이언 샷은 대충 흘려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샷 챙기기에도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팅만큼은 다르다. 그린 위에서는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야 하고 홀까지의 거리 순서대로 쳐야 한다. 그래서 동반자들의 퍼팅을 자연스레 관찰하게 된다. 누구나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볼이 홀컵으로 향하는 순간, 그 짧고 미묘한 거리 속에는 골프의 모든 긴장과 성격이 담겨 있다.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조인 라운드를 다녀왔다. 조인 라운드에서 만난 한 동반자의 퍼팅 루틴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구력이 꽤 있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매홀 홀까지 걸음 수를 재는 습관이 있었다.

걸음수를 재는 것이 그분의 퍼팅 루틴으로 보였다. 보통 걸음수를 재는 골퍼들은 걸음수 대비 퍼팅 백스트로크의 크기가 바뀐다. 5걸음이면 15cm 뒤로 뺀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그분의 루틴은 멀든 가깝든 백스트로크 크기가 거의 일정했다. 섬세하게 굴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단호하게 때리는 퍼팅. 무엇보다 절대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전체 루틴을 지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 번은 파 5홀에서 난 2 온을 시켰지만 짧은 버디 퍼트를 놓쳤다. 반면 그분은 3 온 후 약 10m 거리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그분이 먼 거리에서 먼저 버디를 성공하는 순간 ‘퍼팅은 정말 스타일과 루틴의 문제’라는 걸 새삼 느꼈다.


퍼팅 스타일, 그 다양한 얼굴들

골프장에서 퍼팅 스타일을 보면 참 다양하다. 누구는 때리고, 누구는 굴리고, 누구는 걸음을 재고, 또 누구는 감각에만 맡긴다. 그 차이는 스윙의 개성만큼이나 뚜렷하다.

먼저, 걸음 수를 재는 스타일. 위에서 언급했던 분처럼 거리를 발걸음으로 환산해 공식처럼 적용한다. 초보 때는 거리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많이 시도하지만, 구력이 쌓여도 꾸준히 이 방식을 유지하는 골퍼도 있다. 숫자가 주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믿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본능에 맡기는 스타일. 오랜 경험으로 몸에 밴 감각을 믿고, 눈으로 거리만 읽은 뒤 바로 스트로크 한다. 루틴은 단순하지만, 경험치가 쌓여야 안정적 결과가 나온다. 대부분의 프로들도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린 빠르기가 다르거나 그린 굴곡이 심한 곳에선 걸음수로 공식화하기엔 너무 난해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스트로크 스타일인데 먼저 때리는 퍼팅. 백스트로크 크기를 크게 바꾸지 않고, 일정한 힘으로 단호하게 때린다. 홀컵 주변에서 ‘짧아 미련 남는’ 일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다음은 굴리는 퍼팅. 섬세하게 라인을 따라 굴리는 방식이다. 스피드 조절과 거리 감각이 핵심이라, 안정감을 주지만 때로는 아쉽게 짧아 홀을 스치기도 한다. 그야말로 백인백색이다, 퍼터 디자인도 다르고 자세도 다르고 치는 스타일도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유독 퍼팅이 그렇다. 정답은 없다. 결국 중요한 건 루틴을 믿고 끝까지 지켜내는 태도다.

여기서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챔피언스 투어를 뛰는 레전드 골퍼 이야기다. 그는 아마추어와 친선 라운드를 할 때도 항상 퍼팅 루틴을 지켜보고 배운다고 한다. “프로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아는 게 아니다. 아마추어라도 배울 건 분명히 있다." 그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방식에 갇히지 않고, 어떤 순간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자세. 그 겸손이야말로 챔피언다운 태도가 아닐까 싶다. 퍼팅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결국 태도와 마인드의 문제임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결국 공은 홀에 들어가야 한다

퍼팅 루틴을 보면 우리는 ‘기준’이나 ‘공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거리는 몇 걸음, 이 스피드는 얼마” 같은 자기만의 법칙 말이다. 하지만 시행착오와 구력이 쌓이다 보면 깨닫게 된다. 그 모든 공식은 그저 참고일 뿐이라는 것을. 아무리 멋진 루틴을 가졌어도, 아무리 섬세한 감각을 믿었어도, 결국 중요한 건 단 하나 — 공이 홀컵에 들어가는 것이다. 루틴은 과정이고, 퍼팅 스타일은 방법일 뿐이다. 퍼팅의 목적은 단순하다. “볼을 홀에 넣는 것.” 결국 골프에서 기억에 남는 건 루틴이 아니라,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이다.


퍼팅을 놓친 뒤엔 늘 후회가 따라온다.

“괜히 때렸네… 힘이 넘치네”
“조금만 더 굴릴 걸… 짧아서 안 들어갔어”
“차라리 걸음 수를 세고 칠 걸…”

하지만 그 후회조차 루틴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후회가 쌓여 내일의 자신감을 만들기 때문이다.

구력이란 후회의 역사일까. 결국 우리는 실패와 후회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리듬을 찾아간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늘 선택을 한다. 계획대로 밀어붙일까, 상황을 보며 판단할까. 계산된 공식에 의지할까, 순간의 감각에 맡길까. 일상도 퍼팅처럼 정답은 없다. 다만 중요한 건 자신이 선택한 방식을 끝까지 믿고, 서두르지 않고, 루틴을 지켜내는 태도다. 결과가 말해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만의 방식이 조금씩 단단해진다. 골프장에서 퍼팅을 지켜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구는 때리고, 누구는 굴리고, 누구는 걸음을 재고, 누구는 감각을 믿는다. 그러나 결국 목적은 같다. 공을 홀에 넣는 것. 삶도 그렇다. 방법은 다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공식과 자신만의 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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