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불 러너

– 횡단보도에서 깨달은 작은 여유

by 언덕파

러닝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운동장에서만 달리는 게 러닝이 아니라는 것.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달리기의 흔적은 불쑥불쑥 얼굴을 내밉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가 그렇습니다.
예전의 저는 녹색불이 깜빡이면 고민도 없이 걸음을 멈췄습니다.
“다음 신호에 건너야지.”
굳이 헉헉거리며 뛰어 건널 이유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러닝을 꾸준히 하면서 달라졌습니다.
이젠 제 몸이 압니다. 녹색불이 깜빡일 때 주어진 4초, 5초가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요.
살짝 속도를 올리면, 도착하고도 몇 초가 남습니다.

그 순간이 묘하게 뿌듯합니다.

마라톤 완주 메달이나 기록표가 아니라, 일상의 아주 작은 장면에서 체력이 증명되는 순간이니까요.
횡단보도 위의 달리기는 제 몸이 달라졌다는 작은 증거이고, 동시에 마음의 태도까지 변했다는 사인입니다. 생각해 보면 러닝은 시간을 들여 제 몸에 새겨 넣은 습관이자 태도입니다. 달리기를 통해 얻게 된 것은 근육이나 스피드가 아니라, 여유였습니다. 예전에는 멈추던 자리에선 이제 가볍게 뛰고, 예전에는 아슬아슬하게 건너던 길을 여유 있게 건넙니다. 횡단보도에서의 짧은 달리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닙니다.

그건 매일의 작은 자기 확인입니다.


“아, 나는 어제보다 가볍구나.”
“오늘도 내 몸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구나.”


다음번에도 아마 녹색불이 깜빡인다면 뛸 겁니다. 그리고 도착해 남은 몇 초를 바라보며 속으로 웃을 겁니다. “예전 같으면 멈췄을 텐데, 이젠 여유가 남네.” 러닝은 기록이 아니라 순간을 바꾸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오늘도 깜빡이는 녹색불 앞에서 증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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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