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관, 편리함이 줄 수 없는 몰입의 자리
요즘 영화는 극장이 아니라 집에서 본다. OTT는 모든 걸 갖췄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만큼 멈추고 다시 볼 수 있다. 간식은 냉장고에서 꺼내 먹으면 되고,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소파다. 요금도 훨씬 저렴하다. 모든 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극장을 찾지 않는다.
팬데믹을 거치며 이 추세는 더 가속화됐다. 멀티플렉스 체인은 관객 수 급감으로 직격탄을 맞았고, 지금도 불황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OTT가 A면, 극장은 더 이상 매력 없는 B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극장에 간다. 극장은 불편하다. 예매를 하고, 상영 시간을 맞추고, 차를 가져가면 주차 걱정을 해야 한다. 팝콘은 집에서 먹는 것보다 몇 배 비싸고, 옆자리 관객의 핸드폰 불빛 하나에도 집중이 흐트러진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극장을 고집한다. 왜일까? 그 불편함 속에 숨어 있는 감각들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F1 더 무비>를 극장에서 봤다. 스크린 가득 차오르는 초고속 머신의 질주, 한스 짐머의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나는 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몰입을 경험했다. 엔진의 굉음이 가슴을 두드리고, 현악기의 긴장감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건 집 거실 스피커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스케일이다. 매버릭 탑건 영화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음악과 영상이 전신을 휘감고, 의자가 떨릴 만큼 진동이 전해지는 순간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공간이 아니라 감각 전체를 집어삼키는 경험의 공간이었다.
어릴 적 극장은 더 특별한 곳이었다. 동네 극장은 항상 붉은 조명이 어슴푸레 켜져 있었고, 상영관 안은 언제나 팝콘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영화를 본다는 건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ritual) 같았다. 유년시절 한 구간을 거처가는 통과의례가 되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시간을 맞추어 나가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감상을 나누며 다음 영화 약속을 잡는 일. 그 과정 자체가 영화의 일부였다. 영화는 스크린 안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성됐다.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릴 때면 유독 극장이나 영화가 함께 묶여지게 된다.
OTT는 분명 편리하다. 혼자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출퇴근길에도 감상이 가능하다. 콘텐츠의 양은 극장보다 훨씬 많고, 업데이트 속도도 빠르다. 이 편리함은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다.
하지만 OTT가 제공하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이다. 누군가와 동시에 숨을 죽이고, 동시에 웃고, 동시에 눈물을 훔치는 경험은 없다. 익명의 타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콘텐츠를 공유한다는 동시성. 스크린이 주는 압도감도, 공간이 주는 긴장감도 없다. 극장은 비효율적이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함께 본다는 경험, 몸으로 느끼는 체험을 제공한다. 바로 그 점에서 OTT가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한국 극장 관객 수는 크게 줄었다. 한때 2억 명을 넘던 연간 관객 수는 1억 명 이하로 추락했다. 멀티플렉스 3사의 매출도 직격탄을 맞았고, 지방 중소 극장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여전히 특정 장르와 작품은 극장에서만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IMAX로 상영된 〈아바타〉, 〈탑건: 매버릭〉 같은 영화는 폭발적인 관객을 모았다. F1 영화처럼 압도적인 사운드와 스케일을 전제로 한 작품은 OTT로는 한계를 드러낸다. 즉, 극장은 이제 단순한 영화관이 아니라 특정 경험을 파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편리함에 맞서려 하지 않고, 극장에서만 가능한 불편함 속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 굳이 극장 갈 필요가 없다.” 맞는 말이다. 굳이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극장을 좋아한다.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쌓고, 감각을 흔들고, 누군가와 연결되는 장소다. 편리한 OTT가 A면, 나는 불편하지만 오래 남는 B를 선택한다. 극장에서 느낀 한스 짐머의 사운드,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 옆자리 관객과 동시에 터져 나온 웃음소리,
영화가 끝난 뒤 누군가와 나눈 짧은 대화. 그 모든 게 모여 영화라는 경험을 완성한다. 나는 여전히 극장을 좋아한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얻을 수 있는 스케일, 분위기, 기대감. 그게 내가 선택한 B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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